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歸還) / 이종화
아버지는 마른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모든 게 아득해지고 있었다. 진이 몽땅 빠진 체액이 비릿한 포말로 피어올랐다. 모든 장기가 그 수명을 다했지만 아버지의 젊은 심장은 좀체 멈출 줄 몰랐다. 내 나라가 무너지고 있었다. 간성혼수. 담당 의사는 준비하시란 말을 짧게 남겼다. 아버지는 분명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아빠, 집에 가자. 울며 무턱대고 아버지의 헐거운 바지를 집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오른 무릎을 접어 올렸다. 무기력한 울음이 망자로 변해가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힘겹게 채워갔다. 그날 밤 아버진 집으로 가지 못했다. 먼동이 텄고. 끝내 감지 못한 아버지의 두 눈에 나는 유년을 묻었다. 꺾인 꿈 한 송이를 영정에 올렸다.
열아홉. 삶은 거칠게 다가왔다. 당장 사흘 앞으로 다가온 수능시험을 도저히 치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책을 펼치면 멀리서 손을 흔드는 아버지가 나타났다. 형이 내 멱살을 꽉 잡았다. 내 곁에 사흘 밤낮을 붙어 앉아 스톱워치를 눌러댔다. 로봇처럼 문제를 풀면 기계처럼 채점했다. 나도 형도 말이 없었다. 고난 속에서 겨우 대학에 들어갔다.
금융위기로 거리에는 실직자가 넘쳐났다. 어머니는 살림을 줄여 여윳돈을 마련했다. 때마침 예금금리가 높았다. 푼돈을 벌기 위해 일감도 찾아보았다. 우리는 용돈을 벌며 장학금을 받았다. 고마운 분들의 손길도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형이 첫 월급을 받았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꾸준히 들어올 돈이었다. 밑이 보이던 쌀독에 가느다란 빛이 내렸다.
취업이 잘 되는 과에는 복수전공을 신청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경영대 강의실은 늘 콩나물시루였다. 수십 명 정원인 회계학 수업의 실제 수강생은 수백이었다. 책상을 끌어와 복도에서 수업을 들었다. 사회 이슈로 고민하는 젊음 따윈 없었다. 대학의 낭만도 자취를 감췄다. 촘촘한 공부보다 다양한 기능을 숙달하는 게 먼저였다. 명문대 입학을 종점으로 삼던 우리 교육이 학벌을 넘어 취업으로 그 목표를 연장하는 변곡점이었다. 캠퍼스의 상징과도 같던 1번 국문학과 건물에 학생들의 발길은 더욱 뜸해졌다. 인문과 예술은 더는 대학이 할 일이 아닌 듯했다..
경쟁은 날로 치열해졌다. 재능을 스펙이란 잣대 위에 가지런히 세워놓고 공정한 경쟁이라 불렀다. 삶은 표준화되어 갔고 인간의 개성은 사라졌다.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외쳤지만 실사(實事)만 거듭하는 시대가 열렸다.
열심히 노력해도 넘지 못하는 벽은 분명 있었다. 대개 그 벽 아래에서 폴짝거리다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아버지도 평생 그 벽 앞에 서계셨다. 마지막 순간 운명은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어 벽 위로 끌어올렸다. 우리도 덩달아 신분이 상승되는 것 같았다. 거기까지였다. 정점에서 운명은 장난치듯 아버지의 팔을 내동댕이쳤다. 아버지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우린 꺾인 꿈을 담벼락 아래 묻었다.
서른이 되도록 그 벽 앞에서 서성였다. 벽을 넘을 건지 깰 건지 저런 건 평생 쳐다보지도 말 건지. 내가 제대로 할 수는 있는 건지. 그러는 사이 나도 자랐고 벽도 더 높아졌다. 벽 앞에서 발을 구르는 사람들은 늘어만 갔다. 세상은 그 벽을 ‘기득권’이라 불렀다.
