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철학 / 가디너(1865-1946 영국 수필가)
일전에 나는 모자에 다리미질을 하려고 모자점에 들렀다. 그 모자는 비바람에 바래져 털이 부수수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새 것처럼 윤이 나 보이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기다리며 광을 내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을 때, 모자점 주인은 대단히 흥미 있는 화제를 꺼냈다. - 그것은 모자와 머리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는 내가 한 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머리 모양이나 그 크기는 그야말로 천차 만별입죠. 그런데 댁의 머리는 보통 정도죠. 제 말은 다름이 아니라....." 그는 나의 보통 크기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뚜럿이 어리는 것을 보았던지 덧붙여서 말을 이었다. "제 말은 다름이 아니라, 댁의 머리는 특대형이 아니라는 말씀이죠. 개중에는 큰 머리도 있답니다 - 자, 저기 있는 모자를 보십쇼. 저건 괴상한 머리 모양을 가진 분의 것입니다. 길고 좁은 것이 흙투성이랍니다. - 정말 괴상한 머리죠. 그리고 머리의 크기로 말하면 놀라울 정도로 그 차이가 심하죠. 변호사들과 거래를 많이 합니다만, 그들의 머리 크기는 놀랍지요. 아마 선생님도 놀랄 것입니다. 아마도 생각하는 것이 많으면, 따라서 머리도 부푸는 모양이죠. 저기 저 모자는 모(某) 씨의 것인데(유명한 변호사의 이름을 대면서) 그의 머리는 엄청나게 큰 것으로, 7인치 반이 그의 사이즈입니다. 그분들 중에는 7인치 이상 되는 분이 아주 많답니다.
그는 계속 말했다.
"제가 보기엔, 머리의 크기는 직업과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전에 항구 도시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배의 선장들의 일을 많이 했습죠. 그들의 머리야말로 보통이 아닙니다. 조수(潮水)며 바람이며 빙산이며 기타 여러 가지 것을 생각하느라고, 그들이 겪어야 하는 근심 걱정 때문에 그러리라고 생각해요."
나는 그 모자점 주인에게 빈약한 인상을 주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보통 머리를 가지고 가게를 나섰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나는 6인치 8분의 7의 인간인데, 따라서 보잘것없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보석이 들어 있는 것은 반드시 크기만 한 머리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해 주고 싶었다. 물론, 위인들이 왕왕 큰 머리를 가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비스마르크의 머리는 7인치 4분의 1이었는데, 글래드스턴과 캠벨 배너먼도 그랬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바이런은 작은 머리를 가졌고, 따라서 뇌도 대단히 작았다. 그러나 괴테는 바이런을 가리켜, 유럽에서 셰익스피어 이후 가장 훌륭한 두뇌의 소유자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일반적인 상식론을 따를 생각은 없으나 작은 머리의 소유자로서 이 문제에 관한 한, 괴테의 말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 홈즈가 지적했다시피, 중요한 것은 뇌의 크기가 아니라 뇌의 회전인 것이다 (그런데 홈즈의 머리는 작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모자상에게 비록 나의 머리는 작을망정 뇌의 회전은 최상급이라고 믿을 만한 확증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사건을 지금 회상하는 것은, 그 사실이 우리 모두가 제각기 특수한 창구멍을 통해서 인생을 바라다본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사람은 모자의 크기에 의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는 단지 존스가 7인치 반의 모자를 쓴다고 해서 존경하고, 스미드는 6인치 4분의3을 쓴다고 무시해 버린다. 그 정도 차이는 있으나, 우리 모두 이러한 제한된 직업적 시야를 갖고 있는 것이다.
재봉사가 당신의 옷을 훑어본다면, 그는 당신 옷의 재단과 윤기를 보고 당신을 평가할 것이다. 그 사람의 눈에는 당신은 한낱 옷걸이에 지나지 않으며, 당신의 가치라는 것은 순전히 입고 있는 옷에 정비례한다. 제화공이 당신의 신을 봤을 경우, 신발의 질과 상태에 따라서 당신의 지식이나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인 정도를 측정할 것이다. 만약에 굽이 닳아서 낮아진 신발을 신었다면, 모자가 아무리 번쩍거려도 당신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자는 그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은 그의 평가 기준이 아니다.
치과 의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치아를 가지고 온 세상을 판단한다. 습성, 건강 상태나 지위, 성질에 대해 확고 부동한 신념을 가지게 된다. 그가 신경을 건드리면 당신은 움츠리게 된다. 그러면 그는 '아하, 이 친구, 술과 담배와 차와 커피를 지나치게 하는군!' 이라고 말한다. 치아를 등한시하는 사람을 봤을 때는 '칠칠치 못한 친구, 노림에 돈을 탕진하고 가족을 돌보지 않고 있군. 틀림없어.' 라고 말한다. 그래서 진찰을 끝낼 무렵에는, 단지 당신의 치아만을 증거로 해서도 당신의 전기(傳記)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것이다. 아마 이렇게 쓰여진 전기도 올바른 면에서나 그릇된 면에서, 보통 전기와 매한가지일 것이다.
(중략)
나도 또한 사물을 보는 데 직업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판단하는 데 그가 무엇을 하느냐에 의해서가 아니라, 언어를 구사하는 기교에 의해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화가가 우리 집에 들어온다면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나라는 인간을 평가할 것으로 알고 있다. 마치 실내 장식가가 들어오면 의자의 모양과 양탄자의 질에 따라 평가하고, 미식가가 오면 요리나 술로써 평가하듯이. 그 때 샴페인을 대접하면 존경받을 것이고, 독일산 백포도주면 평범한 사람 축에 끼게 될 것이다.
요는, 우리 모두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각자의 취향이나 직업이나 편견에 의해 채색된 안경을 쓰고, 이웃을 자기 개인의자로 재며, 자신의 산법으로 그들을 계산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주관적으로 보고 있지 객관적으로는 보지 못하고 있다. 즉, 볼 수 있는 가능한 것을 볼뿐이지, 실제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다채로운 빛을 발산하는 것, 즉 진리에 대해서 여러 가지 그릇된 억측을 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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