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 / 안 숙
동글납작한 돌을 주워 힘껏 물 위에 띄워 본다. 한번 핑그르르 원을 그리고 튀다가 그대로 퐁당 잠기고 만다. 어렸을 때는 돌로 물 뜨는 장난을 즐겨 했었다. 돌을 던지면 널뛰기하듯 튀며 몇 번씩이나 치고 나갔었다. 지금은 팔 힘이 부쳐서인가 한번도 제대로 띄우지를 못한다.
흐르는 물을 좋아한다. 새 목을 축일 만큼 졸졸거리는 실개천이든, 동네 어귀를 구석구석 휘돌아 나오는 도랑이든, 흐르는 물이면 좋은 것이다. 물살이 빠르게 여울지는 여울목도 좋았고 멀리 수평선 넘어 무량히 펼쳐지는 망망대해도 좋았다.
닿는 대로 지향 없이 떠내려가는 물 위에 시선을 실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응어리가 풀어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미지의 상념이 좋아 흐르는 물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강이나 바다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깊은 강은 깊을수록 소리가 없고 강물만큼의 무게를 지닌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흐르는 물이 있으면 세워서라도 물에 손을 담가 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온기를 재어 수심水心을 알고 싶다고나 할까. 이처럼 물을 좋아하는 마음은 오래전 철들 때부터인 것 같다.
고향은 낙동강 7백 리 삼 강에 둘러싸인 고장이어서 어릴 적부터 외가와 고모 집에 갈 때는 배를 타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뱃사공이 건네주던 강을 더 좋아하게 된다. 방학을 하고 고향엘 갈 때도 언제나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뱃전에 앉아 삐걱삐걱 물살 가르는 노櫓 소리를 들으면 힘들었던 생활도 봄눈 녹듯 삭아 들고 심신이 풀리는 듯 아늑했다. 이제는 유유히 떠가는 배의 모습은 먼 기억 속에나 남아 있는 풍경이 되었지만 요즘도 강가에 가면 한가롭게 떠 있던 배가 그리워진다.
배를 생각하면 희미해진 세월 속에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함께 아름다운 세시歲時가 떠오른다.
다리가 없었던 시절은 배로 도강渡江을 하는 것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나 도강비는 거의가 외상이었다. 일 년에 봄, 가을 추수기가 되면 뱃사공이 이 동네 저 동네를 찾아 뱃삯 추렴을 다녔다. 얼마를 달라는 금도 없이 알아서 봄에는 겉보리, 가을에는 나락을 요량 끝 됫박으로 재어서 주는 것이 상례였다. 지금 같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넉넉한 인심을 주고받던 시대였다.
할머니는 두레상 머리에 앉아 식사를 할 때면 식구들의 올라가는 밥숟가락 내려오는 숟가락을 세며 식사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어떻게 배 옆구리까지 밥알을 꼭꼭 채울 수 있느냐고 성화를 치시던 분이었다.
하지만 추수기가 되면 남다르게 추렴 오는 뱃사공을 기다렸고 뱃삯은 후하게 대접하였다. 고모가나 외가를 갈 때면 꼭 배를 타야 했기 때문에 항상 그들의 노고를 고마워하셨다.
봄, 가을 타작 마당에 자루를 들고 웃으며 들어서던 뱃사공 아저씨들의 검게 탄 얼굴은 세월 속에 묻혔어도 아름다운 세시 풍경으로 아직도 기억 속에 아련하다. 퇴색한 세월이 쌓여가도 추억할 지난날이 있어 행복할 수 있는지 모른다.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 : 제일 좋은 것은 물과 같다)라고 했다. 누구는 노자의 물의 진리에 반해서 철학을 공부해 유명인이 되었지만, 나 같은 보통 사람도 이렇게 물을 좋아한다.
사람의 얼굴이 마음의 그림자이듯이 강江의 표정 또한 언제나 정淨할 뿐, 늘고 줌이 없다. 무연히 흐르는 물은 순리대로 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한 방울이 모여 내川가 되고 강江이 되어 큰 바다海를 이루고 다시 구름으로 돌아나듯 인간의 삶이 있는 한 물과 생명체 또한 영원하지 않겠는가.
몇 년 전 도시를 탈출하고 싶어 수도권 주변에 안주할 자리를 찾다가 그만둔 적이 있었다. 언젠가는 집을 옮길 때가 올 것이다. 강이나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의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한 희망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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