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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기차 / 박시윤

기차 / 박시윤

 

 

기차는 언제나 앞만 향해 달렸다. 어디서 떠나와 어디로 향하는지, 어린 나에게 알려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기차가 떠난 철로 위로 허공을 검게 휘젓던 검은 탄가루가 보드랍게 내릴 뿐이다. 탄가루가 돈가루였던 문경의 산기슭을 돌아 기차는 쉼 없이 오고 갔다. 기차가 떠난 철로를 따라 온종일 놀다 보면 저녁보다 까만 탄가루들이 코 아래까지 따라 들어와 있곤 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그러했다. 얼레리꼴레리를 연거푸 토해내며 까르르 넘어가던 웃음들이 삼십 년이 흐른 지금 붉디붉은 녹을 뒤집어쓴 채 고스란히 서려있다.

싣고 들어온 사람의 수보다 실어 나른 탄가루의 양이 더 많았던 문경선의 기차들은 늘 환희에 찬 기적을 울려대곤 했다. 저녁 무렵 탄광의 일과를 끝내고 삽짝을 들어서는 아비들의, 밭농사에 이골이 난 어미들의 미래와 희망의 소리였으리라.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기적소리 길-게 뿜어내고 터널 속으로 들어간 기차는 지금쯤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종착역은 아직 멀었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서른의 중반을 넘긴 나는 지금까지도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모르고 산다. 그저 역사를 출발한 기차들은 아직도 정지하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리고 있을 거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탄가루가 검게 내려앉은 철로 위로 철없이 싸락눈이 곱게 내려앉던 날, 우리 가족은 고향을 도망치듯 떠났다. 아버지의 보증 빚과 노름빚이 찬바람처럼 불던 날, 햇살이 들어 따사로운 너른 마당의 집은 이미 우리 것이 아니었다. 이삿짐센터 파란 트럭에 올려진 세간들은 너무도 간소했다. 오빠와 남동생이 트럭의 뒷 칸 세간들 틈에 몸을 숨겼고, 두꺼운 담요가 멍석처럼 덥혔다. 언니와 내 손에 쥐어진 파란색의 열차표 한 장씩에는 구미역에서 내려 출구를 빠져나가면 역 광장 시계탑에서 당숙이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어머니의 신신당부가 서려있었다. 낯 선 이를 따라가거나, 그들이 주는 어떠한 음식도 받아먹어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의 당부에는 시골에서 때 묻지 않고 순진하게만 자란 중학생 맏딸과 철없이 날뛰는 둘째 딸을 염려하는 마음이 컸다. 나는 언니만 믿었다. 언니는 내 몫의 열차표 한 장을 건네주며 절대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일렀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반드시 지켜내야 할 중요한 몫인 것처럼. <비둘기호 250원>이라는 글자는 긴장된 체온의 열기와 누구의 것인지 모를 눈물로 얼룩져 이미 너덜너덜 해져 있었다.

기차 안은 바깥의 매서운 바람과는 달리 온화했다. 기차의 몸체를 따라 긴-의자가 늘어져 있었고, 누구랄 것 없이 먼저 터 잡고 앉는 자가 주인이고 임자였다. 그것이 기차를 타는 이들의 온전한 룰이었다. 언니와 나는 떨어질세라 손을 꼬옥 잡고 출구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기차가 정차하는 역마다 문이 열렸고, 문틈으로 역들의 냄새가 따라 들었다. 역들은 저마다의 냄새가 독특했고, 도시가 가까워지면 질수록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말투, 냄새도 달랐다.

이따금 지나가는 판매원의 수레에는 과자와 음료가 가득했다. 내 시선이 판매원의 움직임을 벗어나지 못하자 언니는 책 속에 감춰둔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비스킷을 샀다. 엄마가 급할 때 쓰라고 찔러준 비상금이었으리라. 달리던 열차가 기적소리를 내며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겨울의 풍경이 고요하게 그려지던 창밖은 이내 캄캄해졌고 창문에는 기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형상이 환영처럼 비춰졌다. 그 사람들 사이에 언니와 내가 있었다. 깜짝 놀라 눈을 부비고 다시 봤다. 창문에 서린 사람들은 영혼을 내려놓은 듯 기차의 움직임마다 스물 거렸다. 우리는 지금 터널 안에 갇혀 버린 걸까. 숨 가빠하며 식은땀을 흘리는 내게 멀미를 하는 것뿐이라고, 잠시만 눈 감고 있으면 곧 터널을 벗어날 거라고, 터널밖엔 다시 환한 세상이 있을 거라고 언니가 나를 다독였다. ‘환한 세상! 기차가 우리를 미지의 세상으로 데려다줄 거라고?’ 그렇게 나는 어둠 속 폐소공포증의 두려움을 안고 잠이 들었다. 기차가 데려다줄 환한 세상을 기대하며.

