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초 / 임춘희
“투~~둑~~툭~~툭.”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마당에서 나는 구둣발 소리에 잠에서 깼다. 토끼 눈이 되어 바짝 긴장한다. 정신이 번쩍 든다. 분명 건장한 남자의 발소리임에 틀림이 없다. 누가 이 밤중에 우리 집 담을 넘었을까. 도둑이구나. 현관문을 열어 볼까. 아냐, 이 층에 사는 아들 내외에게 당장 내려와 보라고 연락해야지. 안 돼. 아직 살아갈 날이 창창한 아들인데 괴한이 휘두르는 흉기에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렇다면 경찰에 신고하자.
어이쿠, 이 일을 어쩌지. 구둣발 소리가 내 방 쪽으로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다. 금방이라도 현관문을 부수고 집안으로 들어올 것만 같다. 눈꼬리를 힘껏 치켜뜬 채, 나를 노려보고 다가오고 있는 건 아닐까. 흉기는 방바닥에 “퍽” 꽂아 놓고 가진 것 다 내어놓으라고 협박하겠지. 아냐, 저기 안방 창문으로 쳐들어올지도 몰라. 그 방 창문은 잠그지 않았으니까 쉽게 들어올 수 있어. 문을 잠그러 가고 싶은데 용기가 나질 않는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단독 주택에 혼자 살고 있다. 이층에 아들네가 살고 있어도 드나드는 통로가 다르고 생활하는 것도 완전히 독립을 했다. 이층에 산다뿐이지 먼 곳에 사는 거와 마찬가지다. 그러니 옷도 편한 것만 골라 맘대로 입고 소파에 누워 있을 때도 세상 편한 자세다. 맨 처음엔 혼자 산다는 게 외로워 견뎌내는 데 무척 힘들었다. 차츰 적응되어갔다. 대화할 상대가 없으니 텃밭에 온갖 야채들을 심었다. 매일 자라나는 푸른 잎들을 들여다보며 사랑을 쏱아 부었다. 뜨락에 나란히 앉아 있는 다육이는 어떠한가. 윤기나는 그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외로움을 달랬다.
날이 갈수록 단독 주택살이가 좋아졌다. 지인들은 자주 질문한다. 도둑이 쉽게 들어올 수 있을 텐데 하고. 그러나 도둑이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독 주택이 모여 있는 곳이라 양사방 센서 등과 감시 카메라가 있으니 누구든 쉽게 들어올 수는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옴짝달싹 못하고 한자리에 망부석이 되었다. 벽에 부착된 전등 스위치에 손을 내민다. 갑자기 발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데크에 올라서는가 싶더니 발소리가 멈췄다.
‘어~~힝~~.’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건가. 이마에서 진땀이 난다. 몸은 사시나무 떨듯 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마당과 현관에 설치된 센서등이 작동하지 않는다. 어찌된 일일까. 도둑이 재바르게 센서등을 모조리 오작동으로 바꿔 놓았을까. 그렇다면 큰일이다. 나는 살 만큼 살았지만, 이층에 사는 아들 내외는 어쩌지. 당장 피하라고 연락을 해야 하나. 아니지. 내 가진 것 다 내어 놓을 테니 아들 내외는 고이 두라고 할까.
오만가지 생각에 시달리다 다시 바깥에 귀를 기울이니 기척이 없다. 조심조심 현관문 쪽으로 걸어간다. 순간 센서등이 환하게 켜진다. 나도 모르게 자지러지도록 소리친다.
“도~~도둑이야.”
내 목소리만 크게 울려 퍼질 뿐 바깥은 조용하다. 심호흡하면서 현관문을 연다. 아무도 없다. 내가 움직이니 하릴없이 졸고 있던 마당의 센서등이 하나 둘 켜진다. 환해진 마당 전체를 둘러본다.
“어라~~이게 뭐야?”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해 댔던 터무니없는 상상력에 피식 웃고 말았다.
옆집의 살구나무 짓이다. 우리 집 마당에다 노랗게 익은 열매를 여기저기 떨구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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