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책 없는 병 / 신현식
오늘도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그 여파로 집안은 종일토록 냉기가 감돌았다. 신 선생 부부는 근래 들어 자주 다투는 편이다. 그럴 나이도 한참이나 지났건만 티격태격한다.
신 선생은 수필 강사다.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좌를 열고 있다. 그것도 이십여 년을 하고 있으니 꽤 오랫동안 하고 있다. 오십 조금 넘어서 시작했으니, 인생 후반은 거의 선생 노릇 하는 셈이다. 그러니 언행言行이 몸에 밸 수밖에 없기도 하다.
신 선생 부부도 여느 집처럼 시답잖은 것으로 다툼이 시작된다. 김 여사가 무심코 던진 말에 신 선생이 꼬투리를 잡거나 대꾸를 하여 확산되곤 한다.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괜한 간섭을 하여 기름에 불을 붙이는 격이다.
김 여사는 성질이 급한 편이다. 말이 마음보다 한 걸음 앞서 나오곤 한다. 거기다 남편을 별로 어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말하는 품새가 아이들 콩 주머니 던지듯 하는가 하면, 항간에 떠도는 우스개와 닮았다. 서울역의 시골 할머니 버전 있지 않은가. 택시 기사에게 ‘예술의 전당 갑시다!’ 할 것을 ‘전설의 고향 갑시다!’라고 하는 식이다.
‘싱크대 위의 접시 좀 갖다줘요!’ 할 것은 ‘주방 위에 사발 갖다줘요!’라고 할 때가 있다. 오늘도 ‘커피포트에 물 좀 끓여 줘요!’ 할 것을 ‘보온병에 물 끓여 줘요!’라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싸움은 두 사람이 똑같아 일어난다지 않던가. 신 선생, 가만히 있었으면 싸움이 날 리 없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손바닥에 콩 주워 먹듯 ‘포트에 물 끓여 달라는 게 옳다’라고 지적하자, 김 여사의 비위가 상한 것이다. 그런 지적 받고 누군들 가만있겠는가. 열받게 되어 있다. 김 여사, 단번에 눈을 곧추세웠다.
김 여사도 볼 붉은 시절엔 그렇지 않았다. 새봄에 돋아난 버들강아지처럼 부드러웠다. 남들이 다 그러하듯 남편을 존경은 아니라도 존중 정도는 했고,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워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며 참지 않고 할 소리 다 한다.
신 선생 또한, 종아리 굵던 시절엔 그러지 않았다. 김 여사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직수굿하던 신 선생, 글쓰기 강사를 하고부터 서브 받아치는 탁구 선수처럼 토를 달기 시작했다. 김 여사가 무슨 말을 하면 ‘지금껏 하던 말과 상관없다’ 또는 ‘하던 이야기의 곁가지를 치고 있다’ ‘아까 했던 말을 반복한다’ ‘어순이 바뀌어 뜻이 통하지 않는다’라고 마치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는 학인學人들 습작習作 다루듯 대한다.
세상 누구도 신 선생 손은 들어주지 않을 것 같다. 부인이 강하게 나오면 거기서 그치면 좋으련만, 한 치도 물러나지 않고, 틀린 건 바로잡아야 한다며 응대를 하니 말이다. 가관인 것은 그럴 때마다, 남들이 오해할까 봐 고쳐야 한다고 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김 여사가 그렇게 싫어하는 데도 굳이 그러는 걸 보면 병적病的이다. 그 병, 도서관에서 얻었으니 직업병임에 틀림없다.
아무튼 이 부부를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늘보 신세가 될 것 아닌가. 두 사람 종일토록 집안에서 얼굴 맞대고 지낼 터인데, 어쩌자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김 여사는 그래도 괜찮다. 정작 걱정스러운 것은 신 선생이다. 지난한 삶 살다가 인생 후반에 겨우 마음 붙인 것이 후배 양성이었는데 고질병을 얻고 말았다. 신 선생, 그대로 가다가는 종내 쫓겨날 게 분명하다.
세상 이치가,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다지 않던가. 하지만, 신 선생은 모든 걸 잃을 판이다. 큰일인 것은 이 직업병은 산재 보험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만약 쫓겨나게 되면 방 한 칸도 얻지 못할 처지이다. 고지식한 신 선생, 그런 사정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늙은 소년> 중에서-
수필집 <늙은 소년> 정가 ;15.000원
할인가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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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지 ; 신현식 010-3909-7939
출판사 ; 나무향 02-458-2815, 010-2337-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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