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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최선을 다해 정면으로 / 이영호

최선을 다해 정면으로 / 이영호

 

 

큰 시련을 당할 때는 누구나 마음이 급한 법이야. 주위에서 마음을 크게 먹어라, 곧게 가져라 해보았자 크게 위로도 도움도 되지 않을 거야. 적어도 그 순간만은 그럴 거야. 그런 격려나 위로의 망이 귀에 제대로 들릴 리 없지.

그러나 이걸 기억하면 좀 도움이 될 거야. 인류는 안락과 즐거움의 공동체이기보다는 시련과 고통의 공동체라는 사실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인류 가운데는 즐겁고 안락하게 살고 있는 사람보다 고통과 시련 속에서 사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거야. 그래서 내가 지금 시련을 겪는 것이 인류 공동체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 공동체의 보다 완전한 회원이 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련을 당할 때 너희들의 심정은 천애의 고아가 된 것 같겠지만 실은 그 시련을 통해 너희들이 인류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내가 대장암이란 중병에 걸리고 처음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인 줄 알았지. 앞으로 얼마 동안 살게 될지 모르고 또 그 얼마 안 되는 동안도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르고. 그러나 차차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되더라. 나는 최소한 지적인 기능은 멀쩡하잖아. 그러니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죽는 사람보다는 훨씬 낫지. 평생 자기 힘으로 앉아보지도 못하는 장애자가 또 얼마나 많아.

그리고 병만 어려운 게 아니지. 세상에는 질병 말고도 온갖 어려움이 많잖아. 병은 최소한 죽으면 해결되는 문제야. 죽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얼마든지 있지.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에 큰 위로를 받게 돼. 외롭다는 생각도 없어지고, 오히려 감사하다는 행각이 들지. 요즘 나는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농맹아의 3중 장애를 극복하고 사회사업과 저술활동으로 세상의 빛이 된 헬렌 켈러 여사를 생각해 봐라. 켈러 여사의 위대성은 그런 엄중한 시련이 없었던들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남처럼 정상적으로 태어났다면 켈러 여사도 그냥 평범한 삶을 살다가 갔을 거야.

우리 가까이에도 훌륭한 귀감이 되는 분들을 찾을 수 있다. 운보 김기창 화백이 바로 그런 분이다.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 했으니 그가 겪은 시련이 얼마나 가혹했겠니.

그러나 김 화백은 그 시련을 극복해냈다. 미술계에서 성한 사람들도 따라가기 힘든 업적을 남기고 있고, 또 자신과 같이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켈러 여사나 김 화백 같은 분의 상징적 의미는 더욱 크다. 결국 시련은 아무리 엄중해도 인간 의지를 굴복시킬 수 없음을. 다시 말해서 좌절을 거부하는 의지가 있을 때 시련은 승리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웅변해 주는 것이다.

여기서 시련이 왜 시련試鍊이라고 쓰는지 잠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시련은 시험試驗과 단련緞鍊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지. 사람됨을 시험하고 사람이 되도록 단련해 주는 것이다. 사람됨이 괜찮은 사람은 시련을 능히 이기고 시련이 주는 단련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여기 돌덩이가 하난 있다고 하자. 이게 다이아몬드인지 아닌지는 또 나아가서 좋은 다이아몬드인지는 깎아봐야 아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다이아몬드도 세공하지 않으면 흔해 빠진 돌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켈리 여사와 김 화백도 뼈와 살을 깎는 것과 같은 시련을 겪지 않았으면 영롱한 광채를 발하는 다이아몬드가 되지 못하고 길가에 뒹구는 돌덩어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련이 축복이 될 수 있는 거야. 아니 모든 시련이 축복이 되도록 해야 하는 거야.

인간은 마음만 바로 먹으면 누구나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 인간은 놀랍도록 적응력이 강하거든. 시련 극복의 과정에서 생각하지도 않았던 적응력이 있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곤 하지.

시련을 저주로 보지 말아라. 천벌로 봐서고 안 된다. 도전으로 보아라. 능력 발휘의 기회로 보아라. 그렇게 하면 시련은 반드시 극복될 수 있고 또 그런 경험을 통해 너희들은 놀랍게 성장하게 될 거야.

경험을 쌓게 되니 앞으로 겪게 된 비슷한 상황에서 보다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거야. 그리고 한번 이겨냈다는 사실은 또 앞으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줄 거야. 또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능력도 커지고 세상 보는 눈도 나아질 거야. 다시 말해 사람은 시련을 통해 성장하는 거야.

특히 시련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따뜻한 눈으로 보게 될 거야. 그만큼 사랑이 커지는 거지. 그게 참성장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