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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마침표는 시작이다 / 정근식

마침표는 시작이다 / 정근식

 

 

글을 쓰다가 마침표를 찍었다. 글이 완성되어서가 아니라 한 문장이 끝이 나서 작은 점을 찍었다. 마침표는 끝이라는 뜻이지만 쉬어가는 쉼표와 의미가 비슷하다. 다음 문장을 시작하기 위해 앞 문장을 마무리하고 잠시 쉬어가라는 표시이다. 한편의 글에서 진정한 마침표는 마지막에 찍는 점 하나밖에 없다. 마침표가 모여 한편의 글을 완성하듯이 우리 삶 역시 퇴직, 졸업, 이혼, 죽음 등 크고 작은 마침표를 겪어야만 완성이 된다.

인생이란 대하드라마에서 쉼표의 의미인 마침표는 새로운 변화다. 변화는 희망과 두려움이 함께 존재한다. 새로운 변화에 좌절하는 사람도 있지만, 변화에 적응하여 새 삶을 잘 꾸려가는 사람도 많다. 글을 읽을 때 호흡을 편하게 하고 글의 흐름도 좋아지게 하는 마침표처럼, 인생에서도 적절한 마침표는 활력소가 되어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생의 마침표 중 비교적 충격이 큰 것은 퇴직이다. 퇴직은 금전적인 부담도 있지만, 무엇보다 심리적 상실감이 크다. 대부분 재취업을 하거나 사업을 하여 심리적인 부담을 해소하지만, 재취업이 어려운 정년퇴직자의 상실감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정년퇴직을 할 무렵이면 빈둥지증후군을 겪기는 하지만, 자녀들이 성장하여 생활비 지출은 비교적 적다는 점이다. 게다가 요즘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제도 덕분에 앞 세대에 비하여 노후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어 금전적인 문제는 다소 자유롭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자신의 삶의 질을 위해 나이가 들어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퇴직자들은 경제 활동을 하는 동안 즐거움도 있었겠지만 힘든 일도 많았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가정의 평화를 위해 원치 않는 일까지 해 왔다. 혼자 스트레스를 삭혔던 때도 많았을 것이다. 직장생활이 화려하던 그렇지 않았든 간에, 퇴직이란 마침표를 찍으면 모두 과거가 되어 버린다. 과거의 모든 경력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삶을 위하여 새로운 변화를 해야 한다. 경제적인 여유가 약간 부족하더라도 젊은 시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

나는 평소 탁구를 치고 글을 쓴다. 탁구도 글 솜씨도 뛰어나지 않지만 탁구장과 문학회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현직에 근무하는 분도 있지만 퇴직자도 많다. 특히 문학회에 퇴직자들이 많다. 교사, 공무원부터 노동을 하던 사람까지 퇴직 전의 직업은 매우 다양하다. 탁구장에는 탁구 잘 치는 사람이, 문학회에서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대우를 받는다. 나이도 과거의 직업도 외모도 상관없이 그 분야에서 실력만 있으면 존경을 받는다. 탁구장에서 고수를 만나거나 문학회에서 신춘문예 당선하여 이름을 알려진 작가를 만나면 괜히 존경스러워 보인다. 그들을 보면 좀 더 잘 보이려고 깔끔을 떨기도 한다. 보통 7,80대가 3 ,40대와 친구처럼 어울려 지내기가 쉽지 않지만, 취미활동에서는 나이를 상관하지 않으니 잘 어울려 지낼 수 있다. 퇴직 후에 나이보다 훨씬 젊게 살 수 있다.

경영학에서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포트폴리오 용어가 있다. 위험을 분산하라는 뜻으로 주식을 투자할 때 많이 인용된다. 한 종목을 투자하지 말고 투자 종목을 늘려 위험을 적당히 나누라는 것이다. 포트폴리오는 주식투자만 필요한 단어가 아니다. 삶에도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삶의 포트폴리오는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것을 가정, 직장에 취미활동 하나를 더하는 일이다.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취미활동을 추가한다면, 직장에서 실망을 느끼면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취미활동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사람이라 직장이나 가정에서 상실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직장을 옮긴 적도 있고, 지금 직장을 다니면서 실망을 한 적도 있었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나는 그때마다 운동을 하거나 글을 쓰면서 위로를 받았다.

지금 퇴직처럼 삶의 마침표를 앞둔 분이 있다면, 자신의 삶의 포트폴리오에 취미활동을 추가하라고 권한다. 돈이 되는 취미라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취미활동으로 자신의 삶을 찾아보길 권한다.

많은 마침표가 모여 한편의 글이 완성한다. 우리의 삶도 크고 작은 마침표를 많이 찍어야 아름다운 삶이 완성된다. 삶에서 퇴직, 결혼, 사별, 가출, 합격 등 많은 마침표를 만난다. 그때마다 너무 슬퍼하거나 기뻐할 필요가 없다. 그것 역시 삶을 만들어가기 위한 작은 마침표이고 새로운 시작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