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릇노릇하게 / 이미영
명절이면 유독 그렇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라고 주문을 걸어보지만 약발은 신통치 못하다. 어머니는 거실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도 “아이고” 탄식 같은 추임새를 넣고는 제자리 뺑뺑이를 돌다가 겨우 일어선다. 아픈 다리를 끌듯이 걸어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다.
노릇노릇하게 바삭바삭하게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해놓은 음식들을 뒤적인다. 마음에 들지 않은 놈들을 골라 다시 하기를 바라는 표정을 지으면 금세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고, 괜찮지가 않게 된다. 가만 생각해 보니 처음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결혼 후 첫 명절을 맞아 큰댁으로 음식 장만을 도우러 갔다. 사람들도 낯설고 일도 어설픈 내게 사촌 형님들은 자상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럴 때마다 큰 어머니가 와서 똑같은 말씀을 덧붙였다. 형님들은 한목소리로 이제 다 알아서 하니 가만 계셔도 된다고 했다. 큰어머니는 말씀으로는 우리 며느리들이 이제 선수가 되었다고 하고 손으로는 소쿠리를 뒤적여 상에 차지 않는 것들을 골라서 형님의 프라이팬에 스윽 밀어 넣는다.
“아이고 어무이” 했지만 웃으며 손으로 고집하는 명령에는 당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아주머님들이 나서서 며느리들에게 맡기고 담소나 나누자고 뒤집개를 빼앗았다. 그러겠다고 자리를 뜬 지 얼마 못 가서 형님들 앞에서 진두지휘를 하더니 그도 마뜩찮은지 직접 굽고 지지고 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형님들의 불만은 내 것이 아니었다. 함께해 주시면 수월하고 빨리 끝이 나서 좋을 것 같은데 형님들은 “어무이, 아이고 어무이”하며 만류했다.
내가 시아버님 제사를 지내게 되고 사촌 형님들과 자주 만날 기회가 사라지자 “아이고 어무이” 속에 담긴 뜻을 알 것 같았다. “노릇노릇하게, 바삭바삭하게”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먼저는 가르쳐 준 그대로 하는 것이고 다음에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맞추는 것이다. 분명 말씀에 따랐는데도 어머니 눈에는 시원치가 않다. 직접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래도 불안한 기색이다. 일이 서투른 아랫사람에게 맡기려니 그럴 만도 하겠구나 싶기도 하다.
제사상을 차린 지가 십 년이 넘고부터는 내 입에서도 “아이고 어무이” 같은 말이 튀어나오려고 한다. 엄마도 음식을 맡기고 나면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고 아픈 허리를 두들겨 가며 국은 시원하게 나물은 슴슴하게 하라고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보탠다.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인가. 방 청소를 하려는데 엄마가 먼저 걸레를 쥐고 구석구석 깨끗하게 하라고 시범을 보였을 때는 그만 팽개쳐 버리고 싶었다. 비록 먼지가 남았더라도 어린 딸이 방 정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칭찬으로 끝맺음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매일 닦고 쓸면서 스스로 뿌듯해하였을 것을. 죽고 사는 일도 아닌데 이렇게 저렇게 자신의 방법을 주입하지 않아도 되었을 일을. 괜히 어른들은 자기식대로 하라고 고집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살아보니 이렇게 하는 것이 제일 좋더라, 하는 말은 어른들이 들려주는 한결같은 정답이지 싶다. 내가 해보니 그렇더라는 한 가지 정답을 간직한다. 경험을 강요당하던 지난날은 쉽게 잃어버리는 사람들의 오래된 습관이 반복된다.
젊은이들은 상상력과 논리적 추론에 영향을 받고 노인들은 경험의 안내에 따른다고 한다. 버트런트 러셀의 『런던통신』을 읽다가 공감하는 말이다. 생애 주기로 보자면 나는 젊을 지나 노년기로 달려가고 있으니 경험의 안내에 따르고 싶어지는 중이다.
새로 나온 기재들이 사용하기 어려우면 이러저러하게 시도하기보다 아들이 해주기를 바란다. 앞으로 닥쳐올 시대의 변화가 두려워 옛날을 그리워할 때가 자주 생긴다. 경험이 습관과 연결되면 하던 대로 반복하는 삶이 되지 싶다. 자신의 방법을 고집하게 되고 거기에서 존재를 확인받으려 한다. 노릇노릇하게, 바삭바삭하게 구우라고 매서운 눈초리로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아들이 자라서 여행을 척척 이끌어주고 휴대전화 앱을 이용하여 복잡한 일들도 쉽게 해결해 주면 놀랍고 고맙다. 하지만 이내 기숙사에서 빨래를 할 때 헹굼을 한 번 추가하거나 헹굼 액 대신 식초를 쓰면 좋다고 알려주면 엄마의 존재를 주입시킨다. 마치 세상에서 둘도 없는 비법을 알려주는 양 거듭 확인한다.
십여 년 전에 우리 곁을 떠난 시아버님이 보고 싶을 때는 나를 아껴주던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음료수 진열대에서 요구르트 병을 보다가 유별나게 큰 손으로 조그만 뚜껑을 겨우 까서 아이처럼 드시던 얼굴이 겹쳐 올 때다.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던 날들이다. 당신 존재를 억지로 인식시키려 애쓰지 않았다. 근엄하게 꾸미지 않고 말없이 사랑해 주던 어른이라 이별한 날들이 쌓일수록 기억이 새로워진다. 노년은 살아온 세월만큼 사랑할 줄 아는 시기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늙지 않는다는 글귀를 읽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에서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가슴이 무겁게 두근거린다. ‘노릇노릇하게, 바삭바삭하게’의 압박이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과의 즐거움마저 앗아가 버릴까 두렵다. ‘편안하게, 사랑스럽게’로 옮겨가면 얼마나 좋을까. 다가오는 명절을 가벼운 마음으로 기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이 앞서지 않으면 노릇노릇하고 바삭바삭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노년으로 다가가는 내가 먼저 생글생글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을 품는다. 사랑해서 늙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깊은 마음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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