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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슬러 / 김옥한

슬러 / 김옥한

 

 

소년 가수가 흘러간 옛 노래를 구성지게 부른다. 어린 나이에 무슨 한이 그리 많은지 절절함을 토해내는 감성에 원곡 가수도 눈물을 훔친다. 이십 대 중반 청년의 구수하면서 타고난 꺾기 창법은 눈을 감고 들으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고음으로 올라가는 부분에서는 마치 드론이 계곡을 누비듯 시원스럽다.

슬러는 음 높이가 다른 둘 이상의 음표에 긋는 선으로 음과 음 사이를 매끄럽게 잇는 부호이다. 이음줄이나 연결선이라 할 수 있다. 가수에 따라 물 흐르듯 감미롭게 부르기도 하고, 바이브레이션과 꺾기로 긴장감 있게 애간장을 녹이기도 한다. 마치 어름사니가 외줄 위에서 공중으로 확 솟구치다가 떨어지듯 하면서 줄 위에서 사뿐히 내려앉는 것 같다.

트롯 열풍이 불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뽕짝이라 수준 낮게 취급되어 젊은이나 지식인들의 외면을 받다가 근래에 갑자기 복고풍으로 유행하고 있다. 아픔이나 사랑, 이별의 감정이 그동안 자신을 돌아볼 겨를 없이 바쁘게 살았던 사람들의 정서를 자극했기 때문이리라.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생각난 현상이기도 하다. 평소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늦은 시간에 그 대열에 끼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엄마는 평소 노래를 좋아했고, 하모니카도 잘 불었다. 유행하는 노래는 모르는 게 없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타향살이’, ‘초가삼간’, ‘봄날은 간다’를 즐겨 불렀다. 우리 형제들은 당신이 애창하던 트롯은 물론, 일본 노래 몇 곡씩도 부를 안다.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평소 혼자서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자라 저절로 익힌 것이다.

엄마는 시골집보다 아파트를 좋아하는 도시형이다. 그런 엄마가 농촌에서 아홉 남매 뒷바라지를 하면서 집안일을 해내는 건 매우 힘들었으리라. 하지만 당신은 힘든 내색 없이 현실에 잘 적응해 나갔다. 누에가 한잠 잘 무렵이면 수십 명이나 되는 일꾼들의 식사 준비까지 책임져야 했다. 손이 커서 된장을 한 솥씩 끓이고 고등어나 꽁치도 박스로 사서 양은솥에 가득 끓였다. 하루 세끼 대식구 식사와 새참까지 준비하자면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전기밥솥도 없었던 때라 두 개의 무쇠솥에 밥을 하고, 국도 끓이면서 농사일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아버지를 도왔다. 그러면서도 노래는 늘 당신 곁을 떠나지 않았다.

트롯은 1910년에 미국에서 탄생한 4/4박자 초기 재즈 리듬의 사교댄스 ‘폭스트롯’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그 후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도입된 후 일본 노래 엔카의 영향을 받다가, 한국전쟁과 산업화 등 격동의 시기를 거쳐 70년대 들어서면서 대중가요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트롯은 성악과는 달리 가수의 잔 기교, 바이브레이션, 꺾기, 음색 등이 노래의 맛을 더한다. 그런 특징들이 독특한 역할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인다.

어릴 적 외할머니 따라 들에 가면 나이 어린 이모는 일을 돕는 데, 엄마는 그늘나무 아래서 하모니카만 불었다고 했다. 천성이 노래를 좋아하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헤쳐 나갔다. 당시에도 천연두와 윤감, 홍역 등 열병이 유행처럼 번졌다. 주변에는 자식을 앞세우기도 했고, 곰보가 되거나 머리카락이 빠지는 친구도 있었지만 엄마의 정성과 노력으로 우리 남매는 모두 건강하게 자랐다 숱한 고비를 슬러처럼 잘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그걸 안으로 삭이며 노래로 위로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엄마와 다르게 노래를 잘 못 불러서 그런지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결혼 초, 아이 둘 기르는 것이 힘에 겨워 딸애는 시어머니께 맡기고 주말에 만났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어린 것을 기어이 떨쳐버리고 돌아설 땐 눈물이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홉 자식 건사하며 농사일, 집안 대소사를 가뿐하게 해낸 엄마를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출연한 가수들이 모두 나와서 노래를 부른다. 시청하던 나도 어느새 그들과 하나 되어 산을 오르고, 시냇물을 건너며, 굽이굽이 지나온 인생길을 되돌아본다. 저마다 아픈 사연 한 자락 간직하고 있어서일까? 각기 다른 음색과 독특한 창법으로 슬러를 표현하는 매력에 밤잠을 설친다. 살아온 과정은 서로 다르지만 그 시대의 멋과 맛, 삶의 애환이 느껴지는 노래가 시청자들을 하나로 묶어간다.

공교롭게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흔들 때 트롯 열풍이 일어났다. 70년대 유행했던 곡조들이 이 시대에 소환되면서 사람들에게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데 힘이 되었다. 노래를 들으며, 혹은 따라 부르며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새로운 용기를 주는 한편,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했던 것인지도 알게 해주었다. 음과 음을 부드럽게 넘어가는 슬러처럼 앞으로 닥칠 삶의 고비를 잘 넘기기를 염원하며 TV 앞으로 바짝 다가앉는다.

잠시 뒤, 텔레비전에서 엄마의 애창곡이 흘러나온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나도 가만히 따라 흥얼거려본다. ‘봄날은 간다’는 시인들이 좋아하는 부동의 애창곡 1위라고 한다. 바람에 꽃잎이 휘날리고, 언덕 위에서 쓸쓸하게 임을 기다리는 풍경이 아련하게 그러진다. 구성진 마디마디 이어지는 슬러의 꺾임 위로 연분홍 봄날이 굽이굽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