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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아버지와 아들 / 김영관

아버지와 아들 / 김영관

 

 

순천의 처제 집에서 김장도 할 겸 며칠 쉬다 오기로 했다. 김장을 끝낸 저녁, 처제 집 인근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 운동을 나갔다

초승달 달빛이 흐릿한 학교 운동장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와 함께 ‘탁-탁’ 땅바닥을 치는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나는 소리를 따라잡으려 육상 트랙을 빨리 걸었다. 소리의 주인공은 두 남자였다. 두 사람을 지나치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나이가 든 남자가 한쪽 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젊은이를 반 강제로 끌다시피 운동장 트랙을 돌고 있었다. 학교 담을 넘어온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연신 신음 소리를 내는 남자는 이십 대로 보이는 젊은이였다.

나이 든 분은 얼굴에 땀범벅이 된 젊은이를 다그쳤다.

“이제 한 바퀴 남았어!”

저 나이면 이제 아들의 어깨 부축을 받아야 하는데 그 역할이 뒤바뀐 연유가 궁금했다. 이웃으로 살고 있는 처제가 두 사람의 사연을 설명했다.

두 사람은 부자로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과는 정반대였다는 것이다. 젊은이는 이곳 순천에서 공부를 뛰어나게 잘해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유학 가서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대기업에 입사하여 부모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단다.

회사 생활 이 연차 되던 해 직원들과 회식을 마치고 자취하는 숙소로 가기 위해 어스름한 가로수 그늘에서 택시를 잡으려다 달려온 택시에 받혀 아스팔트 길 위로 퉁겨져 다리와 머리를 크게 다쳐 육 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단다.

집에서 몇 달째 재활 중인데 처음엔 몇 발짝 걷지 못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진 상태라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눈비가 심하게 뿌리지 않는 이상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저녁 정성을 다해 운동을 시킨다고 했다. 처음엔 아버지의 어깨에 의지하고서도 반 바퀴도 돌지 못했던 아들이 이젠 손만 잡아주면 두 바퀴를 돈다고 했다.

옆 벤치에 앉아 아버지가 아들의 얼굴 땀을 정성스레 닦아주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도대체 부모와 자식의 마음 깊이는 얼마만큼 차이가 날까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