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당신의 어깨 / 강춘화

당신의 어깨 / 강춘화

 

 

새벽잠을 뒤로하고 습관처럼 알람 소리에 잠을 깬다. 옆 자리를 확인한 순간 등짝을 얻어맞은 듯 발딱 일어난다. 남편은 어느새 출근 준비를 마쳤다. “좀 더 자 오늘은 일찍 나가야 해.”

문을 나서는 그 어깨가 유난히 무거워 보이는 것은 남편이 일하는 현장에 다녀오면서 부터다.

누구나 성인이 되면 각자의 적성에 맞는 일을 갖지만 본인의 전공하고는 전혀 다른 직업을 갖기도 한다. 전기과를 졸업한 남편은 28톤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자영업자다. 차가 너무 크고 높아서 덩치 작은 남편이 운전대에 앉으면 머리만 겨우 보일 정도이다. “저렇게 쪼매한 사람이 큰 차를 우째 몰고 다니냐” 며 주변에서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한다.

짐을 싣고 전국으로 다니기를 수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포항제철에서 철을 뽑아내고 남은 재료를 강원도에 있는 시멘트 공장에 가져다 주고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철을 뽑을 수 있는 돌들을 싣고 제철 공장으로 운반하는 일이다.

큰 불평없이 일을 하는 남편을 보면서 큰 차를 타고 전국으로 다니니까 재미는 있겠다고 생각해 온 나는 한번쯤은 조수석에 태워 거리 풍경이라도 구경시켜 주지 않은 남편이 야속했다. 힘은 들겠지만 최소한 바깥세상에는 꽃도 피고 낙엽도 질게 아닌가. 남편은 완강했다.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힘들고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편하게 집에서 책이나 읽고 공부나 하라고 했다. 유난히 책 읽기를 좋아하고 학구열이 남다른 남편은 말끝마다 책 읽기를 권했지만 나는 서운했다. 자기는 바다도 보고 산도 즐길 거면서 아내한테는 글이나 읽으라니 조선시대도 아니고.

혼자서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에 기름을 넣어야 하는데 카드를 안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아차 어제 내가 잠깐 쓰고는 잊어버리고 그냥 보냈으니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유류 할인 카드라 꼭 필요하니 경주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나는 마음이 바빠졌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화창한 날씨에 데이트를 하게 되어 하늘을 날 듯 기분이 좋았다. 껌딱지처럼 붙어 삼척으로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목적지까지는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높은 차에 오르니 확 트인 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소녀처럼 가슴이 설레어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 나왔다. 물끄러미 쳐다보던 남편이 “그렇게 좋으냐”고 묻기에 “너무 좋다”고 했다. 남편도 나를 흉내 내어 “너무 좋다”고 했다. 워낙 위험한 일이라 가족이 함께 다니면 안 되는데 당신과 함께 오니 졸음도 안 오고 지겹지도 않고 좋다고 말하는 남편의 얼굴 표정이 내가 보기에도 정말 좋아 보였다.

어느덧 목적지가 보인다. 높은 산길을 올라가는데 낭떠러지가 코앞이라 긴장이 되는 순간이다. 조금 전의 들뜬 기분이 갑자기 얼어붙어 주변을 살핀다. 운전하는 남편도 긴장된 얼굴로 앞을 집중한다. 시멘트 공장이라 먼지도 많이 나고 환경오염이 심하기 때문에 동네를 벗어나 산 속에 자리하고 있어서 위험한 길이다.

짐을 하차하는 장소에 도착하자 담당자가 나와서 뭐라고 지시사항을 전하는데 때로는 갑질을 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덤프를 들기 위해서는 안전하게 차를 세워야 한다. 아차 잘못하면 차 전체가 뒤집어지는 위험이 따른다. 나는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벌을 서듯 지켜만 보는데 온 몸이 얼음이 된 듯 굳어지는 느낌이다. 남편은 짐을 내리기 전 마스크와 안전모를 쓰고 안전화까지 신은 채 기계를 작동하기 위해 여러 번 차에 올라온다. 등짝은 어느새 땀으로 얼룩이 진다.

나는 갑자기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현장을 보면서 남편이 앉아서 운전을 하는 의자를 보면서 지금까지 내가 너무 안일한 생각을 했구나 하며 철없이 굴었던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님 모시고 시누이 둘과 함께 살아오면서 나의 어깨가 가장 무겁다고 생각해 왔다. 혼자서 속상해하다가 혼자서 풀고 우울하게 살아온 세월이 얼마였던가. 남편의 성실함도 고지식하게 느껴지고 빈틈없는 성격마저도 갑갑하게 생각되었던 적이 한 두 번이었던가. 이제야 알겠다 남편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던지를. 날마다 자기보다 덩치 큰 차를 다루며 먼지와 낭떠러지를 오가며 가족을 지켜왔음을.

짐을 하차하고 덤프가 내려오는 소리에 밖을 내다보니 뿌연 먼지가 시야를 가린다. 이제는 산을 내려와 철을 뽑기 위한 원료를 실으러 장소를 이동한다. 모래일 수도 있고 자갈돌을 실을 때도 있다고 한다. 남편은 짐을 싣기 위해 정해진 장소로 들어간다. 자동 시스템으로 짐을 싣는데 30톤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욕심을 내어 정해진 표준량을 초과할 때도 있다고 한다. 화물차가 많이 달리는 도로에는 과적을 단속하기 위해 계근대를 준비해 두고 있는데 거기에 걸리게 되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현장에서 중량초과가 확인되면 차 위로 올라가서 삽으로 퍼내려야 한다. 얼마나 무겁고 힘든 일인지 한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린다고 하면서 더러는 힘에 부쳐 운전대 잡을 힘조차 없을 때도 있다고 했다. 나는 갑자기 그의 어께에 기대어 펑펑 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돌아오는 길에는 휴게소에 들러 저녁도 먹고 커피도 함께 마셨다. 일을 무사히 마치고 난 후련함일까 남편은 소년처럼

“늦은 밤 휴게소에서 혼자 먹는 밥이 정말 싫은데 오늘은 당신 덕분에 힘들지 않고 밥까지 먹으니 너무 좋다”

갑자기 내 눈에 눈물이 핑 돈다. 남편이 볼까봐 얼른 고개를 돌리며

“그럼 오늘부터 내가 당신 조수 하는 건 어때?”

고지식한 나의 남편 화들짝 놀라며

“안 돼, 위험해. 어머니는 어떻게 하고?”

그렇구나, 당신의 어깨에는 어머니까지 얹혀 있구나. 나는 말없이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칠 흙 같은 밤을 헤치고 덩치 큰 차로 전진하는 그의 모습이 산처럼 크고 높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