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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걸객(乞客) / 오창익

걸객(乞客) / 오창익

 

 

 

우리집엔 열이 넘는 걸객(乞客)이 있다. 하지만, 그 걸객은 밥을 빌어먹는 사람이 아니라 참새다. 개밥 찌꺼기를 얻어먹으며 근근히 목숨을 이어가는 참새 가족이다.


그런데, 그 참새 가족에겐 개에게서 볼 수 있는 충(忠)은 없지만, 그에 못지 않은 예(禮)가 있어 늘 눈길을 끈다. 비록 개가 먹다 남긴 찌꺼기를 빌어먹기는 하나 결코 와그르르 몰려들어 소란을 피우는 무질서는 없다. 서로 내 차지다, 내가 먼저다 물어뜯고 싸우는 아귀다툼도 없다.


까만 부리에 다갈색 몸털이 하나같아서, 어느 쪽이 어미고 새끼인지 분간키는 어려우나, 반반씩, 때로는 서너 패로 나뉘어 차례대로날아든다. 얻어는 먹지만, 얻어먹는 자세만은 깍듯하다. 질서정연하다.


할아비새는 상지(上枝)에 앉고, 아비새는 중지(中枝)에, 아들새는 말지(末枝)에 앉는다는 3지례(三枝禮)가 까마귀나 가치에게 있다더니, 우리집 참새 가족에게도 예외는 아닌 듯 하다.


개밥그릇에 먼저 들어가 몇 번 부리질을 한 패는 으레 다음 조를위해 미련없이 자리를 양보한다. 잔디밭으로 옮겨가 부리를 씻는가하면, 감나무 가지에 앉아 한 가족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언
제 보아도 단정한 매무새, 예절바를 몸짓이다.


그런 걸 보면, 그 옛날, ‘참새의 조선(祖先)은 꽤나 지체가 높았던족속이 아니었나’하는 생각도 든다. 해서, 나는, 비록 개밥을 빌어먹는 처지이기는 하나 염치불구하고 덤비는 떼거지나 상거지가 아니기에, 그런대로 의관을 정제한, 몰락한 양반의 후예다운 체모이기에 그를 일러 감히 걸인(乞人)이 아닌 걸객(乞客)이라 부른다.


참새는 후조(候鳥)가 아니라 유조(留鳥)다. 이름하여 텃새라 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제 것을 제 것대로, 옛 것을 옛것대로 지키려는, 조금은 맹맹하고 답답은 하지만, 수구(守舊)나 온고(溫故)에의 고집이있다.


누군가를 찾아 봄내 여름내 피울움을 울던 접동새도, 인간에 끼어 들어 살뜰한 정붙이를 해주던 제비도 때가 되면 나 몰라라 다들 가버리지만, 참새는 그러지를 못한다.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배꼽떨어진 제 고장을 떠나지 않는다.


어쩌다 하늘 높이 날다가, 산 너머에 사래긴 밭이 있고, 강 건너엔 너른 벌판이 손짓하고 있음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그 산과 그강을 결코 넘지 않는다. 금을 그어 제 하늘의 경계를 표시라도 하듯 몇 바퀴 돌다가는 결국 제 마을, 제 탯자리로 내려앉고 만다. 더욱이나 주객이 전도되어, 시멘트로 논과 밭을 매대기질 한 인간들에 의해 삶터는 유린되고, 그 작은 몸집 하나 의지할 데 없는 무
주택자, 몰락한 걸객의 신세가 되었음에도......

4,5십년 전,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까지도 없다. 내가 사는 이 곳 은 경성부가 아닌 경기도, 은평구가 아닌 은평면 상신사리로서, 게 잡고 붕어 낚던 곳이다. 풀어헤친 낟가리 같은 초가집이 산밑으로
드문드문 자리했을 뿐 논과 밭이 질펀한 세상, 그들만의 천국이었거니.