몸뚱어리만 건강하면 먹고 살만할 거라던 도회지는 숨이 막혔다. 기차만큼 길고 좁은 골목을 지나 변두리 반 지하에 튼 둥지는 살가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싸늘했다.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졌다. 흙을 목숨과도 같이 여기면 살아온 우물 안의 개구리들, 적당히 때 되면 배만 채우면 될 성 싶은 거러지 같은 존재. 대문을 마주한 이웃들은 텃새를 부리며 우리를 그렇게 대했다. 세상에서 제외된 듯 나는 어두운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외톨이처럼 자랐다. 고향의 따스한 햇살과 너른 마당,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장독대, 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동무들이 그리운 날에는 기차를 타고 돌아가고 싶었다. 250원짜리 열차표만 있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지긋지긋한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 다시 씨앗들이 움트는 흙 마을로 가고 싶었다. 돼지저금통에 차곡차곡 모으던 동전들을 쏟으며 나는 기차를 탈 생각을 했고, 이 도시를 벗어날 상상 속에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기차에 대한 생각은 희망이었고, 오랜만에 얼굴 가득 웃음을 가져왔다. 그러나 번번이 엄마와 아버지는 역정을 내셨다. 아버지는 모질게 앞만 보고 달리라고 나무라셨다. 지나온 시간은 빈 쭉정이뿐이었다고, 돌아볼 겨를이 있으면 그만큼 앞을 향해 이 악물고 달리라고. 흙을 믿으며 평생을 사셨던 아버지에게 보증 빚은 흙을 빼앗아 간 상처와도 같았으리라. 아버지는 절대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고 훈육하셨고, 그런 아버지의 욕심과 고집을 감당하지 못한 나는 아버지라는 터널 속에 갇혀 숨 막혀 울곤 했다. 때로는 그런 아버지가 미워 탈선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탈선은 죽음에 이르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고 매를 드셨다. 나는 아버지를 미워했으며, 아버지는 그런 나를 더욱 매섭게 앞만 보라고 등을 떠미셨다. 대체 아버지가 말하는 ‘앞’ 그곳엔 무엇이 있기에. 터널 속에 갇힌 듯 답답하고 숨 막혔던 학창 시절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나는 뼈저리게 아픔이 서려있는 고향을 완벽하게 잊은 척하며 자랐다.

다시 기차에 올랐다. 앞만 보고 달리라던 아버지가 먼저 뒤를 돌아다보셨다. 고향에 가고 싶다고. 쏜살같이 흐른 세월에 아버지의 등이 휘어있었다. 삼십 년이 흐른 오늘, 아픔을 추억으로 돌리고서야 고향을 찾는다. 기차 안은 한산하고 인기척이 드물었다. 번잡하게 오고 가던 기차는 하루에 세 번으로 단축이 되었고, 기차의 몸뚱이를 뜨겁게 달구던 수많은 인파는 가물었다. 승용차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처음 타는 기차가 신기한지 자꾸만 두리번거린다. 고향을 떠나오며 나 역시 처음 올랐던 기차가 저 아이들처럼 신기한 건 매한가지였다. 기차는 말없이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내 얼굴이 차창에 또렷이 비춰졌다. 삼십 년 전 수많은 인파들 속에 환영처럼 갇혀있던 나는,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있다.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셨고 나는 아버지의 시선을 외면한 채 창밖을 바라본다. 환영처럼 생각 하나가 뇌리를 뚫고 지나간다. 어쩌면 자라면서 갇혀있었던 터널은 아버지의 욕심이 아니라 내가 파놓은 허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도회지의 낯선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으로만 맴돌던 나를, 터널 속에 갇혀 어둡게만 자라는 나를, 터널 밖 쏟아지는 빛의 세상으로 밀쳐내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나의 환영 저- 너머엔 어머니가 계시고, 내 아이들이 와서 깃든다. 기차가 주기적으로 흔들릴 때마다 옛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던 길을 서른의 중반에 와서야 기억했다. 한번쯤은 다시 더듬어 보고 싶었던 길. 가슴 시리게, 배고팠던 고향을 잊기 위해 타향에서 깨문 어금니는 나를 도회지로 데려다준 기차의 쇠 길보다 강했다. 기차는 뒤돌아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종착역에 이르면 어제 떠나온 선로에 새로운 꿈을 던져두고 그것을 쫓아 쉼 없이 달린다.

멈추지 않고 달리던 기차가 멈춰 섰다. 일대 광산들이 폐쇄되면서 잠시 머무르는 역보다 그냥 지나치는 역들이 많아졌고, 역사驛舍는 싸늘한 바람으로 가득했다. 새까맣게 탄가루가 서려있던 무쇠 선로 위로 탄가루는 오간데 없고 빛바랜 세월과 햇살이 소복이 내려앉아 반짝이고 있다.

잠시만 쉬어가자고 기차가 말한다. 묵직한 세월과 같이 묻어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가끔 나처럼 고향이 그리운 이들이 소리 없이 왔다가 간다고 했다. 산을 만나면 자연스레 돌아가고, 강을 만나면 흔쾌히 굽어가던 시절을 회상하며 기차는 점촌역에 나를 내려두고 종착역을 향해 떠났다.

어디선가 낮은 기적소리처럼 환청으로 드리워진다. 국토의 깊은 속까지 스며들어 삶을 실어 나르던 철길 위로 역무원의 깃발이 환영으로 펄럭인다. 산 넘고 물 건너 온 소식들이 잠시 정차했다가 이곳의 소식을 안고 다음 역으로 떠나간다. 나는 그제야 아버지의 마음을 본다. 떠나온 세월만큼 아버지도 고향이 그리웠다는 걸. 문득문득 고향이 그리운 날에는 아무도 몰래 아버지의 마음은 벌써 기차 위에 올라있었다는 것을. 나처럼 아버지도 열차표 값을 차곡차곡 모으고 계셨다는 것을.

나의 기차는 아직도 종착역을 모르고 앞만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무도 몰래 너른 들판의 풍경을 곁눈질하며 하루하루 꿈을 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