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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직박구리 / 강도운

직박구리 / 강도운

 

 

평소에는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던 것이 뜬금없이 찾아와 뇌리에 깊이 새겨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런 때엔 나는 생각지 못한 소득이라도 얻은 양 희열에 싸이게 된다. 이번에는 직박구리가 그런 의미로 다가와 내 안에 둥지를 마련했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벚나무 가지 위에 앉아 있다. 연신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퍽이나 신기한 모양이다. 녀석이 세상을 향해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듯 나 또한 눈을 들어 녀석을 찬찬히 살펴본다. 칙칙한 잿빛을 띤 어두운 몸 색깔이며 하늘을 향해 곤두서 있는 머리털까지, 왠지 만개한 벚꽃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다. 더군다나 봄이 오면 노란 새순과 꽃잎을 주로 따 먹으니, 여리고 예쁜 것을 골라 먹는 식성에 비해 생김새는 전혀 딴판이다.

"삐요, 삐이히... 삐이........요."

뾰족한 고양이의 발톱으로 양철지붕을 긁어대면 저런 소리가 날까. 날카롭기 그지없는 울음소리를 낸다. 딴에는 목소리와 털빛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름다운 꽃 속에 제 몸을 묻고 청승맞게 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무료한 사월의 오후를 견디다 못해 홀로 꽃구경을 나온 것일까.

한바탕 바람이 불어오는가 싶더니, 우수수 소리를 내며 벚꽃 잎이 쏟아져 내린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뭇잎이 흔들리는 건, 지구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기 때문이라던 어느 소설가의 말이 떠오른다. 얼마나 눈물을 흘려야만 이렇게 많은 꽃잎을 떨어낼 수 있는 것인지.... 문득 감정의 사치에 부끄러움이 인다. 갑작스런 흔들림에 놀란 탓인지, 직박구리는 몸을 움츠린 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텃새인 직박구리는 사오십 마리에서 수백 마리에 이를 정도로 무리를 지어 옮겨 다닌다. 주로 나무 위에서 살며 땅으로 내려와서 지내는 일은 거의 없다. 아무리 날개 달린 생명체라 해도 평생 한곳에 발붙이고 사는 우리와는 참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린 시절, 새처럼 날아가는 시늉을 하며 놀았던 적이 있었다. 수백 마리의 새가 질서정연하게 이동하는 것을 보고 난 뒤의 일이었다. 떼를 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는 새들을 보면 나도 자유롭게 날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좌우로 팔만 벌리고 달리면 무조건 새가 되는 줄 알았었다. 하기야 철없고 꿈 많던 어린애의 마음으로 그 무엇인들 되지 못했으랴. 입으로는 정확하지도 않은 새소리를 웅얼거리며 양 팔을 힘껏 뻗고 들판을 뛰어다니다 보면, 난 마치 새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었다.

한참을 그렇게 놀다 보면 어느새 뉘엿뉘엿 어둠이 내리고, 가끔씩 머리 위에선 굉음이 들려오기도 했다. 무서운 마음으로 땅 위에 납작 엎드린 채 살며시 고개를 들면, 어두워지는 하늘을 가르며 시커멓고도 커다란 물체가 멀어져 가고 있는 게 보였다. 그것이 비행기였다는 사실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놀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서 그러는지, 아니면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도통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녀석은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 요량인가. 나도 직박구리와 비슷한 신세가 되어, 하릴없이 꼼짝 않고 한참을 마주 앉아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둘 사이의 고용을 깨듯 비행기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간 것은, 직박구리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지난날의 나처럼 땅 위에 납작 엎드리지도 않았고, 살며시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비행기는 엄청난 크기와 속도를 뽐내기라도 하듯, 더 큰 소리를 지르며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 소리는 하늘까지 뒤흔들 기세였으나, 직박구리와 나는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그것을 바라봤다. 직박구리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뭇가지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어렸을 때에는 비행기가 새에게서 날아가는 방법을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니었던가 보다. 날아가는 방법을 배운 게 아니라, 날아가기에 적합한 몸체만을 빌려와 빨리 가는 것만을 배웠던 모양이다.

직박구리는 오늘 내게 조용히 앉아 있는 법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 주변의 환경에 개의치 않고 소신껏 자신을 수양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몸을 키우지 말 것을, 빨리 가려는 욕심을 버릴 것을, 모양새로 상대방을 판단하지 말 것을 주문한 뒤에 홀연히 떠나갔다. 새가 날아간 자리는 조용했다. 아무리 여린 가지라 해도 흔적조차 남겨놓지 않았다. 언제 앉아 있었더냐 싶게 적요한 모습 그대로였다. 빈 가지를 보며,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직박구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는 오래도록 벚나무 앞에 앉아 있었다.

창공을 날고 있는 새의 날갯죽지가 땀으로 촉촉이 젖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더 이상 새의 자유​를 부러워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