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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갓 / 정선모

갓 / 정선모

 

 

마을버스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사라진 풍물 사진첩에서 방금 걸어 나온 듯 까만 뿔테의 동그란 돋보기안경을 쓰고 흰 두루마기에 갓을 쓴 노인이었다. 수염까지 길러 옛 선조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계셨다.

마을버스에 탈 때부터 그분의 걸음은 유유한 팔자걸음이었다. 차가 도착하기 무섭게 재빨리 올라타는 다른 승객들에 비해 그분은 기사에게 행선지를 재차 확인하며 느릿느릿 차에 올랐다. 그분이 채 오르기도 전에 성미 급한 기사가 차를 출발시킬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30여 명 가까운 승객들이 차에 오르던 시간과 그분이 차를 타는데 걸린 시간이 거의 맞먹었다. 그 노인이 차에 올라 양보 받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사는 용케도 기다려 주었다. 노인의 갓은 겨우 형태만을 갖춘 것이었다. 양태도 매우 작고 성글게 짜서 갓이라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로 어설퍼 보였다.

갓은 조선시대 때부터 쓰기 시작했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모였다. 몇 년 전 갓 만드는 공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있었다. 갓은 대나무 껍질을 실같이 가늘게 쪼개어 만든다. 작은 두레상처럼 생긴 양태판에 머리카락같이 가는 대올을 햇살처럼 둥글게 펴놓고 돌린 줄로 돌려 차양 부분인 양태를 엮는다. 상품(上品)은 양태판에 깔아놓은 대올이 360여 날, 돌린 줄은 100줄 가까이 된다고 하니 얼마나 섬세한 공정인지 짐작조차 되질 않는다. 잘 보이지도 않는 대올을 두 날씩 떼어가며 돌린 줄로 엮어가는 재바른 손놀림이 지금도 눈에 보이는 듯하다.

머리가 들어가는 부분인 갓대우는 유연한 말총이나 쇠꼬리 털로 만들었다. 양태와 갓대우를 조립해 갓을 완성하는 일을 갓모으기라고 한다. 만들어진 것을 쪄내고 아교풀을 칠하여 말리고, 먹칠하여 옻칠을 입히고, 명주를 입혀 말린 다음 인두로 마무리하는 모든 과정은 정신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지 않으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작업들이다. 아교풀이나 옻칠을 할 때 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입김으로 불어대는 건 갓에 혼을 불어넣는 일에 다름 아니다. 만드는 데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야 하니 값이 비싸고, 많은 값을 치르고 구입한 물건이니 평생 동안 소중하게 다루었다.

갓이 지니고 있는 멋스러움은 두둑하게 휘어잡은 양태의 느슨한 곡선에 있다. 이 양태의 넓이가 한때는 75㎝에 달하였다고 한다. 그런 갓을 쓰면 책상다리로 앉은 자리를 뒤덮을 정도여서 한옥의 좁은 방에서는 세 사람이 앉을 수 없었다든가, 갓 쓴 채로 겸상을 하지 못했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갓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은 트집 잡는 일이다. 양태를 인두로 지져서 오그라지도록 휘어잡는 것을 트집 잡기라고 하는데 우리가 흔히 쓰는 '남의 조그만 흠집을 꼬집어 공연히 귀찮게 군다'는 트집 잡다의 어원(語原)이 갓 만들기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인두가 너무 뜨거우면 자칫 대올이 타고 마니 적당한 온도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양이 너무 평면으로 뻗어도, 지나치게 오그라들어도 모양이 좋지 않으니 고도의 숙련을 요하는 작업이다. 부드럽고 수굿한 곡선을 이루어내는 양태의 모양새가 되려면 트집 잡기를 잘 해야 한다.

그런데 멋들어진 갓을 쓰고 앉아 쓸데없는 트집 잡기로 일생을 보낸 선조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 때문에 당쟁을 일삼던 이들로 인해 우리의 역사는 얼마나 흔들렸는지…. 이제는 사라져가는 갓이지만 제대로의 트집 잡기는 계승되어야 한다. 지나치게 오만하여 쳐들리거나 비굴하여 우그러들지 말고 알맞게 트집 잡아 완만한 곡선을 이루듯, 모든 사람들이 겸손한 자세로 남을 존중해 준다면 제대로 만들어진 양태처럼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매미 날개처럼 화사하고 날렵한 검은 갓은 넉넉한 풍의 흰 도포와 멋진 조화를 이룬다. 예의와 체면을 중시한 선비들의 올곧은 정신은 은은한 윤기를 발하면서도 빳빳한 갓처럼 기개를 굽히지 않는 것으로 대변된다. 실상 갓은 매우 가벼운데 일단 머리에 자리 잡으면 그때부터는 저울로 잴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온다. 정론(政論)을 논하다 행여 회유나 不義의 말을 들으면 바람 소리 나게 소맷자락 뿌리치며 단호히 떨쳐 일어나던 꼿꼿한 선비의 표상이 바로 갓이 아니던가.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 같지 않은 말은 듣지 않겠노라는 대쪽같은 성품을 지닌 선조들 덕택에 수많은 난국을 헤치고 오천 년 동안이나 나라를 이루어왔는지도 모른다.

단발령이 내려지자 기다렸다는 듯 갓을 벗어던지고 상투를 자르며 친일행각에 앞장섰던 사람들은 애초부터 갓을 쓸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런 식으로 시류(時流)에 휩쓸려 대의(大義)를 거스른 사람들이 오히려 나랏일을 놓고 비분강개하는 모습은 차라리 희극적이다.

나라의 임금이라도 옳지 않은 길을 갈 때에는 목숨을 내어놓고 상소문을 올리며 준열히 나무라던 얼음같이 냉철한 선비정신이 그립다. 때론 지나치게 강직하여 융통성이나 유연성 없음을 비난하기도 했지만 이합집산을 떡 먹듯 해대는 작금의 정치인들을 보노라면 차라리 부러질지언정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옛 선비들의 고집스러움이 새록새록 그리워진다.

차에서 내릴 때까지 갓 쓴 노인에게 깍듯이 예우를 해드린 기사처럼, 요구하지 않아도 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우러나오도록 품격을 갖춘 고결한 선비를 만나고 싶다. 은둔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나서야 할 때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서 굽은 길을 바로잡으려 온 힘을 다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세모시 짜던 어머니 손길이라도 빌려 정성껏 갓을 만들어 올릴 텐데….

나를 지키고 나라를 지켜내는 힘은 자존(自尊)에서 나오고 그 자존의 상징이 우리에겐 바로 갓이 아니었을까? 비록 갓은 사라졌지만 갓이 품고 있던 깨어있는 정신은 갈수록 푸르게 빛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