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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나비의 무게 / 김이랑

나비의 무게 / 김이랑

 

 

누구의 영혼일까. 날개 한 겹이 풀잎처럼 하늘거린다. 나는 붓이라는 듯 허공에 나붓나붓 휘갈기는 날갯짓, 그 초서草書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필법이라, 필시 영혼이 자유로운 족속이겠다.

중력은 무게를 가진 것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자유를 갈망하는 영혼은 그래서 살을 빼고 뼈를 깎는데 대대로 생을 바쳤으니, 그것이 날짐승이다. 하지만 날짐승이라고 부르기에는 춤사위가 현란하고 허공을 배회하는 한낱 벌레라고 보기에는 무늬가 신비로우니, 아마 다른 차원에서 온 영혼이 아닐까 싶다.

나비, 이름에 받침이 없는 그는 꽃에서 꽃으로 건너뛰는 게 일상인데, 향기로운 삶으로 보아 그만한 귀족이 세상에 없지 싶다. 나풀·나풀 허공에 피었다 지는 데칼코마니에 무엇이 있지 않고서야,

가볍지만, 시작은 몹시 무겁다. 그는 반생을 오직 흉측한 몸뚱이에서 벗어나는 일에 바친다. 만약 그가 사람과 같아서 지난 시간을 반추할 수 있다면 하늘이 한 생을 덤으로 준다 해도 몸서리치며 거부할 게다. 하지만, 알에서 깨어났다는 기쁨도 굼뜬 몸짓으로 세상을 어찌 살아갈까 하는 근심조차 버려야 하니,

식탐이 없는 그의 사전에는 공격이니 육식이니 하는 섬뜩한 낱말이 없다. 건방진 세상을 따끔하게 찌르는 침이나 먹이를 쪼는 부리도 없다. 딱정벌레처럼 단단한 껍데기 한 쪼가리라도 걸치면 몸뚱이는 가리고, 달팽이처럼 배좁은 집이라도 한 채 지고 다니면 언제든 숨기라도 하겠지만,

그는 온 생이 마디며 움직임 하나하나가 곡절이다. 알에서 나오자마자 애벌레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껍데기를 먹어치운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존재를 잎으로 은유하는 연둣빛 설움쯤은 다가올 시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생의 마디마다 탈피를 거듭하다가 아홉은 횡사하고 가까스로 하나만 살아남으니, 그것이 조물주의 치밀한 각본이라면 관객의 애간장이 탈 때 극적으로 등장한다는 반전을 깔지 않고서야,

홀로 남은 슬픔은 일령, 흉측한 몸을 받은 원망은 이령, 욕망이니 군림이니 정복이니, 무거워서 받침을 가진 낱말은 삼령, 그의 몸짓은 버림의 연속이다. 허물을 다 벗고 나면 그는 몸속의 액체로 실을 자아 집을 짓고 깊은 잠에 들고,

영원일지도 모르는 잠, 영혼의 때까지 벗는 잠에서 깨어나면 그는 집까지 버려야 '나비'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뿐일까. 몸을 말린 다음 날개가 퍼져야 그는 비로소 '날다'라는 동사를 얻는다.

어깨가 빠질 것 같은 통증 뒤 찬란한 우화, 그러나 무늬가 화려한 날개는 생존에 치명적이다. 다행히 타고난 재주 하나쯤은 있어 현란한 불규칙 비행으로 천적의 눈을 교란하나, 그 또한 포식자의 주목을 끄는 춤사위라, 죽음을 가볍게 여기거나 목숨보다 귀한 무엇이 있지 않고서야 엄두도 낼 수 없는 노릇이다. 한 번의 사랑이 있으나 가치 하나에 생을 다 거는 일은 때로는 어리석다. 그러므로 종족 보전을 위해 그토록 모진 시련을 감내하지는 않을 터,

나비 같은 가벼움이란, 왔다 가도 발자국이 남지 않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의 삶은 마침표까지 이타적이다. 바닥에 널브러진 동물의 주검은 섬뜩해서 기억에서 지우려 하면 오히려 화석처럼 각인되지만, 그의 주검은 이내 지워진다. 만지면 바스락 부서져 실바람에 흩날릴 것 같은 가벼움은 보는 이의 마음조차 가볍게 하니,

이런 족속도 있다. 껍데기로 온몸을 감싸고 질척한 개펄 속으로 숨어들어 끈적끈적한 삶을 자초하는 생, 조개는 안으로만 집착해 단단한 껍데기를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친다. 스스로 가둔 감옥을 활짝 펴면 날개라는 것을 죽어서야 알고는 아뿔싸! 그 탄식의 날개가 오래오래 바닷가에 나뒹구는데,

무겁기로는 인간만 한 게 있을까.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게 번민이라, 희로애구애오욕, 무 자르듯 시간을 썰어 순서를 바꿀 수 있다면, 삶을 둘로 나누어 전반은 무겁게 살고 후반은 가볍게 살면 좋겠지만, 머릿속에 욕망 가득한 족속에게 하늘은 '날다'라는 동사는 주지 않았다. 땅과 집, 무거운 황금에 유난히 집착하는 인간이 하물며 마음을 비우는 일에야,

나비 날다. 주어와 동사만 남은 그는 28g이라는 인간의 영혼보다 가볍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선명해서 멀리서도 그의 행차임을 알고 만화방창 꽃들이 향기로운 길을 낸다. 권력도 집도 영토도 없는 그를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이 다투어 떠받드니, 그는 적자생존의 법칙을 초월한 존재가 틀림없다.

인간 세상의 사전은 두껍고 무겁지만, 가벼움의 권위를 정의하는 낱말은 어느 쪽에도 없다. 꽃잎을 받침으로 하는 그의 문장은 두 겹뿐이나 무게는 팔만대장경에 버금간다. 세상 곳곳에 현자賢者가 숨어 있다지만 가끔 난해한 화두만 던질 뿐, 마음이 무거운 인간이 가벼움을 배우기에 그만한 스승이 있을까.

마음이 나빈가·마음이 납인가

가벼운 질문 하나가 날아들어 마음을 무겁게 할 때, 나는 허공을 날아가는 대칭 문장이 은유하는 무게를 재고 또 재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