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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몽고정(蒙古丼) / 김정식

몽고정(蒙古丼) / 김정식

 

 

 

얼마 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만나자는 약속에 두려움과 설레는 마음으로 호텔 커피숍에 나갔다.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이 없다. 건장한 체격에 나이는 나보다 많아 보였다. 그들은 나를 보는 순간, “형님” 하면서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두 사람이 동시에 “형님을 얼마나 찾았는지 아십니까.” 하고 큰절을 했다. 그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곳이 있었다. 몽고정(蒙古丼).

청년 시절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져 내린 마음을 수습하기 위하여 무작정 완행열차를 타고 도착한 곳이 마산이었다. 그곳에는 고려 충렬왕 때에 군대와 말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하여 파 놓은 몽고정이라는 우물이 있었다. 몽고정 정자 밑에 앉아서 밤을 지새우고 있는데, 새벽이 되니 대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술 냄새를 풍기며 넝마주이들이 나타났다. 넝마주이는 7, 80년대 등에 손수레만 한 바구니를 메고 집게를 들고 도시의 쓰레기를 줍던 사람들로 거지처럼 변두리에 거적때기를 치고 모여 살았다.

그들은 막걸리와 김치를 가지고 나를 놀리며 온갖 욕설로 시비를 걸어왔다. 처음에는 술 취한 도시의 빈민층 사람들이라 상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밤을 지새우며 정자 밑에서 노숙하는 나의 모습이 만만해 보였던 모양이다. 물건을 집는 집게로 내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피를 보는 순간 참고 있던 울분이 솟아올라 술에 취한 네 명과 심하게 몸싸움을 하였다.

주위 사람들의 신고로 경찰서에 연행되었다. 넝마주이들은 많은 상처를 입었는데도 일상이 술과 싸움인지라 잽싸게 도망을 치고 말았다. 하루살이 인생이라 경찰서는 이유 불문하고 주눅이 드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나 혼자만 2주간을 공짜 밥과 잠자리로 해결하고 풀려났다.

유치장을 나와 몽고정에서 만난 넝마주이들을 찾아 나셨다.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마산역 철로 주변에 모여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그들을 발견했다. 밤이었고 술에 취해서 그런지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술 한 잔 줄 수 있느냐며 다가서니 다들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중에서 젊어 보이는 사람에게 돈을 주며 술과 안주를 사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그들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몽고정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하니 깜짝 놀라며 도망갈 궁리를 하였다.

유치장에 있는 동안에 넝마주이들 사이에 몽고정의 사건이 주먹대장 시라소니의 싸움처럼 소문으로 확대되어 있었다. 나는 넝마주이 대장을 만나러 다녔다. 그는 지역 유지로 행세하며 주먹과 힘을 이용하여 넝마주이들이 줍거나 훔쳐오는 물건을 고물상에 팔아서 술값 정도만 주고 있었다.

대장은 잘 만나 주지도 않고 상대하기도 까다로웠다. 홍등가 대부란 소문도 있었다. 그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홍등가 근처 여관에 숙소를 정하고 계속된 만남을 시도했다. 또한 넝마주이들과 친해지기 위하여 술을 같이 마시며 새벽이면 큰 바구니를 등에 메고 함께 다녔다. 대로 만든 바구니는 무겁고 힘이 들었다. 며칠 후 대장의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동업하자는 나의 치기 어린 의협심에 그는 조소를 보냈다. 다시 대장과 협상을 했다. 나의 제안은 그에게 적정 수입을 보장해 주는 동시에 넝마주이들에게 통장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대신 매일 술 마시고 치고받으며 싸움질 일으키는 넝마주이들의 문제는 내가 맡아서 해결하기로 했다. 그와 까다로운 조건을 협상한 후 넝마주이들에게 나의 구상을 말했다.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다. 그러나 나는 굽히지 않았다. 새로운 삶을 보장하겠으니 나만 믿으라고 큰소리를 쳤다. 치기 어린 객기는 내 삶의 의욕을 충전해 주었다. 넘치던 분노와 울분이 옅어지고 일에 대한 욕구가 왕성해져 갔다.

당시의 마산은 수출자유지역으로 경기가 활성화되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공장들이 한둘씩 늘어나서 시골의 어린 아가씨들이 공단으로 몰려들던 때였다. 건설현장을 찾아다니며 현장의 경비를 무료로 서주는 대신 못 쓰는 고철은 우리가 갖기로 협상을 했다. 많은 건설현장을 접수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매일 술과 싸움으로 익숙한 그들에게 야간의 건설현장을 지키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부분이 힘들어서 못 하겠다며 다시 넝마 바구니를 메고 떠나버렸다. 남은 몇 명을 데리고 공사현장을 지켜나갔다. 고철이 돈이 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많은 이권 단체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끝없는 다툼은 밤마다 전쟁 같았다. 하지만 삶에 의미를 주면서 전쟁도 기쁨이 되어 갔다. 그들과 같이 모은 고철과 고물을 정당한 값을 받고 팔아서 모은 돈으로 작은 가건물을 지었다. 길거리에서 노숙하던 넝마주이들이 소문을 듣고 다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최저 생활비를 제외한 수입금 전액을 공동명의로 통장을 개설하고 적립했다. 그들의 앞날에 꿈이 생긴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그곳을 떠났고 그 시절을 잊어버렸다. 호텔 커피숍으로 찾아온 사람들은 내가 떠난 후 그때 모은 종잣돈으로 고물상을 시작하여 사회에 정착하고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다시 만난 그들과 밤늦도록 술을 마셨다.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된 그들은 어떻게든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어 했으나 거절했다. 인생이란 순환하며 맞물리는 것이지 결코 일직선으로만 달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술잔을 기울이며 잠시 그들과 함께했던 시절을 뒤돌아보니, 내 청춘의 칼날은 쓰라린 모습이었다. 키 보다 몇 길은 더 높은 희망을 좇기 위해 몸부림친 세월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몽고정의 넝마주이와의 만남은 젊은 한 때 내 인생의 분노를 잠재워준 감로수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