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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어머니의 칼국수 / 강해경

어머니의 칼국수 / 강해경  

 




한국 전쟁을 겪은 것은 다섯 살 때였다. 물자도 부족하고 식량도 부족했던 그 시절, 입이 짧고 허약했던 나는 어른들의 속을 꽤나 썩여 드렸던 것 같다. 걸핏하면 앓아 누워 잔병치레를 했는가 하면 편식도 심했다. 잡곡밥도 싫어하고, 국도 안 먹고, 김치도 안 먹고......

그 때 우리 집 저녁은 늘 상 국수였다. 유별나게 입이 짧았던 내가 국수를 좋아할 리 없었다. 국수를 하는 날이면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할머니 댁으로 갔다. 작은할머니 댁 대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서면 할머니는 빙긋이 웃으시며 밥 한 공기와 수저를 건네 주셨다. 반찬이라야 기껏 무장아찌와 오이지 정도였지만 그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먹어야 하는 뜨겁고 미끈거리는 국수보다는 밥이 훨씬 좋았다.

나이가 들면 식성도 변한다더니 그 동안 내 식성도 많이 변했다. 흰쌀밥보다는 보리나 콩이 섞인 잡곡밥이 더 맛있고, 국이나 김치가 있어야 밥을 먹는다. 무엇보다 그토록 싫어했던 칼국수를 아주 좋아한다. 맛있다고 소문난 집을 찾아다닐 정도로 칼국수를 즐겨 먹는다. 그러나 아무리 다니며 먹어보아도 내 입에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칼국수가 제일이다.

밀가루에 날콩가루를 섞은 국수 반죽으로 국수를 만들어 멸치 국물에 삶아 낸 평범한 칼국수지만 내 입에는 그 어느 유명한 집 칼국수보다 맛있다. 어머니의 칼국수는 여늬 칼국수보다 면발이 아주 가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아직 어머니만큼 가늘고 똑 고르게 국수를 써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담백한 멸치 국물에 삶은 부드러우면서도 오돌오돌한 어머니의 칼국수는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느끼하고 맛이 강한 스파게티나 자장면에 비해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먹을수록 정이 간다.

어머니의 칼국수 솜씨는 돌아가신 외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그 옛날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함께 칼국수를 만드시던 풍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큰그릇에 밀가루와 날콩가루를 섞고 물을 적당히 부어 국수 반죽을 치대기 시작한다. 표면이 매끈해질 만큼 잘 치대지면 넓은 대청마루에 기다린 밀대와 함께 커다란 구수 판을 펼쳐놓는다. 사방 넉자는 족히 될 우리 집 국수 판은 하도 많이 사용해서 칼자국이 닿는 부분이 우묵하게 들어가 있었고, 길다란 밀대는 반질반질 길이 들어 있었다.

잘 치대진 반죽을 국수 판 위에 놓고 밀가루를 뿌려가며 밀기 시작한다. 힘을 적당히 주면서 사방으로 고르게 밀어야 하는데 이때부터 할머니의 실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쓱쓱 싹, 쓱쓱 싹, 쓱쓱 싹......’
할머니의 국수 미는 소리는 정확히 3박자의 리듬을 타고 있었다. 열심히 국수를 밀고 계신 할머니와 어머니 옆에 앉아 나는“쓱쓱 싹, 쓱쓱 싹.... ‘하고 소리로 흉내를 냈다.

“예끼- 국수는 안 먹는 것이 흉내는 잘 내지..... ”
할머니는 빙긋이 웃으시며 흐르는 땀을 훔쳐내셨다.

가끔씩 밀대를 펼쳐 놓으면 국수 판 위에는 둥근 보자기 모양의 반죽이 쭉 펼쳐졌다. 할머니는 밀가루를 한 줌 집어 둥근 보자기 위에 솔솔 뿌리셨다.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 다시 말아 쓱쓱 싹, 쓱쓱 싹...... 또 밀었다. 다시 펼쳤다 밀고, 또 다시 펼쳤다 밀고......

이 때쯤에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있다. 국수를 밀 때 손님이 오시면 한번 더 밀면 된다는 것이다. 얇게 밀면 밀수록 국수의 양이 많아진다는 뜻인데 어린 내게는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툼하게 밀어 굵게 썰면 힘이 덜 들 테지만 워낙 알뜰하신 할머니는 ‘얇게 밀어야 느루 먹는 벱이여...... ’ 하시며 밀고 또 밀었다.

더 이상 밀 수 없을 만큼 종잇장처럼 얇고 넓은 밀가루 보자기가 만들어지면 할머니는 밀대를 한 옆으로 밀쳐 놓으신다. 그리고는 둥근 보자기에 밀가루를 솔솔 뿌리고 썰기 좋게 착착 접어 길게 늘여 놓는다. 부엌칼을 들고 썰 준비를 하는 할머니의 표정은 자못 진지하다. 반죽을 치대고 밀대로 미는 모든 과정은 이 시간을 위한 준비였던 것이다. 이윽고 할머니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노력한 솜씨가 빛을 발하는 시간이다. 할머니의 두툼한 두 손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움직였다.

