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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반포지효反哺之孝 / 이병식

반포지효反哺之孝 / 이병식

 

아침에 눈을 뜨니 창밖이 훤하게 밝다. 커튼을 밀어내고 밖을 내다보니 주위의 건물들과 도시 풍경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곳은 우리 집이 아니라 일본의 어느 호텔 방이다. 아이들 손에 이끌려 여행을 왔다.

눈을 일찍 떴기에 아침 식사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답답한 방에 있는 것보다는 호텔 근처라도 한 바퀴 돌고 싶어 아이들을 남겨놓고 아내와 함께 숙소를 빠져나왔다. 호텔 앞으로는 바닷물이 통하는 폭이 넓지 않은 운하가 있고 다리를 잠깐 건너면 소공원이 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시원한 아침 바람을 쐬고 들어오기로 했다.

공원의 긴 의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니 맑은 가을 하늘에 햇살이 영롱하다. 저만치 떨어진 의자에는 노숙 노인들이 잠에서 깨어 침구를 정리하고 있다. 옆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는 사람도 있고 아직도 침낭 속에서 잠을 자는 사람도 있다. 몇몇 노인들은 무슨 중요한 의논이라도 하는지 산발적으로 서서 시끄럽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곧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이 올 텐데 어찌 지내려는가. 안타까운 마음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걱정을 해본다. 경제 대국이라는 일본에서도 노숙 노인 문제를 해결할 어떤 방법은 없는 모양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원 분위기도 그렇고 사람들의 생김새도 그렇다. 건물에 쓰인 일본어 간판과 그들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아니라면 모든 풍광이 한국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공원에 날아드는 새들조차도 그렇다. 비둘기란 놈이 먹이를 얻으려고 머리를 까딱거리며 사람 주위를 빙빙 돌고 있는 것도 그렇고. 커다란 까마귀가 까옥, 까옥 울며 날아다니는 것도 우리나라와 흡사하다.

부리에 먹이를 물고 나뭇가지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까마귀에 시선이 간다. 계절은 늦가을이라 새끼가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누굴 주려고 먹이를 물고 다닐까 궁금하다. 까마귀가 효도하는 새라는 생각을 하니 더 궁금해진다. 까마귀를 놓치지 않으려 계속 고개를 주억거려본다. 어미가 새끼를 주려고 열심히 먹이를 나르는 것은 여느 새와 같다. 그런데 어미가 늙으면 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하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닌가. 반포지효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사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본다.

아내도 까마귀를 관찰하고 있었을까, 고개를 돌려 아내를 바라본다.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던 아내가 느닷없이 콧등이 시큰해진다고 했다. 아이들과 여행을 와보니 삶의 무상함이 느껴진다고 말이다. 아이들 데리고 바다며 산으로 여행을 다닐 때가 기억에 생생한데, 어느새 아이들 손에 이끌려 효도 관광 올 나이가 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늘 아내는 젊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도 같이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했다.

아이들 어렸을 적엔 우리가 많이 데리고 다녔다. 회사에서는 여름에 바닷가에 숙박시설을 임차해 놓고 직원들이 이용하게 했다. 거의 해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휴가를 가곤 했다. 아이들은 모래성도 쌓고, 조개껍데기도 주우며 좋아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물 맑고 깊은 동해로, 섬이 많은 남해로, 백사장이 넓고 수심이 얕은 서해로도 갔었다. 그리고 추석이나 설 명절에 고향을 갔다 올 때도 시간을 내서 유명한 곳을 구경 시켜 주었다. 서울 대공원에서 동물들을 구경했고, 롯데 월드에서는 신나는 놀이기구도 탔다. 63빌딩에 올라가서는 세상을 넓게 보는 법을 알라고도 했다. 이렇듯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게 호연지기를 키워주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이들과 그만 다니기 시작한 건 큰아이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묻지도 않고 휴가를 계획했고 예정대로 떠났다. 그때 간 곳은 설악산이었다. 숙소도 민박을 주로 하다가 콘도미니엄으로 승격했다. 처음 구매한 승용차로 모시듯 데리고 갔다. 전보다 고급화된 여행에 생색도 냈다. 그런데 아들의 마음은 달랐다. 별로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게다가 무슨 말끝에 따라와 준 걸 고맙게 생각하라고도 했다. 부모를 따라다니기엔 아이들이 이미 커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여행을 권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 부모 따라다녔던 여행을 갚아주기라도 하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자기들이 마음 편하게 외국 여행을 다니겠다는 뜻인지, 외국 여행이 무슨 늙어가는 사람의 버킷리스트라도 되는 것처럼 여행을 권했다. 여행은 다리에 힘 빠지면 못 가니 그나마 다리에 힘 있을 때 한번이라도 다녀오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알겠노라고 대답만 해놓고는 언뜻 결심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무슨 큰 부담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집요했다. 이번에는 가족여행을 한번 가자고 제안해왔다. 그러니 어찌 거절하겠는가. 한번이라도 여행을 가주어야 아이들의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가족여행이라는 말에 아내가 더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이 가을에 멀지 않은 일본으로 여행을 왔다. 효도 관광인 셈이다. 아내의 콧등이 시큰해지고 내 마음이 젖어 드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까마귀는 정말 먹이를 물고 어미를 찾고 있는 것일까. 유심히 바라보는데 먹이를 문 채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왠지 까마귀 난 자리가 휑하다. 나는 멍하니 날아가는 까마귀를 바라본다. 까마귀가 정말 어미를 찾아 먹이를 물고 가는 것이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며 아내에게 아침 먹으러 들어가자고 했다. 아이들은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이 반포지효의 효행이라 생각하니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머금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