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내려다 보면 / 김국자
햇볕이 좋아 뜰로 나가 앉아 보았다. 개미들이 허리를 질끈 동여매고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무엇을 찾는 모양으로 줄을 맞추어 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풀섶 위로는 제 몸보다 큰 먹이를 끌고 가느라 애를 쓰는 놈도 있고, 한 덩이를 두 마리가 합심하여 끄는 놈들도 있었다. 어떤 놈은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을 물고 가다 놓치고 찾느라 애를 썼다. 얼른 잡아다가 개미 앞에 놓아 주고 싶지만, 그쪽으로 보면 또 다른 살 권리가 있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세상에는 개미만큼 수도 많고 부지런한 생물도 없는 것 같다. 가만히 있는 개미는 못 보았다. 언제 보아도 움직이고 있다. 개미는 우리에게 근면과 질서의 미덕을 보여 준다. 물끄러미 개미들이 하는 짓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인간의 삶과 별로 다를 것이 없구나 생각되며 얼마 전의 일이 떠올랐다.
H일보 사옥 6층에서 내려다보면 넓은 주차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요사이는 하루가 다르게 차들이 늘어나기 때문인지, 그렇게 너른 주차장이지만 차를 주차시키려면 빈자리를 찾아 헤매는 경우가 많다. 그날도 구석 자리를 찾아 간신히 주차시키고 올라와 주차장을 내려다보니 빈자리가 군데군데 보이는 것이었다. 조금만 올라와 보면 주차시킬 수 있는 자리가 이렇게 한눈에 보이는데 아래서 빈자리를 찾느라 애를 태운 생각을 하니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차들이 장난감처럼 보였다. 큰 차, 작은 차의 구별이 별로 없어 보였다. '그랜저' 옆에 세워 둔 내 차도 위에서 내려다보니 괜찮아 보였다.
사람들이 걸어 다녔다. 어느 사람이 더 큰 사람인지 모르겠다. 대학시절 내 키가 2센티미터만 더 커 주었으면 하던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뽑는 과퀸(科QUEEN)후보에도 낄 자격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의 2센티미터는 여왕이 되느냐 못 되느냐 할 정도로 꽤 큰 차이인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니 그 정도는 차이라고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거울을 보면 슬퍼진다. 눈가의 주름이나 귀밑의 새치는 그런대로 받아들이겠다. 그런데 얼굴 이곳저곳에 엷은 색으로 얼룩무늬가 스며 나오더니 짙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이 기미의 원인이 별난 남편하고 사느라 그런가 해서 그 원인을 남편에게 뒤집어씌우며 투정을 부렸다. 남편은 집안의 내력이라며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까지 들먹이며 극구 부인했다. 그런데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람들의 머리만 보이니 얼굴의 기미는 걱정할 일이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땅 위에서는 고개를 젖혀야 보이던 높은 빌딩도 이곳에서 내려다보니 엄지 손마디 크기이고. 주차장 땅도 한 뼘으로 가려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더 큰 차를 위해서, 더 높은 빌딩을, 혹은 더 넓은 땅을 위해서 애를 쓴다. 마치 제 몸보다 더 큰 짐을 지고 가는 개미처럼. 그리고 더 예뻐지기 위해서는 아픔을 참으면서까지 수술대에 오른다. 그들의 피나는 노력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큰 것, 작은 것, 잘난 것, 못난 것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느님이 저 높은 하늘에 계신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가끔 같은 건물 13층에 있는 S클럽에 가서 차를 마실 때가 있다. 그런데 6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와 13층에서 내려다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왔다. 6층에서 내려다볼 때는 세상을 연민의 눈으로 보게 되어서 조금은 애착이 생긴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마음이 여유로워지면서 긴장감은 풀리고 슬픔, 회한, 갈등, 혹은 방황하던 감정이 앙금으로 가라앉은 윗물처럼 되는 것 같다.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세상과는 멀어지면서 하늘이 사람에게 주는 밝은 마음(明心)으로 하늘의 섭리 속에 마음을 맡기게 되는 것이다.
어느 스님은 세상을 가랑이 사이로 보니 하늘은 호수가 되고, 산은 호수에 잠긴 그림자가 되어 보였으며 바로 서서 보면 굴곡이 심한 산의 능선도 거꾸로 보니 훨씬 유장하게 보였다고 했다.
이렇듯 세상은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사뭇 달리 보이는 것이다. 지상에서 살면서도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안다면 그때는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일 것이다.
내 차 옆의 차가 나갔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향해서 하얀 차 한 대가 들어왔다. 후진으로 주차시킬 모양인지 꽁무니를 내 차를 겨냥해서 들이대었다. 그런데 나의 마음에 약간의 떨림이 왔다. 왠지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후진하던 차를 다시 빼더니 다른 곳에 주차시키고, 운전자는 차에서 나와서 내 차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급히 가 버렸다. 나는 서둘러서 6층에서 내려와서 주차장으로 달려가 보았다. 내 차 콧등 옆이 조금 우그러져 있었다.
누구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차에 대해서는 좀 각별한 데가 있다. 내 차는 내 손으로 깨끗이 닦아 내고 쓰다듬으면서 제발 성내지 말고 얌전히 달리라고 타이르며 차와 다정한 대화를 나누곤 한다. 나는 그 우그러진 부분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가슴에 통증이 왔다. 내 차를 받은 차 번호를 수첩에 적었고 나의 차 번호와 전화번호를 적어 그 차의 유리창에 붙여 놓고는 연락을 바란다는 메모를 남겨 놓고 왔다. 그 운전자는 내가 6층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도 전화는 없었다. 나는 그 운전자를 찾을 수 있었지만 그만두었다. 그것은 운전자의 양심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하늘에는 항상 인간 세계를 살피고 계신 하느님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여유가 있는 날이면 나는 주차장을 내려다보는 일을 즐겨한다. 수없이 많은 기억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떠오른다. 어떤 일은 어제의 일보다 더 선명하게 다가오다가 지나간다. 일상에서 오는 권태로움이나 근심, 그리고 가슴 아팠던 일들을 실오라기에 묶어 연을 띄우듯이 날려 보내고 나면 마음 또한 여유로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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