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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할머니의 숟가락 / 이은정

할머니의 숟가락 / 이은정

 

 

겨울바람이 잦아들 무렵이었다. 미모의 신문사 기자가 우리 집에 방문한 일이 있었다. 기자는 현관 입구에서 신발을 벗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들어오시라고 하니 집이 너무 깔끔해서 함부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었다. 누추한 거실 바닥에 자리를 내어 드렸더니 집이 참 단출하다고 한다. 자주 듣는 말이지만 들을 때마다 찬바람이 가슴속으로 훅 들어온다. 궁금해 하는 기자에게 따뜻한 모과차를 내어주면서 이렇게 사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언젠가부터 당장 쓰지 않는 물건은 집에 들이지 않게 되었고, 들여놓았다가도 쓰지 않게 된 물건은 미련 없이 나누거나 버리는 습성이 생겼다. 운동화에 구두 한 켤레만 있으면 어떤 외출이든 불편함이 없고, 계절에 맞게 외출복 한두 벌 씩만 있으면 족하다. 식기도 가족 수에 맞으면 그만이고, 이불도 추운 날과 더운 날 덮을 정도만 있으면 된다. 그러다보니 많은 수납장이 필요치 않게 되고, 집은 점점 단출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같이 정리를 한다. 내가 세상에 남기고 가야 할 것이 무언지 생각하는 습관 탓이다.

내가 살던 마을에 부지런한 할머니가 있었다. 언제나 말씀도 조곤조곤하시고 입성이 깔끔해서 참 곱게 늙으셨구나 싶었다. 할머니는 항상 집에서 뭔가를 가지고 나와 길에 있는 아무에게나 그것을 주곤 하셨다. 나도 한두 번 할머니가 주시는 것을 받은 적이 있다.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각종 열매와 참기름, 그리고 숟가락이다. 열매를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정 많은 이웃 할머니의 나눔이라 생각했다. 참기름을 받았을 때는 조금 이상했다. 쓰다 남은 참기름이었다. 나는 받기를 거부했으나 할머니가 너무 완강했다.

집에 기름 냄시가 나야지.”

매일 우리 집 앞을 산책하시더니 내가 음식을 잘해 먹지 않는 걸 아셨을까.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참기름을 차마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받았던 숟가락은 정말 아무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 즈음 할머니가 치매를 심하게 앓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나는 숟가락을 받아 들고 한동안 멍했다. 거절해봤자 또 버티실 게 분명했다. 나는 숟가락을 들고 집으로 왔다. 수십 년은 밥을 떴을, 낡고 구부러진 은수저였다. 자루 끝에 희미하게 자수 문양이 박힌 걸 보니 오래돼도 참 오래된 숟가락이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숟가락을 씻어 싱크대 서랍에 넣어두었다.

그 뒤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렸다. 시골 마을에서는 남의 집 경조사를 마을 방송으로 널리 알려서 함께 축하하거나 애도한다. 할머니의 함자를 알지는 못했지만 직감으로 그 분임을 알 수 있었다. 할머니 세간들이 실려 나가던 날 모두가 놀랐다. 이 동네로 시집 와 칠십 평생을 살았는데 세간을 실은 1톤 트럭이 넉넉히 남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두어 시간 짚불에 던지면 그만일 물건들이었다. 나는 서랍에 넣어두었던 숟가락을 꺼내 들었다.. 치솟는 눈물에 가슴이 시렸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내게 주고 가신 숟가락. 그 숟가락을 내게 주신 그날엔 할머니의 정신이 온전했을까. 할머니는 그날부터 곡기를 끊고 먼 길 가실 채비를 했을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어떻게 정리를 하면 가는 길이 저리 가벼울 수 있을까. 할머니의 숟가락을 들고 절에 갔다. 불상 옆에 두고 삼배한 후 극락왕생을 빌어드렸다. 숟가락 하나까지 정리하고 가신 할머니의 모습은 내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집안에 두지 않게 되었다. 갈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아는 자 누가 있겠는가. 다만, 모두가 간다는 불변의 법칙을 인지하면서 나는 소유에 집착을 버리게 된 것이다. 마지막 숟가락까지 순서가 닿기엔 내 나이가 그리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지만 난 순서대로 가는 법칙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니 차라리 사는 내내 정리하자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 습관이 되었다.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가방이 크면 근심이 많다고 했다. 평소 넣어 다니는 물건이 많으면 그만큼 근심거리가 많다는 말인데 지금에야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소유한 것이 많으면 잃을 염려를 해야 하고, 물건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게 되니 그 가짓수가 많을수록 근심이 는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살면서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잠깐의 편의와 욕망을 위해 근심거리를 늘리겠는가.

많이 갖고 많이 누리면 당장은 편할지 모르겠지만 물건도 결국 근심이 된다는 것을 알아간다. 마지막 밥을 뜨던 숟가락 하나까지 내가 정리할 수 있다면 마음이 놓일 것 같다. 남은 누군가가 내 뒷일을 처리하는 것을 나는 원치 않는다. 내가 쓰던 물건은 내가 정리하고 싶은 고집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자꾸 하다 보니 그것도 마음 수련에 도움이 되었다. 없는 살림에 갖고 싶은 것이 생겨도 할머니의 숟가락을 떠올리면 그 마음이 쏙 사라진다. 숟가락 하나까지 정리하려면 아직도 나는 가진 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따뜻한 모과차에서 김이 모락모락 다 새어나가도록 기자는 내 이야기에 빠져있었다.

정말 감동적이네요.”

기자가 말했다.

입지도 않는 옷을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처박아놓은 게 한두 벌이 아닌데 저도 정리를 해야겠어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표현할 수 있는 게 미소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라고 말할 수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집을 다시 휘 돌아보던 기자는 그제야 모과차 한 모금으로 입을 다시며 말했다.

다시 보니 단출한 게 아니라 평안해보이네요!”

느끼는 만큼 보이는 건가. 처음에는 단출하게 느껴진 집이 평안하게 느껴졌다니 내 삶이 이해 못 할 막무가내는 아닌가 보다.. 약속된 인터뷰보다 더 긴 얘기였지만 나도 할머니의 숟가락을 다시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었다.

기자님 가시는 길에 집에 있던 멸치와 모과차를 챙겨드렸다. 손사래를 치며 극구 사양하셨지만 결국 받아가셨다. 내가 한 마지막 말이 손사래 치던 기자님 손을 내 쪽으로 쑥 내밀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것이 할머니 숟가락의 일부라고 생각해 주세요.”

나는 그날도 그렇게 삶의 일부를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