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 김정화
뿌리가 박혔다. 어디 기댈 데가 없어서 하필이면 귀 안에 자리를 틀다니. 왼쪽 귀 달팽이관 옆에 자리잡은 뿌리는 주인을 무시로 괴롭힌다. 귀 안이 먹먹했다가 간질거리다가 살을 파고 새순 같은 돌기가 돋아 오를 때쯤에는 급기야 송곳으로 찌른다. 온몸이 아파지기 시작한다. 뿌리가 깊으면 위험해요. 머리를 열어 수술할 수도 있어요. 특진을 맡은 전문의가 무덤덤한 목소리를 툭 던진다. 전신이 휘청거리고 마음마저 휑하니 뚫려버린다.
주변이 어수선했다. 혼자 지내기를 즐겼는데 방문을 걸어 닫을수록 답답해져왔다. 집 앞 오륙도 선착장으로 나가 바닷바람을 맞았다. 썰물 때면 성큼성큼 걸어서라도 갈 것 같은 푸른 섬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내친김에 앞바다를 순환하는 낚싯배를 타고 눈앞 등대섬까지 가보기로 했다. 지척에서 마주친 풍경은 놀라웠다. 섬의 뒤쪽이 온통 가마우지의 배설물로 설산마냥 하얗게 덮여 있었다. 섬도 앓고 있었다. 섬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섬의 뒷모습이 얼마나 신비한지 앞에서는 알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갯바위를 때리는 시퍼런 파도가 겉모습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호통친다.
세상에 뿌리 없는 것이 어디 있을까. 풀뿌리, 나무뿌리, 물의 뿌리, 말의 뿌리까지도. 어느 시인은 사람도 사람에게 뿌리를 내린다고 했다. 사랑하는 것 역시 뿌리를 내리는 일이니까. 뿌리가 부실하여 밑동을 받치지 못해도 위태롭지만, 왕성한 번식력으로 빈 땅을 점령하는 것도 곤란하다. 질주하는 뿌리들이 무섭다.
수술은 간단했다. 부분 마취약을 귀에 붓고 기다렸다가 수술 의자에 앉혀놓고 귓속 돌기를 도려내었다. 수술 후 떼어낸 살점을 간호사가 하얀 거즈 위에 담아 왔다. 콩알만 한 것 두 개가 불빛에 반드르르 윤기마저 돌았다. 마치 박물관에서 본 중생대 화석 같기도 하고 보석상 진열장에서 꺼낸 진주 귀걸이 한 쌍을 보는 듯했다. 떼어낸 종양 중 한 개가 진주종이라 한다. 진주종이라니. 처음 듣는 이름이다. 이름은 아름답건만 뿌리가 깊어지면 고막을 녹이고 뇌를 파고 스며드는 강한 힘을 가졌다고 했다. 아찔했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문득 소로우가 쓴 '야생사과'가 생각났다. 그의 고향 마을 콩코드 숲에 야생사과 나무들이 자라는데 그 성장 과정이 특별하다. 풀밭에 떨어진 사과씨의 싹이 움트면 소들이 와서 여린 싹잎을 모조리 뜯어 먹어버린다. 해마다 반복되는 동안 줄기와 뿌리만 남은 야생사과는 옆으로만 탄탄해진다. 스무 해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위로 오르지 못한 줄기 덤불은 뻣뻣해지고 땅속 뿌리는 더욱 굵어진다. 그러다가 줄기들이 울타리가 될 즈음 소들은 더 이상 안쪽에 발을 디딜 수 없다. 마침내 가운데에서 발아한 새잎은 주변 가지들의 열기까지 더해 폭풍 성장하여 한 그루 야생사과나무가 완성된다. 내 몸에도 진주종 뿌리가 야생사과나무처럼 똬리를 틀어다면 어떡하나.
지난여름 문우들과 필리핀 여행을 다녀왔다. 마닐라에서 제법 떨어진 깡시골 마을의 재래시장에 갔다. 유명 브랜드를 흉내 낸 가짜 시계가 손수레마다 수북했다. 까짜 다이아몬드가 박힌 줄 시계와 구슬옥을 흉내 낸 건강 시계도 원 달러 석 장만 내밀면 오케이였다. 두 개 값을 내면 한 개는 덤으로 따라왔다. 동료들은 지인의 선물을 구입하거나 가족 수만큼 고르기도 하였다. 모두 횡재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입국 심사도 마치기 전에 한두 개 멈추더니 한국에 도착하여서는 대부분 고장이 났다. 세련된 디자인이 아까웠다. 배터리라도 교환해 볼까 하여 동네 시계점에 맡겨보기로 했다. 숙련된 삼십 년 시계 수리공이 뚜껑을 열어보더니 연신 고개를 갸우뚱했다.
"안이 텅 비었는데요."
그 시계에는 뿌리가 없었다.
겉이 매끈하면 뿌리도 탄탄한 줄 알았다. 눈에 보이지 않아야 튼실한 뿌리, 깊이 박혀야 견고한 뿌리, 오래되어야 흔들리지 않는 뿌리라고 생각했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박고 서 있어야 잎과 열매가 볼품 있다고 믿었으며, 사람도 심지가 깊어야 두텁고 과묵한 성품을 지닌다고 확신했다. 숨어서 제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이 뿌리의 본분이라 여겼다. 하지만 종종 뿌리들도 타인의 영토를 침범한다는 사실을 헤아리지 못했다. 겉모습에 가려진 내면의 고통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초록 잎과 그늘이 좋았는데 이젠 빈 가지를 받드는 민낯의 뿌리가 좋다. 맨살을 드러낸 층층나무 뿌리나 비탈에 선 노송의 노근을 대하면 생명의 경외감마저 인다. 뿌리를 드러낸 나무 앞에서 겉과 속이 같지 못한 우매한 인간이 그저 무색해진다.
다행히 뿌리는 얕았다. 내 귀가 품은 진주종도 씨알 없는 쭉정이였다. 잔뿌리가 번지기 전에 서둘러 뽑아낸 것이 천행이었다. 때로는 뿌리 내리지 않은 게 요행이고 알곡이 들지 않아도 괜찮다 싶다. 좀 느슨하면 어떤가. 뿌리도 제 자리에 내려야만 뿌리답다 하겠다.
'수필세상 > 좋은수필 5'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평화 / 강대선 (0) | 2022.06.30 |
---|---|
[좋은수필]국지성 소나기 / 양숙이 (0) | 2022.06.29 |
[좋은수필]맹랑한 손님 / 최재운 (0) | 2022.06.27 |
[좋은수필]오! 자유여 / 송혜영 (0) | 2022.06.26 |
[좋은수필]푸른 세월의 나이테 / 박하 (0) | 2022.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