신은 인간에게 약속을 했다. 드넓은 대지를 걸어가 표식을 한 뒤 해지기 전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면 그 땅을 모두 우리 것으로 해 주겠다고. 인간은 신이 났다. 저게 다 내 거라고? 계산이 빠른 현대인이라면 해지기 전에 돌아오지 않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 같지만, 대지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이 흔한 게 우리네 삶이었다. 어쩌지 못해 돌아올 수 없는 기막힌 사연도 있겠지만, 대개는 남들 가는 길을 모조리 걸어보려다 노을 지는 줄 모른 채 생을 마쳤다.
소위 정보력이라 뽐내는 그 추세를 뒤쫓을 뿐인 우린 늘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그렇게 내 길을 가장 나답지 않게 걷다 주어진 하루를 허비하곤 했다. 경쟁과 욕심이 지나쳐 돌아올 시간을 영영 놓치고 마는 것, 그걸 알면서도 수없이 허방을 짚는 게 인생이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어서 혼자 걸을 수만은 없는 길이기에, 삶은 예측하기도 예단하기도 어렵다. 위대한 일을 이룬 사람들마다 최후로 남긴 말이 욕심을 버리란 것. 아버지의 유언도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도 집으로 갈 시간을 놓치셨던 것 같다. 삶이 도형을 그리는 일이라면 직선을 반듯이 그리다가도 아쉬운 순간, 그걸 꺾어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용기가 필요했다. 아버지를 묻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채 그리다 만 도형을 마저 그리겠다고 하셨다. 어느 날 어머니는 그걸 다시 우리에게 남기고 떠나실 것이었다.
기실 모든 벽을 꼭 넘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드넓은 세상으로 시선을 돌리면 저런 벽들은 곳곳에 솟아 있었다. 땀과 눈물로 쌓아 올린 훌륭한 벽은 귀감의 대상이기도 했다. 폐단의 벽도 있었지만 그건 패기만으로 깨지지 않았다. 오랜 풍화를 거쳐 스스로 구멍이 생기고, 그걸 밀면 쉬 무너졌다. 그게 역사였다. 긴 기다림을 이겨낼 수 있는지, 세월 속에서 초심과 진심을 잃지 않는지가 더 중요했다.
통증에 시달리던 아버지에게 낮과 밤은 따로 없었다. 그래도 병실에 볕이 드는 아침이면, 역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내 시험이 며칠 남았는지 묻곤 하셨다. 그럼 어머니는 언제라 정확하게 답하기도 하시고, 얼버무리기도 하셨다. 그러다 울먹이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로했다. 그 순간에도 운명은 아버지의 머리맡에 앉아 삶과 죽음의 추를 번갈아 저울질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희망, 내일은 절망. 그리고 그날, 죽음에 이르는 모든 문들이 활짝 열렸다. 절망이 희망을 참혹히 부순 자리엔 천붕의 고통만 남았다. 슬픔의 강이 마르고 눈물 자국만 남자 아버지 없이도 그런대로 살만했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 이제 잊고만 싶었던 십칠 년 전 그날 밤으로 돌아간다. 동토(凍土)에 심은 꽃 한 송이에 아직 손바닥만 한 볕도 들지 못했지만, 꿈을 잃고 망연히 울며 새 꿈을 찾아 헤매던 열아홉의 내 손을 다시 잡는다. 꿈을 새로 꾸려고만 했던 어리석음을 이제 깨달아서다.
벽을 넘기 위한 삶, 오로지 그걸 깨기 위한 삶은 세상에 유익을 주지 않았다. 내가 있을 곳은 벽 저편이 아니라 원래 있던 이곳. 모두가 넘고 싶어 하는 그 벽이 아닌, 무릎을 굽혀 많은 사람들과 눈을 맞출 수 있는 그런 벽이 되고 싶다. 그날의 꺾인 꿈이 곤히 잠든 대지를 어루만진다. 아버지가 쓰러져 죽은 이 자리에 나, 내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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