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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새끼비들기 / 오창익

새끼비둘기 / 오창익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수백 마리의 비둘기가 있다.
본관 옥상에 지어준 집에서 자고 먹고 번식을 하며 사이좋게 모여서 산다.
아침 출근을 할 때 쯤 되면 그들도 둥우리를 떠난다. 몇바퀴인가 운동장을 기분좋게 선회하고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앞서 가는 한 마리의 향도(嚮導)를 다라 눈부신 태양을 향해 돌진한다. 아침산책이거나 아니면 저들 나름의 일터로 먹이를 찾아 출근을 하는지도 모른다.
점심 때가 지나면 언제 돌아왔는지 내 강의실 난간에 10여 마리씩 줄지어 앉아서 학생들의 어깨 너머로 얌전하게 수업참관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역시 한 녀석의 날개짓에 맞춰 일제히 하늘로 비상을 한다. 밀물에 실려온 뗏목더미를 향해 제물포 앞바다로 구름떼처럼 밀려간다. 해서, 바다와 비둘기는 단조로운 요즈음의 내 생활에 더할수 없는 위안이요 벗인 셈이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또 하나의 벗이 생겼다. 벗이라기보다는 아주 소중하고 간절한 기대 같은 것이다. 그게 바로 엉뚱한 장소에서의 실로 우연한 기회에 발견하게 된 문제의 ‘비둘기 알’이다. 무릇 새로 태어날 생명체에 대한 기대란 누구에게나 값지고 소중한 법이다. 나의 경우는 그러한 범상한 감정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알을 발견한 장소가 폐기할 교구물과 서류 등속을 넣어두는 창고 한구석, 전혀 상상 밖의 곳이라는 놀라움 때문도 아니다. 문제는 종족보존이라는 어미 비둘기의 그 생사를 초월한 무서운 집념이 주는 감격, 바로 거기에 있다.

며칠 전이다. 참고할 자료를 얻기 위해 나는 문제의 그 창고로 갔다. 먼지 낀 서류 뭉치를 밀고 당기며 정신없이 뒤적거리고 있는데 앞쪽 구석에서 난데없이 터지는 푸드득 소리, 놀란 비둘기 한 마리가 폐물더미 밑에서 솟구치듯 날아 올랐다. 서류 뭉치가 굴러떨어지며 둥지를 건드린 모양이다. 자기 몸털을 뽑아서 튼 집속에는 앙증스러운 알이 네 개, 회색바탕에 빨간 반점이 살아 움직이듯 신기했다.
그러나 더욱 신기한 것은 자물쇠를 열고서야 출입이 가능한 이 밀폐된 곳에 도대체 어떤 문으로, 어떤 구멍으로 어미 비둘기가 드나드느냐는 의혹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무례한 침입자인 나를 서류더미 위에서 한참동안 노려보고 있던 비둘기가 맞은편 유리창 한가운데로 마치 다이빙 선수처럼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서야 “아, 저구멍!” 했던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야구공 하나 겨우 빠져나갈만한 좁은 구멍이었지만, 거긴 죽음도 무릅쓴 피어린 사랑의 통로였고, 눈물겨운 모정의 터널이었다.
그날 이후, 학생들이 죄다 물러간 조용한 오후가 되면 나는 자주 그 집념의 창구를 찾아가 따뜻한 모정에 젖곤 했다. 그러기를 두어 주일, 마침내 두꺼운 껍질을 벗고 새끼 비둘기가 곰실곰실 움직이는 감격의 날이 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며칠이 지나도 남은 두 알이 전혀 깨어나질 않고 그냥 남아 있는 일이었다. 비둘기는 암수 한 쌍만을 깐다더니 그 말이 내 눈앞에서 실증된 셈이었다.
넷중에서 둘, 그것도 암수만을 신기하게 살리고 나머지는 숫제 품어주지도 않음으로써 산아제한을 단행하는 그 슬기에 다시 한번 탄복했다. 알을 품는 집념처럼 알을 버리는 섭리도 철저했다.
그로부터 한 사흘이 지나서였는가,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휴교령이 내렸다, 비둘기가 무척 궁금했지만 하는 수 없는 일. 집에서 무료하게 10여일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출근을 하라는 전갈이 왔다. 금요일이었던가, 비둘기가 못내 궁금했던 터라 출근을 하자마자 창고로 갔다.
털복숭이 새끼들은 어느새 자라서 중병아리만치나 커 있었다. 부리를 마주대고 둘이는 사이좋게 놀고 있었다. 나는 혈육이나 만난 것처럼 가슴이 뭉클, 반가웠다. 극성맞은 들쥐들의 공격도 받지 않고 무탈하게 커준 것이 여간 고맙지 않았다. 탄생의 조화란 역시 감격 이전의 신비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 신비에 찬 나의 감격도 결코 오래 머물러 주지를 않았다.
새끼 비둘기에게는 실로 예기치 못했던 불행이, 무참한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두 번째의 휴교령으로 1주일을 더 쉬고 출근을 한 지난 금요일이었다. 나는 대충 연구실을 정리하고 언제나처럼 새끼 비둘기를 보기 위해 서류 창고로 갔다.
그랬더니, 이게 어인 변인가. 어인 날벼락인가. 어미 비둘기의 그 피어린 모정의 터널이 완전 차단되어 있지 않은가. 구멍난 것 대신 새로 갈아 끼운 유리가 유난히도 반들거리고 있었다. 그때서야 지난 금요일 못통을 들고 보수작업을 하느라고 오르내리던 용인 아저씨들의 모습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아∙∙∙∙∙∙.‘”
나는 비둘기 둥지를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한달음에 숙직실로 달려갔다. 용인 아저씨의 손에서 뺏듯이 열쇠를 나꿔 채 가지고는 다시 뛰었다. 출입문을 열고 서류더미를 타고 넘어 둥지로 갔다. 참혹한 현실. 예상했던 대로 어미는 없고 새끼비둘기만이 먹이를 찾다가, 엄마를 부르다가, 둥지에 부리를 묻은 채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나는 넋을 잃고 한동안 그 자리에 선 채 돌이 되었다. 내 서두르는 행동이 수상쩍었던지 뒤따라 온 아저씨가 등 뒤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놈, 이런데서 새낄 까다니∙∙∙∙∙∙.”
유리창을 갈아 끼운 장본인이 바로 자기노라고 묻지도 않은 대답까지 한다. 나는 창고를 나왔다. 뒤따라 오는 아저씨에게 어미 비둘기를 위해 잠깐만이라도 문을 열어 놓았다가 닫아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부질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저씨와 헤어져 늘 둥지를 찾아와 엿보던 돌계단에 앉았다. 마음은 천근인 듯 무겁고 울적했다. 새끼의 시신과 새로 끼운 반들거리는 유리창문을 번갈아 쳐다보며 가눌 길 없는 허무와 슬픔에 젖는다.
역시 목숨이란, 탄생 전야에만 잠깐 허용되는 ‘감격’일뿐, 산다는 것은, 살아남는다는 것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우연 같은 것이기도 했다. 한 떼의 비둘기가 날아와 서류창고 상공을 한 바퀴 돈다. 또 한번 더 돈다. 죽어간 새끼의 명복을 비는 저들 나름의 슬픈 몸짓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