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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스물두 살의 그때 / 조재환

스물두 살의 그때 / 조재환

 

 

전방 탄약고를 시키던 두 병사가 목에 총상을 입고 숨졌다. 국방부의 발표였다. 먼저 동료를 쏘고 자기는 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긴 사건이라 했다. 왜 그랬을까. 전방이어서 그런가. 창고의 탄약을 지키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었을까. 그래도 두 목숨을 끊은 사연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총알이 날고 포탄이 터지는 전쟁터의 병사였어도 그랬을까. 적탄에 붉은 피를 쏟으며 숨져가는 전우를 보았어도 그랬을까.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목숨의 귀함과 전우의 소중함에 그리고 피를 볼수록 더 간절해지는 살고 싶은 욕망에 그런 행위는 하지 못한다.

훈련소를 마친 나는 귀신의 곡 같은 겨울 바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배치되었다. 그러나 오래 있지는 않았다. 붉은 진달래가 약산에 지천으로 피던 때 자유의 십자군이란 이름으로 이 땅을 떠났다. 얽힌 인연이 하나도 없는데 서로 부모를 해친 원수처럼 싸우는 전쟁터 월남에 갔었다. 거기 가서도 대대 중대 소대 분대로 차례차례 갈 곳이 없을 때까지 갔었다. 그때마다 좋은 곳으로는 가지 못했다. 한 번쯤은 행운이 따를 수도 있을법하지만 없었다. 꼭 독한 무엇이 따라다니며 훼방을 놓는 것 같았다.

전장에 도착한 병사들은 본부에서 현지 적응훈련을 일주일간 받았다. 그동안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입소문으로도 들었다. 거기에는 교관이 전해주는 바른 정보도 있었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라도 본국에서 들을 때와는 그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이제 그 자리에 내가 섰다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교관은 또 우리가 배치될 네 개의 대대 중 본부방어가 주 임무여서 걸어서 가는 보다 안전한 곳과 육로는 적의 기습이 잦아 헬리콥터를 타야 하는 위험한 곳도 있다고 했다.

어릴 때 나는 아버지를 따라 가축시장에 가보았다. 넓은 공터에 크고 작은 말뚝이 줄 서 박혀 있었다. 거기에 여러 소가 메여 있었다. 돼지도 있고 염소도 있었다. 모두가 팔려가기 위해서였다. 우리 송아지도 작은 말뚝에 매였다. 그리고 팔렸다. 주인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송아지는 새 주인을 따라가지 않았다. 가기가 싫어서 네 다리로 버티었다. 도살장이라도 가는 듯 커다란 두 눈을 부릅뜨고 투박한 목청으로 울었다. 그러나 송아지는 결국 어딘가로 끌려갔다.

일주일의 적응훈련을 마치고 배치되는 날이었다. 그때는 팔려서 끌려가던 우리 송아지 꼴이었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모래밭에 곧 팔려갈 전장의 신병들이 모두 모였다. 말뚝에 매이지는 않았어도 열대의 햇볕 아래 줄 맞춰 앉아서 팔려가기를 기다리었다. 전쟁터여서 어떤 곳으로 가느냐에 따라 생사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는 거였다. 초조하고 불안한 시간이었다. 이윽고 키 큰 나무에 매달린 확성기가 신병들의 군번과 이름을 불렀다. 호명된 신병들은 부대 이름이 적힌 텐트에 모였다.

육로가 위험해 유일하게 헬리콥터로 간다는 부대의 호명이 시작되었다. 스물두 살의 나는 눈을 감았다. 많이 훈련된 병사였지만 피가 그리고 죽음이 무서웠을까. 믿는 종교가 없어도 빌었다. 걸어서 가는 곳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다만 그곳은 피하고 싶었다. 염라대왕의 부름 같은 호명은 계속되었다. 얼마를 불렸을까 귀에 익은 군번이 들렸다. 그러나 내 귀를 어디에도 팔지 않았지만 일곱 개의 숫자가 다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어진 이름은 들어왔다. 나였다. 내 사고는 부끄럽게도 한순간 정지되었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헬리콥터를 탔다. 송아지처럼 가기가 싫어서 헬리콥터 문턱에 두 팔로 버티고 싶었다. 그러나 그저 납 인형처럼 무겁게 탔다. 될 대로 되라며 다 포기해서일까. 송아지보다 말을 더 잘 들었다. 생전 처음 타는 헬리콥터지만 조금도 신기하지 않았다. 눈뜨면 보이는 아래는 끝모르게 펼쳐진 열대림과 무명옷고름을 떨어뜨리면 금방 물 들 것 같은 남국의 남빛 바다가 있었다. 거기에 한없이 밀려오는 파도가 하얗게 부서진 곡선의 해안선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래도 느끼지를 못했다.

마지막 팔린 곳의 흰 앞니가 돋보이고 마른 분대장은 겁먹지 말라 했다. 그러나 헬리콥터 탈 때와는 달리 모두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스스로 택했으니 죽음도 무서워 말자고 다짐했었다. 그래도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던 모양이었다. 분대장은 또 살아서 고향에 갈 수 있다며 희망을 주고 총과 철모를 지급해 주었다. 철모를 쓰려니 안쪽에 까만 것이 붙어있었다. 말라붙은 피였다. 직감이었다. 멈칫하는 내게 분대장은 싱긋 웃고는 그런 것이 재수있다고 했다. 나는 피딱지를 손톱으로 긁어내었다.

피가 튀는 전쟁터임을 새롭게 느꼈다. 죽음의 실체도 알아갔지만 의외로 무섭지 않았다. 대범해서가 아니었다. 체념이었다. 그러나 전쟁의 이력이 더해질수록 변해갔다. 살아서 고향의 부모님께 돌아가고픈 간절한 욕망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또 오장육부 구석구석에서 꿈틀댔다. 되살아나 온몸을 몇 겹이나 감싸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실천을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했다. 살아서 가기 위해 뼛속의 기름을 밤낮없이 태웠다. 그로써 몸은 장작개비같이 마르고 새까만 얼굴에 눈만 빛나는 분대장처럼 되어갔다.

분대장의 말처럼 피 묻은 철모에 정말 재수가 있었을까. 죽음이 난무하는 곳에서 살아 고향 땅을 밟았다. 그래도 고마운 생각들을 못 했다. 그러나 머리가 다 희어져서야 스물두 살의 그때를 빙 돌아보았다. 말라붙은 그 피의 임자는 누구일까. 딱하게도 알지 못한다. 다만 죽음은 자기로써 끝이라며 고비 고비마다 지켜준 것은 아니었을까. 내 등에 떨어진 적의 수류탄이 터져도 살아났으니 믿는다. 이름 모르는 피의 임자와 전쟁에 나간 자식을 위해 새벽마다 정한 수 떠놓고 빈 어머니의 염원이 나를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