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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마스크 시대 / 이병식

 

마스크 시대 / 이병식

 

 

 

온통 얼굴을 가린 사람들뿐이다. 어른들은 물론 엄마 등에 업힌 어린아이들까지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게 요즈음 세태다. 아니 전 세계 사람들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 우리 인류가 이렇듯 한뜻으로 통일되었던 시대가 또 있었으랴.

작년, 그러니까 2020년 새해 벽두에 불길한 소식이 전해졌다. 예방약도 치료할 약도 없는 코로나바이러스는 폐렴을 일으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질병이라 했다. 처음에는 중국 우한지역에서 발생했기에 그 이름을 우한 폐렴이라 불렀다. 그 후 코로나 19’가 공식 명칭이 되었다. 짧은 시간에 코로나는 세계를 뒤덮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1월 중순에 첫 확진자가 발생했고 세계 보건기구는 3월 중순에 팬데믹을 선포했다.

우리나라의 첫 확진자는 중국인 여자였다. 한두 명씩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2월 초순까지 대구에는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일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2월 중순이 넘어가는 어느 날 대구에도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우리나라 31번째 확진자였다. 그녀는 어떤 종교집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집단 속에서의 감염속도는 일시에 터지는 폭탄이었다. 연이어 하루에 몇백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대구는 바이러스 공포에 잠식당하고 말았다. 사람으로 붐비던 지하철역이 설렁했다. 앉을 자리가 없어 서서 가는 사람이 많던 전동차 안에도 몇 사람만이 타고 가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늦은 밤까지 붐비던 상가도 손님이 없어 썰렁하였다. 늦은 시각도 아닌데 문을 닫는 상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붐비던 시가지가 어느 작은 시골 도시처럼 적막했다. 인적 끊긴 도시 풍경은 공포심마저 자아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환자 때문에 병실이 부족하고 의료진도 부족하다고 했다.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아도 병원에 입원할 수가 없다고 했다. 다급한 나머지 일반 건물을 빌려 생활 치료센터를 만들어 경증 환자를 들여보냈다. 그래도 입원하지 못하고 집에서 대기하는 환자가 있다고 했다. 병원에도 가보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니 공포심이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다른 지역에서 봉사단이 대구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생소한 말이 유행어처럼 번져나갔다.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했다. 시중에 마스크가 동나는 현상이 벌어졌다. 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다.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는 날짜가 지정되어 그날에만 마스크를 낱장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인천에 사는 아우가 마스크 여유가 있다며 보내준다고 했다. 마스크를 보내주는 게 그렇게도 고마운 일이 되다니.

4월 중순이 되니 서서히 확진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4월 하순엔 친구들과 나들이도 했다. 다른 친구들과의 모임도 재개했다. 여름에는 친구와 텐트에서 함께 잠을 자는 일박 이일로 바닷가도 갔었다. 삶에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이젠 백신이 나올 때까지 이런대로 지내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8월 하순이 되자 하루 확진자가 전국에서 백 명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바이러스는 인구 밀접 지역인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모이는 한가위인데 가족이 모이지 말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국에서 백 명 단위로 증가하던 확진자가 11월 하순엔 오백 명이 넘어섰다. 급기야 12월 하순엔 천 명 단위를 넘어섰다. 나라는 온통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연말이 되니 드디어 미국과 영국에서 백신을 출시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신은 못 만들었지만, 치료 약을 승인했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기쁜 소식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백신 도입이 늦어진다는 암울한 소식이었다. 나라는 백신 논쟁으로 시끄러웠다.

 

의 자중지란에 빠졌다. 해가 바뀌어 우리나라에도 일부 백신이 들어왔다. 당국에서는 백신을 맞을 순서를 정하여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했다. 5월이 되어서야 일반 국민에게 백신 접종 기회가 왔다. 고령자 순이었다. 우선순위는 75세 이상이고 이들은 화이자 백신을 투여한다고 했다. 나는 다음 순서로 527일부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는다고 했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매스컴은 연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부작용을 대서특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랴, 피할 수 없는 길인 것을.

그렇게 신청을 했고 백신 주사를 맞았다. 혈전이 생길 수 있으니 4주간 몸을 잘 관찰하라고 문자가 왔다. 백신을 맞고도 걱정을 해야 한다. 10주 후에 2차 백신도 맞았다. 백신을 출시하면 코로나 사태는 끝날 줄 알았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백신보다 더 강한 변이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벌써 알파, 베타, 감마를 거쳐 델타 바이러스가 출현했는데 지금은 델타가 우세 종이다. 백신의 효과가 반감되고 있어 젊은 사람들은 백신을 거부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했다. 마스크 쓰고 벗는 게 이토록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는 게 우습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델타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를 벗어서는 안 된다고 방침이 바뀌었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언제 끝날 것인지. 인간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완벽한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어쩔 수 없이 코로나와 공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심도 있게 제시되고 있다.

국민 최대의 명절 한가위가 다가오고 있다. 작년 한가위에는 헤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며 부모도 보러 가지 말라고 했다. 내년 한가위에는 마음 놓고 갈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올 한가위도 부모 보러 가지 말라고 한다. 마스크를 쓰고도 가지 말라고 한다.

하찮았던 일상이 사무치도록 그립다. 못 보면 미칠 듯이 보고픈 그런 연인 같은 사이가 아닌 보통 친구가 보고 싶다. 친구를 만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소주 한잔하고 싶다. 심심할 때 빈둥거리며 걷던 거리를 걷고 싶다. 마스크를 벗어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