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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손톱을 어루만지며 / 정호경

손톱을 어루만지며 / 정호경

 

 

워낙 갖추지 못한 위인(爲人)이라, 남 앞에 '이것이다' 하고 내어놓을 만한 아무것도 없지만 유독 한평생을 감추고 살아온 것은 나의 '손톱'이다. 선친(先親)의 손톱을 닮은 것을 원망하고 후회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해서 유전성의 신비함에 감탄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구나 없다.

남들은 흔히 나에게 말하기를 낚시는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바둑판 옆에는 가기조차 꺼려하느냐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의 괘변은 그럴듯하지만 속마음으로는 우습기 짝이 없다. 가끔 지상(誌上)에서 보아 온 저명인사들의 어렸을 적의 버릇을 묻는 설문에는 이로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으로 부모님의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는 답변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 그와는 사뭇 다르다. 애당초에 생긴 모양새부터가 고동 딱지 같은 것이 그나마도 손가락 끝에 약간 찍어 발라놓은 것이어서 얼른 보면 밋밋한 고무장갑으로 착각할 정도로 돼 있다. 그러니 거기 어디에다 이를 댈 여지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이를 대지 않고 교묘한 방법으로 손톱을 뜯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 이토록 볼품사납게 일그러진 모양으로 바둑판 위에 점잖게 가져다 대는 나의 손톱이 상대방에게 적발되었을 때, 나의 계면쩍음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대방의 불쾌감을 무슨 재주로 달래줄 수 있겠는가. 바둑판 위에 집 만들 생각은 고사하고 손톱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나의 바둑은 십중팔구 지고 말 것이니 그런 사업은 애당초에 벌이지 않는 것이 상책인 소이(所以)다. 그러나 장기는 거리낌 없이 잘 둔다. 이는 워낙 탕탕 소리 내어 치는 놀이여서 '장이야, 차 받아라.' 하는 고함과 함께 판을 두들기는 소리로 상대방의 기를 죽여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에 나의 손가락은 벌써 제자리로 돌아와 숨어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발소에 가기를 싫어한다. 재깍재깍 한은 가위소리는 초가을 섬돌 아래 귀뚜라미 소리인 양 둔탁한 나의 머리를 맑게 씻어주어 들을 만하지만, 요즘은 나도 유행 따라 머리를 길게 기르다 보니 별로 깎는 재미도 못 보고, 벌떼처럼 덤벼드는 안마하는 아가씨들 등쌀에 그만 몸살을 앓고 만다. 두서넛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이 앙상한 뼈를 두들기고 휘어감는 달갑잖은 친절에는 주인장의 응원을 청할 수밖에 없는 고역이 되고 말았다. 그건 그렇다치더라도 역시 나에게 심각한 문제는 예(例)의 손톱이다. 자리에 앉아 이발할 채비로 목걸이 앞치마를 두르면 벌써 꽃바구니에 손톱깎이 도구를 담은 소녀는 쪼르르 찾아와서 나의 손을 낚아챈다. 앉아 있을 때는 고맙다는 말로 점잖게 사양하게 마련이지만 누워서 면도하고 있을 때, 예고 없이 낚아채는 순간에는 꼼짝없이 그대로 선을 보이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험상궂은 나의 손톱을 본 그 소녀는 깎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눈물 어린 언짢은 표정으로 이리저리 돌려가며 슬프게 감상하고 있었으리라. 뜻하지 않은 급습으로 동정(童貞)을 잃은 듯한 허전함은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남 앞에서 손을 펴놓고 제법 유식한 체 한자(漢字)까지 섞어 가며 글을 쓸 때나, 혹은 점잖은 술좌석에서 거품과 함께 한참 동안 보글거리며 솟아오르고 있는 맥주컵을 받아 쥐고 있을 때나, 떳떳이 내밀어 놓고 있기 거북한 나의 손톱이긴 하지만 나와 더불어 한평생을 같이 할 반려자임을 생각하면 그런 중에도 남다른 애착이 가기도 한다.

세상에는 예쁘고 고운 손톱들도 많이 보인다. 미장원에서 아침저녁으로 깎고 다듬어서 여러 가지 물감까지 들여 윤기나는 숙녀, 미인들의 손톱도 보거니와, 이발소에서 예쁜 소녀가 요리조리 돌려가며 다듬어 놓은 신사들의 품위있는 손톱도 많이 본다. 그런데 그 곱고 품위있는 손톱들은 한밤에 남의 방문을 긁어 밤잠을 설치게 하기도 하고, 남의 등을 긁어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게 하며, 가끔 착실한 남편들의 얼굴을 긁어 상감청자(象嵌靑磁)를 만들어 놓기도 한다.

나는 지금 가족들이 잠든 깊은 밤에 혼자 일어나 앉아 이 못난 손톱을 어루만지며 곱고 착하게 살아갈 양으로 애써 글을 다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