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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방아깨비와 디딜방아 / 안경덕

방아깨비와 디딜방아 / 안경덕

 

 

호리 낭창한 관음죽 이파리 위에 앉은 방아깨비 두 마리가 다소곳하다. 밤낮 마주 보면서도 지겨운 기색이 없다. 금실 좋은 부부 같은 연출로 다정한 느낌을 오롯이 안겨 준다. 볼 때마다 가슴 따스해오고, 고향 들판의 삼삼한 추억을 소환해 준 그 노인이 떠오른다.

몇 달 전 동해선 전동 열차를 타고 갈 때였다. 옆자리에 일면식도 없는 노인이 내게 방아깨비를 건네주었다. 화들짝 놀랐다. 당신이 손수 풀잎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퍼뜩 보아 진짜 같았다. 겨울 한복판에 짙푸른 색과 살짝 뜬 실눈, 얼굴보다 훨씬 긴 더듬이, 사뿐한 날개, 톰톰하고 탄탄한 등줄의 선명한 선, 가늘고 긴 다리의 정교한 맵시가 뛰어났다. 그 섬세한 솜씨에 감탄했다. 노인은 방아깨비 만들게 된 동기와 시기에 맞추어 풀잎을 채취하는 설명까지 곁들여 주었다. 진지한 말속에 어느 푸른 들판의 상큼한 생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노인은 어릴 때 아버지가 갈풀을 소금물에 며칠간 담갔다가 그늘에 말리는 것을, 정갈하게 갈무리해 모자와 곤충 만드는 것을 어깨너머로 배웠다고 했다. 그중 당신이 좋아한 방아깨비를 지난여름부터 만들었고, 좋아할 만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고 했다. 그 재미에 밤잠을 설칠 만큼 방아깨비 만들기에 푹 빠졌다며 발그레해진 얼굴이 소년처럼 해맑았다.

그렇게 받아온 방아깨비를 여기저기 옮겨가며 붙여 보았다. 우리 마루 화분의 가녀린 춘란 잎에 올려놓기에는 마뜩잖았다. 유독 윤이 흐르는 고무나무의 넓은 이파리엔 고목에 붙은 매미 같았다. 다행히 관음죽 이파리가 제격이다. 둘이 비슷한 모양과 색깔이 조화롭겠다고 여기에 두었다.

방아깨비는 창 너머 푸른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과 노느라 살랑거린다. 아마 들판이라고 착각하나 보다. 관음죽이 새침해진다. 방아깨비가 딴청 피우는 게 싫은 모양이다. 내가 마주 보도록 손을 맞잡아 준다. 관음죽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방아깨비와 함께 배시시 웃는다. 앞으로는 둘이서 오순도순하든, 티격태격하든 나는 바라만 보련다.

예전엔 방아깨비가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어주었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두 다리를 잡으면 안간힘을 쓰면서 방아 찧듯 콕콕 몸 치기를 해 댔다. 그 모습이 방아 찧는 모습과 흡사하여 방아깨비라는 이름을 얻었을 테다. 몸통을 까딱까딱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는 게 웃음을 주고 신기했다. 디딜방아 모습 같아서였다. 그래서 방아깨비라는 이름이 아릿했을까. 졸졸 흘러가는 개울물을 건너 들녘으로 벗들과 소 풀 먹이러 갔을 때, 소가 뱃구레를 채울 동안 방아깨비 놀이를 했다. 그 추억이 어제 일처럼 선연하다.

방아깨비를 닮은 디딜방아는 옛 아낙들에게 시집살이의 한풀이 도구로도 쓰였다. 집집이 있었던 돌절구 통과 달리, 대개 한 마을에 한두 개 정도 공동으로 쓰는 물건이었다. 나무둥치가 굵고 튼실한, 수평으로 된 긴 나무 몸통 하나에 중간지점 받침을 놓고 두 가닥의 다리 두 개가 대부분이다. 지게나 새총가지처럼 생긴 y자 형태다. 간혹 네 개, 여섯 개의 다리가 있긴 했다. 다리 숫자 따라 조를 이루어 양쪽에 서서 호흡을 맞추어 힘을 모은다. 동시에 한 발씩 방아다리를 디딘다. 머리 부분에 공이를 박아 그 공이가 닿는, 땅바닥에 안착시킨 둥근 돌에 방아확이 옴팍하다. 곡식을 찧었고, 마른 고추, 불린 쌀 등의 가루를 빻았다. 온 힘을 쏟아야 했으니 아낙들은 쌓인 스트레스도 함께 찧고 빻았던 셈이다.

노인이 애써 만든, 순수 창작물을 대가 없이 베푸는 일이 매우 소소한 것 같지만 아무리 봐도 대단하다. 노인들이 흔히 겪는다는 외로움을 잊고 방아깨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자력이 말이다. 팔순 나이에 서정적인 감성을 지닌다는 건 흔한 게 아니잖은가. 노인은 베풂에서 얻는 충만감이 얼마나 크랴. 마음 다해 한 개의 작품을 만들 때마다 누군가에게 나눠 줄 생각으로 즐겁지 않겠는가. 내가 방아깨비를 보며 디딜방아를 떠올리는 건 어머니가 생각나서다. 노인도 방아깨비로 향수를 달래고 싶었을까.

그 시절엔 가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짝지어 디딜방아를 찧기도 했다. 둘이 합심으로 방아를 찧었으니 디딜방아가 고부간의 마음 맞춰주는 매개체였다. 오가는 대화 속에 갈등이 근접하지 못했을 테니까. 고부간 사랑에 지대한 공을 세운 셈이다. 시누이와 올케, 동서지간에도 끈끈하게 정을 이어 주었다. 그러나 디딜방아 간은 며느리들의 푸념과 한숨을 받아 준 은밀한 곳이었다고 해야 옳다.

어머니는 숙모와 단짝이 되어 디딜방아를 자주 이용했다. 두 분은 우애가 매우 깊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마음 모아 척척해 냈다. 그리고 잠깐씩 쉴 때와 먹거리 앞에서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할 정도로 한발 양보하고 서로를 챙겼다. 할머니는 동서지간의 돈독한 정을 매우 흡족해하셨다.

하지만 맏며느리인 어머니의 고충을 아래 동서가 어떻게 다 헤아렸겠는가. 부엌은 어머니에겐 기쁨보다 고달픔을 안겨 준 공간이었다. 어머니는 열 명의 식솔 뒷바라지와 많은 제사로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었고, 한평생 할머니의 고된 시집살이와 완고한 아버지 뜻을 따르느라 속 눈물 또한 마를 날이 없었다. 아마도 돌확을 땅땅 때리는 디딜방아의 공이가 부러웠으리라. 아파도 참고 다 받아 안은 디딜방아의 돌확처럼, 어머니도 어른의 억지스러움과 자식들의 투정을 다 받아안았다.

어머니를 그리는 내 마음을, 아니 어머니가 안고 간 그 한을 방아깨비를 보며 헤아려 본다. 잔잔하게 웃던 어머니 모습이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