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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성선설(性善說) / 남영숙

성선설(性善說) / 남영숙

 

 

떠밀리듯, 우리는 속도라는 열차에 태워져 지향 없이 흘러간다. 끊임없이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면서 세상에서 바쁘지 않은 사람은 이미, 없다. 그리하여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루어 가는 근간인 인간의 감성적 측면이 고갈되어가는 듯하다. 현기증 나도록 빠르게 세상을 변하게 하는 "속도"와 그것에서 연유하는 사회현상이 두려운 것이다.

사람들 간의 이해는 상충하고 거대한 상업 정신만 범람하는, 그것의 가치가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너도, 나도, 악세어진 풀처럼 가슴들이 빳빳하기 그지없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아 사람의 모듬살이가 더욱 힘들어졌다. 자고 나면 사건, 사고와 시위, 파업으로 얼룩이 진다. 의경, 전경이 시위대에 조롱 받고 폭력까지 당하는 세상이다. 이미 촛불은 선명성이 없고 공권력은 권위를 잃었다. 방패와 창인 그들 모두 이 땅의 젊은이다. 정치권은 어떠한가. 대의정치는 실종된 듯하다. 저 위의 어딘가에 "계실" 절대자의 시각으로는 한 개의 문을 두고 이쪽에선 "출구다", 저쪽에선 "입구다"하는 정당 간, 계파 간의 명분 없는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영일이 없다. 의(義)보다는 이(利)가 언제나 우선한다. 언뜻, 혼란하기만 한 세상이 살맛이 나지 않게 한다.

그러나 세상 속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면면히 이어져 온 인간사의 바탕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근본은 선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예절지도사인 지인으로부터 샘물 같은 청량한 소식이 있었다. 어느 구청에서 연 예절교실에 300여 명이 몰려와 주최 측을 흐뭇하게 하였다고 한다. 교육의 내용이 관혼상제와 그 밖의 범절에 대한 전통예절이나 시대에 맞게 개량한 것을 가르친다고 하는데 무료교육임을 감안하여도 놀라운 숫자이다. 예절은 인간에게 규범이고 속박이다. 속박이어서 또한 범절이 된다. 예절이라는 인간의 염치는 삶을 부패하지 않게 하는 방부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것은 삶이라는 구근이 밀어 올린 아름다운 꽃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절이란 것은 살면서 저절로 체득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분분한 세상에 그것을 마음의 한 갈피에 끼워 넣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런 세태에, 격식을 갖춘 예의범절을 배워 보겠다는 마음 씀씀이가 무척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예절을 지킨다는 것은 타인을 위한 배려로서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그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선함의 바탕에서 나온다. 그러고 보면 개인적으로 만나 가슴을 열면 선하지 않은 이 없었다. 선한 마음이란 배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바닥짐"과도 같다. 바닥짐이란 배 밑에 싣는 돌, 모래, 자갈 등의 중량화물로, 배의 균형을 잡아 배 위의 짐이나 승객이 이리저리 옮겨져도 선체의 안정을 유지하여 전복을 막는 장치이다. 바닥짐이 항해를 무사히 마치는데 큰 역할을 하듯 인간 본래의 선한 본성이라는 바닥짐이 세상을 순항하게 한다. 선함은 옳음을 지향하고, 옳음은 필경 선함으로부터 나온다. 그 둘은 안과 밖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다.

식품 제조업체나 개인에게 식품을 기탁 받아 소외된 이웃들에 식품을 나눠 주는 푸드 뱅크 사업에 요즈음 같은 물가고에도 불구하고 기탁 물량이 늘어났다고 한다. 임신할 수 있는 젊은 배우 부부가 남의 핏줄을 둘씩이나 입양하고, 노인들을 지극하게 돌보는 찻집의 여주인이 새로운 이웃 봉사회를 조직하였다는 신문 보도도 있었다. 미담은 질긴 섬유질만 남은 우리들 가슴에 연한 잎의 속살을 되돌리게 한다.

신이 세상에 부려놓은 인간은 본시 추한 존재는 아니었다. 백여덟 가지 번뇌에 시달려야 하는 그 "삶"이란 것이 사람의 심성에 얼룩을 만든 것뿐이다. 인간 본성은 선천적으로 선하며 나쁜 행위는 여러 가지 물욕, 욕망에서 생겨난 후천적인 것이라는 맹자의 "성선설"은 언제까지라도 유효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