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그만 보답 / 김복건
‘여보게! 일어나시게나.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러 가야지’ 하는 것만 같은 소리에 벌떡 일어나 삼배를 올린다. 감사의 인사다. 부스스한 모습인 나를 책장 중앙에 모셔진 애기 부처님께서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계셨다.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면서도 시공을 초월하여 시방삼세에 아니 계신 곳이 없는 분이시기에 몇 해 전부터 습관적으로 해 오던 문안 인사다.
서원을 정해두고 그 실행을 위한 나의 우선적인 일과는 부처께 예를 올리면서 시작된다.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하심이다. 나를 낮추어 나 아닌 사람들을 공경하는 마음의 발로인 것이다. 그렇기에 부처님의 지긋하신 미소를 대하며 시작하는 하루는 활기차고 기쁘다. 삼배를 올리고 난 뒤의 나는 그 전과 달리 정신적으로 많이 여유로워졌음은 물론 마음의 눈이 맑아지고 귀도 밝아졌다.
마당 한켠에 피어난 꽃들의 생명이 보이고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봄부터 잎을 피우던 것들에서 꽃을 피우기까지의 원인과 결과가 연결된 것임을 나를 낮추고부터 느꼈다,
내가 이렇게 인과응보를 말하는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만남에서이다. 어리기만 했던 나도 나이가 들어 부모님 제사 문제가 닥쳤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에게 카톨릭 신자인 친구는 “천주교에서는 부모님의 제사는 미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효 사상으로 제사가 허용된다."라고 말하며 성당에 함께 나가길 권하였다. 어릴 적 교회를 다녀본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망설임을 붙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팔공산 갓바위를 향했다.
정상에 올라서니 얼굴에 까만 점이 있는 탤런트 정00씨가 나에게 한권의 책을 권했다. 부처님 말씀이 담긴 정토라는 얇은 책자였다. 얼떨결에 받아들고 몇 자 넘겨보는 사이 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나의 시선 끝에 머무는 한 여인이 있었다. 갓바위 부처님을 향해 끝없이 절하는 모습이 보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이곳까지 올라와 엎드려 절하며 무엇을 비는 것일까? 그 여인도 나와 같이 고민이 있을까? 누구나 살아가면서 소망만큼 번민도 커 가는 것일까? 이런저런 의문이 계속 들었다.
집에 와서 나는, 예의 그 책을 단숨에 읽었다. 쉽게 씌어진, 그러나 지금까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높은 가르침이었다. 나의 뇌리는 끊임없이 울렁거렸다. 그 길로 결심을 하고 며칠 뒤 개학하는 서울 종로의 대각사 불교대학을 입학했다. 그 후로 내 마음은 고요해지고 차츰 안정되기 시작했다.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지나면서 제법 불교에 관한 생활이 익숙해졌다.
나를 낮추는 절과 명상은 나의 일상을 조금씩 바꾸어 갔다. 정진을 하며 행하는 하심의 절 기도가 천 배, 이천 배, 삼 천 배가 넘어설 즈음, 어스름 새벽과 함께 오천 배를 알리는 도량석 스님의 목탁소리에 나의 성실하지 못했던 지난 삶이 보이고, 삶의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특히 육체적인 고통이 뒤따르는 절 수행 끝의 묘한 정신적인 카타르시스는 나를 더욱 편안케 했다.
불교적 가르침은 많이 가지려 다투는 마음을 지우고 조그만 것에 만족하게 하였다.
해골바가지의 물을 다 토해 내는 의상스님을 바라보던 원효스님은 “간밤에 그렇게 맛있고 다디단 물과 오늘의 물이 다르지 않는데 왜 토해 내게 될까? 물은 변함이 없는데 변한 것은 내 마음이구나.” 하며 스스로 깨쳤던 것처럼 ‘일체 유심조’ 그 속에 진리가 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바로 지옥도 될 수 있고 극락도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 진리의 말씀을 느끼도록 책을 나누어준 그분께 감사하며 나는 백배로 돌려 드리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주문한 책이 도착하였기에 일요일인 오늘 갓바위 정상에서 백 권의 책을 들고 한권씩 나눠 주려 하였다.
나를 평안케 해 주었던 한권의 책이 또 다른 이들을 편안케 하고 수백 수 천 권의 또 다른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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