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 김창애
살아오면서 행운과는 지독히도 인연이 없었다. 하다못해 동네 마트에서의 사은 경품 행사나 지역 축제의 행운권 추첨에서조차도 화장지 한 롤 당첨되어 본 적이 없다. 어쩜 그리도 내 번호는 잘 비켜가는지 애초에 나는 행운이라는 것과는 인연이 없겠거니 포기하며 아예 시도조차도 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그랬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면 오후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보물찾기가 있었다. 기억하건대 나는 단 한 번도 보물을 찾은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요즘 보물 창고를 발견했다. 보물은 필요에 따라 하나씩 찾아온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매일매일 보물을 만난다. 어제는 오래된 막대 저울을 찾아냈다. 3층 옥탑방에서였다. 그곳은 시어머니의 창고다. 시어머니는 생활 전번에 필요한 모든 것을 그 옥탑방에 넣어 두셨다. 그곳은 다락도 있어 보물을 숨겨 놓기에 최적의 장소다.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야 들어갈 수 있는 다락방은 시어머니의 자식들이 남겨놓은 기록들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내가 사는 집은 30년 된 이층 양옥집이다. 원래 우리 가족은 1층인 가게에 딸린 공간에서 생활했었다. 그 이층인 이곳은 시부모님의 공간이다. 아울러 남편의 형제들은 형님네와 동서네가 결혼하고 자녀들을 낳아 키울 때까지 부모님의 돌봄을 받던 곳이다.
시어머니께는 3남 2녀의 자식들이 있다. 그 세 아들 중 남편은 둘째다. 위로 누나가 둘이나 있으니 서열로 따지자면 넷째 자식이다. 참으로 어중간한 서열이다. 그래서인진 남편은 늘 애정결핍에 목말라했다. 큰딸과 큰아들은 든든하고 친구 같고 믿음직하고 막내아들은 늦둥이라 애처롭고 안쓰럽다. 그 중간에 끼인 남편과 그 위의 누나는 시어머니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였다. 시어머니의 관심과 애정은 온통 큰딸과 큰아들, 그리고 막내에게 향해 있었다. 한때는 남편이나 그 위의 누나는 시어머니의 자식이 아니지 않나 싶기도 했었다.
창고는 시어머니가 아끼는 세 명의 자식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두 아들네가 각자의 생활 터전으로 떠나가고도 시어머니는 그 아들들을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형편이 넉넉지 못한 그 자식들을 위해 생선을 사다 그곳에 있는 냉장고를 채웠고, 생활용품을 사다 옥탑방에 쟁였다. 손주들을 위한 양말, 학용품, 옷가지들, 그리고 곡물같은 농사로 얻어지는 작물까지 그곳은 만물상이나 다름없었다. 당시에 시어머니는 뭐든 옥탑방에 숨기기 바빴다. 그러다 아끼는 세 명의 자식 중 누구라도 찾아오면 바리바리 옥탑방을 털어 차에 실어 주곤 했다. 곁에서 생활하는 우리 가족은 그 창고 속을 들여다볼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지금도 옥탑방엔 플라스틱 통에서부터 소쿠리, 반찬통, 주방용품 등의 미처, 혹은, 이제 그런 것이 귀하지 않게 된 자식들이 가져가지 않은 물품들이 즐비하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홀로 이 공간을 지키고 생활하셨던 시어머니는 거동이 힘들어지면서 당신의 보물이었던 큰아들네로 거처를 옮기셨다. 명분이야 마지막 효도라는 것을 하게 해 달라는 아주버님의 간곡한 부탁에 시어머니가 당신의 고집을 꺾은 것처럼 비쳤지만 기실 그 속내는 장남과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하셨는지도 모른다. 시어머니는 떠나시며 30여 년을 곁에 있어준 내게 딱 한 마디만 하셨다.
"너도 이제 한 번쯤은 편한 세상을 살아봐야지."
눈물겹도록 사무치는 말이었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나는 순수하지 못했다. 죽을 때는 꼭 내 곁에서 죽고 싶다 시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큰아들네로 훌쩍 떠나는 당신을 향한 변명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나는 여기고 있었다.
"내년 봄에 따뜻해지면 다시 올게. 그래서 지금 당장 입을 옷만 가져간다."
시어머니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아주버님을 따라 집을 나섰다. 그리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어머니가 모아 놓은 보물, 그것들은 오래되고 묵어 있다. 지난여름에는 10년 전에 감추어두신 참깨 한 말을 찾아내었다.
"깨는 묵혀 먹어도 괜찮다."
어느 해던가, 시아버지가 지으시던 참깨 농사가 대풍이었던 때가 있었다. 아마 그때 저장해 둔 참깨일 것이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2007년이라고 쓴 종이쪽지가 플라스틱 용기에 붙어 있어 그 참깨가 10년 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게 넉넉하게 참깨를 주신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시어머니의 인색함이 새삼 속상함으로 내 좁은 속내를 들키게 했다.
옥탑방은 쉽게 비워지지 않는다. 그 속에서 나는 보물찾기를 한다. 곡물의 양을 재던 됫박에서부터 박으로 만든 바가지, 곡식을 까부를 때 쓰던 키, 어레미와 체, 내 키만큼이나 큰 나무 주걱, 쌀을 이룰 때 쓰던 조리, 등등 살림을 하다 필요한 게 있으면 나는 옥탑방을 뒤진다.
보물은 옥탑방뿐 아니라 집안 곳곳에 숨어 있다. 시아버지가 지으시던 농사 용품도 창고에 가득하다. 호미, 괭이, 갈퀴 같은 것은 기본이며 소에 매어 밭을 갈던 쟁기부터 풀 짐을 지던 지게, 삼태기, 고구마를 넣어 빼때기를 만들던 기계. 모든 게 어머님과 아버님의 손때가 묻어 기름칠한 듯 반질반질 광이 난다.
이제 시어머니는 다시 오시지 못할 것 같다. 어차피 처음부터 돌아오지 못할 것을 당신도 나도 알고는 있었다. 다만 그런 속마음을 내색할 만큼 우리 고부는 표현이 적극적이지 못했다.
"너희들 보고 싶은 것만 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만날 때마다 며느리인 내 뺨을 부비고는 눈물을 흘리시며 '사랑한다. 내 이쁜 사람아."라는 닭살 멘트를 주저하지 않으시는 시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보물찾기 놀이를 하지 못하실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시어머니가 숨겨놓고 잊어버린 보물을 찾으러 옥탑방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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