슬픈 일이다. 주리거나 굶거나 간에 제 고장을 버리지도 못하고, 제 한 몸 사그라져 죽을 때에도 배꼽 떨어진 제 땅에 도로 묻히는 운명적인 텃새. 그래도 그는 주어진 그 운명을 단 한 치도 거역하지
않는다. 호마(胡馬)는 의북풍(依北風)하고, 월조(越鳥)는 소남지(巢南枝)하고, 여우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을 한다더니, 참새야 말로 ‘首丘’인가, ‘守舊’인가? 그 마음, 탯자리를 지키려는 그 고집은 결코 그들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좀 더 편하게, 좀더 넉넉하게들 살겠다고 제 나라 제 고향을 헌 신짝처럼 버리고 떠나는 우리네에 비하면, 분명 그들은, ‘그들의 먼 조선은 보다 지체가 높았던 족속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인가, 몰락한 종족의 후예들에게는 도시 허욕이라는 게 없다. 분수넘치게 남의 것을 탐하지도 않고, 눈 가리고, 눈 속이고 남의 것을 훔치지도 않는다.


간혹, 사람이 심어놓은 곡식들을 조금씩은 축을 낸다 하지만, 그건애초부터 하늘이 정한 그들의 몫이었던 것.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열의 하나’를 남겨두고 밀밭걷이를 했던 것이나 우리 선대들이 까
치, 까마귀밥이라 하여 가지 끝의 감이나 논밭의 이삭들을 줍지 않고 그냥 두었던 게 그 좋은 예다.


어쨌거나 참새는, 우리집의 열이나 넘는 걸객들은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다. 아침 한나절 개밥바라기를 하다가도, 그 밥주인이 밥알 하나를 남기지 않고 그릇 바닥을 싹싹 핥아도 그저 그것으로 그만이다. 섭섭하다 미련을 두고 머뭇거리지도 않는다. 포로롱, 이웃 쌀가게나 쓰레기 적환장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하지만 거기서도 먹거리가시원치 않는지 번번히 내 집 마당으로 쉬 돌아오곤 한다. 와서, 잔디밭에 앉거나 정원수의 겨울옷으로 입힌 볏짚가리에 앉아 할일 없이 부리질을 한다. 볏짚을 후벼대기만 한다.


그러나 지난 여름, 밑거름만을 축낸다하여 씨가 여물기도 전에 싹싹 밀어버린 잔디밭에, 더욱이나 탈곡기에 요리조리 돌려가며 깡그리 털어낸 볏짚 속에 저들의 먹이가 남아있을 턱이 없다. 그러나 저들은 푸석한 잔디풀이나 볏짚을 풀어헤치며 떠나지를 않는다. 부리질을 해대며 파고들기만 한다. 왜일까? 먹거리도 없는데 왜 거기서, 왜 그짓을 매일처럼 되풀이하는 걸까?


겨울옷을 죄다 풀어헤치면 나무는 동상을 입는다. 해서, 나는 그짓을 말리려고 다가서려 한다. 하지만 곧 발을 멈춘다. 그 짓은, 그 부리질은 단순한 놀이나 먹이 찾기만이 아닌, 흡사 엄마 젖무덤에 코를 박고 잠들려는 젖먹이의 몸짓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저들나름의 평화요, 신뢰요, 무조건의 위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거긴 이미 말라붙은 젖가슴, 이미 폐허화 된 그들의 천국인 것을......

대한을 앞둔 날씨가 그물그물 하더니 그예 밤사이에 눈이 내렸다. 내린 정도가 아니라 발목이 묻히도록 많이 쌓였다. 지붕에도 눈, 나 무에도 눈, 저들의 놀이터이자 고향이기도 했던 잔디밭에도 눈 천지다. 어디서들 추운 밤을 보냈을까?


이른 새벽이라 아직은 눈에 띄질 않으나 포롱, 포로롱 미구에 날아 들 것이다. 날아 들어 어느 나뭇가지에서건 마음 졸이며 예의 그 개밥바라기를 할 것이다. 오늘만은, 눈이 쌓여 오갈데가 없는 오늘만은 제발 바닥까지 싹싹 핥아 빈 그릇을 내놓는 일만은 없어주기를 빌면서, 빌면서......


눈은, 쌀가게 앞에도 쓰레기 적환장에도 발목이 묻히도록 쌓여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