‘삭 삭 삭 삭 삭....... ’
착착 접힌 얇은 국수 보자기는 할머니의 칼끝에서 실 날처럼 가늘게 썰어진다. 국수를 썰고있는 할머니의 재빠른 손놀림을 보고 있으면 국어 시간에 배운 한석봉 어머니의 떡 써는 모습이 연상되곤 했다.

똑 고르게 썰어진 실 날 같은 국수가 상위에 가득 채워질 무렵이면 화덕 위의 솥에서는 국수 물이 설설 끓었다.

여름이면 우리 집은 뒷마당에 화덕은 만들어 솥을 걸어놓고, 거기서 음식을 만들곤 했다. 음식 만드는 열기로 집안이 더워지는 것은 막기 위함이었다. 어머니는 할머니를 도와 설설 끓는 솥에 살살 흩뿌리듯 국수를 넣었다. 뚜껑을 덮고 잠시 기다리다 한소끔 끓어오르면 찬물을 한바가지 끼얹고, 송송 썰어놓은 파란 애호박채를 넣었다. 이때쯤이면 마당에는 멍석이 깔리고, 둥그런 두레 반이 펼쳐진다. 어머니는 다 삶아진 국수를 커다란 자배기에 퍼 담아 멍석 옆으로 들어다 놓는다.
김이 허옇게 오르는 국수를 양재기에 퍼담아 두레 반 위에 올려놓으면 어른들은 그 뜨거운 국수를 후루룩 후루룩 맛있게 잡수셨다.

‘이 더위에 뜨거운 국수라니..... . ’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국수를 드시는 어른들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국수를 싫어하던 나였지만 국수 하는 날이 싫진 않았다.‘국수꼬리’ 때문이다. 누가 붙인 이름인지는 모르지만 국수를 썰다 남은 끝 부분을 우리는 ‘국수꼬리’라 불렀다. 나는 국수를 써는 할머니와 어머니 옆에 지켜 앉아 성화를 댔다.

“고만 썰어, 제발 고만, 고만..... ”
알뜰한 할머니보다 어머니가 남겨주신 국수꼬리가 언제나 훨씬 컸다.
한 뼘이 넘는 넓적한 국수 꼬리를 양손에 들고 나는 화덕 앞으로 달려갔다. 타다 남은 불씨를 꺼내 국수꼬리를 올려놓는다. 구수한 냄새와 함께 툭툭 불거져 오르며 노릇노릇 익어가던 국수 꼬리, 잘 구워진 넓적한 국수꼬리는 그 시절 내겐 최고의 간식이었다.

세월이 흘러 젊고 고우시던 어머니가 그 시절 외할머니의 연세를 훌쩍 넘었다. 칠순을 넘긴 어머니지만 칼국수 솜씨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갈수록 더 맛있는 칼국수를 만들어 내신다.

밀가루와 날콩가루만 넣던 국수 반죽에 계란도 넣고 도토리 가루도 넣는 등 다양한 재료를 번갈아 이용하시니, 그때마다 새로운 맛이 난다. 얇게 밀어 실 날같이 가늘게 써는 솜씨는 외할머니를 능가한다. 실 날처럼 가는 국수지만 삶다가 끊어지거나 풀어지는 법 없이 오돌오돌하면서도 부드럽다. 국수 국물은 여전히 멸치를 이용하신다. 닭고기나 소고기의 느끼한 맛보다 멸치의 담백한 맛을 좋아하시고, 다시마나 표고버섯을 넣어 더욱 깊은 맛을 우려내신다.

요즘도 어머니는 칼국수를 즐겨 만드신다. 반죽하여 얇게 미는 과정이 힘에 부칠 것 같은데 기회만 있으면 칼국수를 만드신다. 식구 중 누가 감기에 걸렸다거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우중충한 날이면 어머니는 슬그머니 국수 반죽을 치대신다. 집에 있는 밀대가 너무 짧다고 늘 불평하시더니 얼마 전 외출했다 돌아오시면서 기다란 밀대를 구해 오셨다. 길가 노점상에서 샀다는데 무척 마음에 드시나보다. 새로 산 밀대 때문인지 어머니는 요즘 더 자주 칼국수를 만드신다.

가늘고 홀홀한 어머니의 칼국수를 자주 먹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지만, 땀 흘리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맛있다 말하기도 조심스럽다. 맛없다 하면 실망이 크실 것이고, 맛있다 하면 더 자주 수고를 자청하실 어머니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토록 즐겨하시는 일을 못하게 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고, 그냥 먹자니 너무 죄송하고, 나는 가끔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칼국수를 만들 때 어머니는 무척 행복해 보인다. 손수 만든 칼국수를 자식들에게 먹이는 일에 어떤 긍지와 보람마저 느끼시는 것 같다.

땀 흘리며 국수를 만드시는 모습에서 나는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본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모습도 본다. 연세가 드실수록 어머니는 외할머니 모습을 그대로 닮아간다. 외할머니의 칼국수, 어머니의 칼국수, 이렇듯 우리 집 칼국수는 대를 이어오는 음식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칼국수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 우리 집에서 칼국수 만드는 일은 어머니만의 고유한 영역이고, 아직은 어머니의 영역을 지켜드리고 싶다. 언젠가는 어머니의 솜씨를 잘 배워 딸에게도 전해야겠지만, 서두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머니의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은 것이 내 간절한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