
집게발의 전언 / 김응숙
갯벌이 떠들썩하다. 다대포 해변의 끝자락. 환경이 훼손되지 않도록 다릿발을 놓아 설치한 산책로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뚫려 있는 구멍들마다 작은 게들이 집게발을 내밀고 하늘을 향해 흔들어 댄다. 갯벌에 사는 달랑게들이다. 무슨 공연이라도 있는지 함성이 대단하다.
보이기는 하지만 들리지는 않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혹 집게발들의 전언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여 난간을 붙잡고 머리를 더 아래로 들이밀어도 본다. 위아래로 발사되는 집게발들의 말들을 눈으로 쫓자니 현기증이 난다. 인간의 말밖에 모르는 나는 그들의 언어를 해독할 수 없다.
다대포의 갯벌은 여느 갯벌과는 다르다. 수백 리를 흘러온 만삭의 낙동강이 조용히 몸을 푸는 산실이기 때문이다. 강과 바다가 만나고, 민물과 바닷물이 뒤섞이는 특별한 공간이다. 이질적인 두 세계의 융합을 실험하는 대자연의 실험실이기도 하다. 그 실험실의 갯벌에 달랑게가 산다.
달랑게는 밀물과 썰물의 경계선, 즉 간조선의 위쪽인 상조선 부근의 갯벌에 구멍을 파고, 그 구멍을 집 삼아 살아간다. 하루에 두 번 바다와 육지를 번갈아가며 살아 내어야 하는 모진 운명이다. 유난히 큰 하나의 집게발로 2cm 안팎의 작은 몸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 때문에 달랑게라는 이름을 얻었다고도 한다. 불균형한 집게발이 익살스러워 보여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달랑게는 좌우 두 쌍으로 된 열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데, 각각 그 기능이 다르다. 집게발은 먹이를 먹거나 자신을 과시하는 데 사용하고, 중간에 있는 세 쌍의 다리로는 땅을 짚고 이동을 한다. 마지막 다리는 물속에서 헤엄을 칠 때 꼬리지느러미 역할을 한다고 하니 멀티 플레이어가 따로 없지 싶다. 바다 속에서는 '새실'이라 불리는 아가미 방 안에 있는 아가미로 숨을 쉬고, 육지에서는 새실 벽에 붙어 있는 실 같은 돌기로 공기 호흡도 한단다. 수륙 양용 엔진인 셈이다.
고개를 들어 보니, 다대포의 해변에 밀물이 들고 있다. 해변을 따라 나갔던 사람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돌아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생각보다 밀물의 속도가 빠른지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한 번 들기 시작한 밀물은 때가 될 때까지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때에 맞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일 터이다. 이제 곧 달랑게들이 집게발을 흔드는 이곳도 바닷물에 잠기리라.
어디 갯벌뿐이겠는가. 인생에서도 밀물은 수시로 밀고 들어온다. 일정한 간조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명확한 간조대가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멀리 수평선에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같아 보일 수도 있다. 남에게는 닥치지만 나에게는 다가오지 않을 일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설사 무슨 기미를 알아챘다 하더라도 금방 수긍하기는 어렵다. 잠시 머뭇거리는 동안, 밀물은 발목을 넘어 무릎까지 차오른다.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밀물들은 늘 생각보다 빠르게 밀려온다.
꼭 사업 실패만이 모든 것의 이유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도미노처럼 한 가지 현상은 또 다른 현상을 불러오는 불가피한 원인이 되었다. 그 현상들은 세찬 파도가 되어 사정없이 내 인생 안으로 들이쳤다. 허리를 넘기는 밀물을 견디지 못하고 남편이 쓰러지자, 순식간에 밀물은 식구들의 키를 넘었다.
물속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우선 숨쉬기부터 어렵다. 공기와 바람이 사라진 뒤, 밀도가 전혀 다른 일상들을 호흡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루치의 양식이기도 했고. 아이들의 한 달분 급식비이기도 했으며, 납처럼 무거운 대출금 통장이기도 했다. 급할 때마다 빌려온 친구들의 쌈짓돈까지 얹어졌다.
내 폐는 이런 것들을 견디지 못하고 새된 비명을 질러댔다. 남편에 대한 원망이 기포마다 들이찼다. 스스로의 무능함에 대한 자괴감이 그 원망을 밀어내고 폐부 깊숙이 진흙처럼 들러붙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결이 되겠지 하는 턱없는 희망은 겨우 뱉어내는 얕은 숨길에 맥없이 사라졌다.
익사할 것 같은 순간들이 지나갔다. 그나마 헐떡이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눈빛이 말간 아이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물속의 호흡법을 조금씩 터득할 즈음 썰물이 시작되었다.
그 후에도 나는 여러 번의 밀물을 경험했다. 사고도 있었고,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요즘은 갱년기 증상이랄까, 고독과 우울의 밀물에 잠겨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밀물은 수시로 내 인생에 밀려왔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적응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하는 일은 늘 고통으로 다가왔다. 마치 자신의 일부가 밀물에 쓸려 소멸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바닷물에 잠기는 게들을 상상해 본다. 물속에서는 부력이 생겨 미끄러지듯 떠다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물에 잠겨 버린 집에 대한 미련은 흔쾌히 버릴 것이다. 새실 가득 바닷물을 채우고 등껍질이 탱탱하도록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내일을 꿈꾸리라.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과감히 자신을 변화시켜 가는 용기야말로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일 것이다. 바다 생물이면 어떻고, 육지 생물이면 어떠한가. 갯벌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에게 정체성을 묻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다.
아직도 세상의 밀물에 잠길 때마다 숨이 가쁜 나는 달랑게의 충고를 듣기 위해 더 깊숙이 몸을 숙인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답답한지 게 한 마리가 구멍 밖으로 몸을 내밀다 내 시선을 의식하고는 멈칫 멈춰 선다. 그 짧은 정적을 타고 마치 집게발의 전언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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