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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등에 대하여 / 정진희

등에 대하여 / 정진희

 

 

 

그 남자의 등이 휘어 있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마저 웅크리고 있으면 마치 작은 언덕 같다. 그는 동네 골목 안 조그만 가게에서 옷 수선을 한다. 처음 수선할 옷을 가지고 갔을 땐 그의 등이 그렇게 휜 것을 몰랐다. 어느 더운 날, 문을 열어놓고 재봉틀 앞에 앉은 그의 옆모습을 보고서야 눈을 의심할 만큼 등이 휜 것을 알았다. 오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재봉틀로 먹고 사는 것이 안쓰러워 나는 수선할 것이 생기면 신이 났다. 하루는 지나가다가 음료수를 내밀며 "등 좀 펴고 일하세요"라고 말을 걸었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라는 노랫말이 있었던가. 그래도 설마 삶의 무게에 등이 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부모 형제를 먹여 살리고 아내와 자식을 건사하느라고 열다섯 살 때부터 하루 열 시간 넘게 재봉틀에 매달리다 보니 등이 그렇게 휘어버렸다며 웃었다.

거울로 내 등을 비춰본다. 한 번에 보이지 않아 이쪽저쪽으로 반씩 나눠보았다. 오십 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내 등을 유심히 들여다본 것은 처음이다. 그런대로 곧다. 삶의 무게가 등이 휠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그런데 앗, 내 등이 낯설다. 거울 없인 절대로 내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내 몸에서 내 손이 모두 닿지 않는 유일한 곳이다. 내 몸이지만 내 손이 관리할 수 없는 역역이며 모든 치장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가깝고도 아주 먼 곳에 등불 하나 없이 방치된 고립무원의 장소, 섬이다. 작은 몸뚱어리 안에 어쩌자고 이토록 넓은 여백이 있는 것인지, 거울로 반사되는 나의 뒷목에서 엉덩이까지, 낯설게 흘러내린 등줄기를 따라 일제히 소름이 돋는다. 취기나 방황으로도 다스려지지 않는 외로움, 온뭄을 떠다니던 그리움의 찌꺼기, 부르지 않아도 달려드는 절망과 비애, 비어 있는 가슴을 텅~ 울리고 가는 슬픈 기억들, 내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와 이루지 못한 욕망의 잔해들이 쌓인 듯, 쓸쓸한 바람이 함께 쓸려간다.

이제야 알겠다. 사람들의 등이 왜 그리 쓸쓸해 보였는지, 성공한 사람일수록 그들의 등이 더 쓸쓸하게 보이는 것은 욕망이 큰 만큼 쓸쓸함도 커지기 때문인 것 같다. 섹시함도 쓸쓸함을 먹고 자라나 보다. 누군가 보아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요염한 자태로 등을 훤히 내놓은 여배우들의 관능적인 등줄기에도 나는 쓸쓸함을 보았다.

남편을 잃고 기독교에 귀의한 엄마는 하루에 다섯 시간씩 기도를 했다. 내가 결혼한 후에 우리 집을 다녀갈 때도 거르는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엄마의 기도 시간인데 늘 통성기도를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방문에 귀를 바짝 갖다 대었다. 흐느낌 같은 소리가 들려 나는 베란다를 통해 엄마의 방을 들여다보았다. 벽을 향해 꿇어앉은 엄마의 등이 흔들리고 있었다. 신앙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고독과 설움이 함께 떨리고 있었다. 뻐근한 통증이 나의 횡격막을 가르며 지나갔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의 온 삶이 등에 축적돼 있음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등을 본 것은 그로부터 한 달여 뒤였다. 응급실에서 입원실로 옮긴 엄마가 옆으로 누워 낮잠에 들었다. 칠십 평생 중 이십여 년을 오직 기도, 오직 믿음으로 살아온 엄마의 등에선 천사의 날개라도 펴진 듯 숭고함이 느껴졌다. 나는 엄마의 등 뒤에 잠시 피곤한 몸을 뉘었다.. 온 삶을 짊어지고 죽는 순간까지 내게 기댈 자리가 되어 주었던 엄마의 등을 나는 오래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얼굴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가면을 바꿔 쓰며 살아가기에 열중하는 동안, 등은 모든 역할을 묵묵히 지켜봐 주고 기다려준다. 계산되지 않고 포장되지 않은 세계가 정직하게 얹혀 있는 등, 그곳에 신은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선을 심어준 것 같다. 우주를 업듯 누군가를 업어주고 지친 영혼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그렇게 넓은 여백을 마련해준 것 아닐까. 그런데 어느덧 신이 심어준 천사의 날개는 퇴화되고, 우리들의 등은 삶의 무게와 욕망으로 지쳐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기댈 언덕이 될 수 있는 것은 등이 가진 거부할 수 없는 포용력이다. 가슴으로 안는 포옹은 가벼운 인사이거나 진한 애정의 표현이지만, 등 뒤로 안겨오는 포옹은 침묵으로도 전해지는 깊은 신뢰의 몸짓이기 때문이다.

삶에 따라 바뀌는 것은 얼굴만이 아니다. 등에서도 그 사람의 삶이 묻어난다. 내 등이 낯설었던 것은 아무에게도 따뜻한 언덕이 되어주지 못한 이유 이리라.. 지금부터라도 마음의 품은 늘이고 욕심은 줄이며 보다 부드럽고 신축성이 좋은 옷감으로 마음도 수선을 해야겠다.

누군가 내 등 뒤에 와 젖은 얼굴을 묻을 수 있도록, 신이 주신 날개가 펴질 수 있는 등이 되고 싶다. 온 가족의 언덕이라는 옷 수선 집 남자의 휘어진 등이 떠오른다. 성실한 고단함과 진정한 겸손함이 묻어나는 그 둥에도 언젠가 천사의 날개가 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