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깔곰보 / 신시몽
일찍부터 서모슬하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내 소년기엔 시린 풍경으로 굳어버린 세월들이 유난히 많다. 그 중 정자라는 계집애는 켜켜이 먼지 쌓인 기억의 곳간에 바래지 않는 한 폭 당채화로 남아있다.
1950년대 후반기의 다산(多産)과 굶주림은 빈곤층의 숙명 같은 전유물로 오로지 먹는 입 하나라도 더 더는 일이 그나마 남은 식구들의 생존대책이었다. 그렇게 덜리는 입들은 대개가 우리네 누이들이었고 그녀들은 식모라는 물기어린 호칭으로 먹고 살만한 집에 호구(糊口)를 의탁하는 것이었다.
정자가 우리 집에 식모로 들어온 건 그의 나이 열셋 됐다는 초여름어름이었다. 제 집의 다섯 자매 중 네 번째로 덜어지는 입이었다. 아무리 여름철이라지만 가려진 곳보다 드러난 곳이 더 많은 남루한 입성엔 궁핍이 노닥노닥 붙어있었다. 가뜩에 시절의 졸경까지 치렀는지 얼굴이 온통 얽박고석이었다. 그 심상치 못한 외모가 하 심란하여 나는 그 애를 보는 순간 한집에 살아야한다는 게 죽기보다 더 싫어져버렸다. 쌔고 쌘 계집애 중에 하필이면 웬 곰보며, 더구나 나보다 세 살이 많다는 이유로 그 애를 누나라고 불러야한다는 서모의 으름장은 어떤 체벌보다 싫었다. 내 비록 열 살짜리 구상유취 한 것이지만 깜냥의 대외적인 품위란 게 있지 어찌 연줄에 태이지 않은 곰보누나를 둘까보냐. 그렇다고 내가 정자를 깐볼 만큼 우위의 등 따심과 배부름을 구가하는 처지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나는 이태 째 서모슬하의 맵짠 간국에 서슬 눅은 정실자식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한사코 정자가 싫은 것은 외양도 외양이려니와 그 푼수에 외려 나를 답삭 쥐려는 기미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모와의 첫 대화에서 비춰졌다.
“니가 정자구나. 앞으루 고생 좀 허거라.”
“오매- 아줌니도 참, 고생은 먼 고생이다요. 다 지 팔자지라우. 근디, 야는 멫 살이다요? 이렇게 봉게 머시매가 디게 용(순)허게 생겼는디.”
망할 곰보딱지. 시고도 건방지다. 나를 아주 가지고 놀려무나.
내가 소년기를 보낸 우리 집은 텃밭과 마구간이 딸린 적산가옥이었다. 마당을 가운데로 온돌방과 다다미방이 각각 하나씩인 원채와, 말(馬) 없는 마구간 채가 떨어져 마주 보고 있고 마당 끝엔 텃밭이 이어졌다. 나는 마구간 채에 들인 작은방에서 치매를 앓으시는 할머님과 함께 기거했다. 그리고 학교에 매인 시간외에는 거의 내가 할머님의 잔시중을 들었다. 그러다 할머님이 치매에 풍까지 겹치시자 내 힘으로 더는 시중불능이라 정자를 끌어들인 것이다. 따져보면 할머님의 궂은 시중을 도맡아줄 정자를 두고 찧고 까불며 호강에 초친 소리나 할 내 입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정자에게 누나란 호칭만은 그예 내 입안을 맴돌다 만 옹알이에 그치고 말았다. 그렇게 마구간 채 작은방에서 나는 정자와 어정쩡한 관계로 동거를 시작했다.
우리 집 텃밭 가엔 개구멍이 뿡뿡 뚫린 탱자나무울타리가 둘려있었다. 그 울타리 밖은 널따란 빈터였다. 원래는 일본인들이 지어놓은 미곡창고가 있었는데 6.25때 폭격으로 불타버려 빈터만 남은 것이다. 이 빈터가 동네 조무래기들에겐 다시없는 놀이터였다. 학교가 파했거나 방학 때면 밥숟갈 놓기 바쁘게 모여든 아이들이 딱지치기, 구슬치기, 고무줄뛰기로 하루해를 저물리는 곳이었다. 나는 개구멍과 이어져 내 집 마당이나 다름없는 이 놀이터의 작은 터줏대감이었다. 이곳에 놀러 나온 동갑내기들은 물론, 나보다 한두 살씩 더 먹은 아이들과 맞먹어도 찍소리를 못했다. 집과 놀이터가 울타리 하나 사이라는 게 내 유세거리로 순진한 시골조무래기들에게 알량한 텃세가 먹혔던 것이다.
정자가 오고 며칠 지난 뒤였다.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딱지치기를 하느라 먼지를 풀썩거리며 한창 열을 올리는 중인데, 개구멍으로 대가리 하나가 쑥 나오더니 나를 향해 소리쳤다.
“야. 밥 먹어.”
아이들 시선이 우-하고 그 쪽으로 몰렸다.
“얼래? 가시내 곰보네.”
“모,모,못 보던 맷독인디.”
“근디, 너허고 뭔 사이여?”
짜식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이기죽거리며 나와 정자를 의미 있게 번갈아 봤다. ‘우리 집 식모여, 이 짜식들아.’ 품위손상을 방어하기 위해 목젖까지 올라온 소리를 그러나, 나는 도로 삼켜야했다. 개구멍에 정자 대가리가 그대로 있었는데,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서모의 으름장이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자는 엉금엉금 개구멍을 빠져나오더니 커다란 덩치에 한참 시동을 걸어야 말이 나오는 자전거포집 아들 주철이의 멱살을 겁도 없이 움켜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너, 시방 머라고 혔냐? 머 맷독? 그리서, 내가 맷독 되는디 니가 연보헌 거 있냐? 이 더듬이 새끼. 쎗바닥을 쑥 잡어 뽑아버릴랑게 아가리 좀 벌려봐.”
“어,어,어, 얼려리? 이,이,이놈우 가시내가 왜 나만 갖고 지랄헌뎌?”
불의의 당찬 습격에 맷돌소리가 쏙 들어간 주철이는 얼굴이 벌개져서 쩔쩔 매었다. 말 한마디로 주철이의 야코를 확 죽여 버린 정자는 놀이터 아이들에게 간단히 자신을 알리며 화려한 데뷔를 했다.
탱자나무울타리로 기어오른 호박잎이 한낮의 땡볕에 데삶겨 푸른 서슬을 잃고 늘어질 즈음 놀이터 아이들은 멱 감으러 수리조합 공굴로 내빼기 마련이었다. 내가 살던 시골은 꽤 큰 읍 소재지였는데 동진수리조합이란 곳에서 축조한 인공 농수로가 읍내를 관통하고 있었다. 이 농수로를 읍민들은 수리조합이라 불렀다.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철에 흘려보내는 농업용수의 수량이 풍부하고 물이 맑아 읍민들은 이곳을 야외수영장과 빨래터로 삼기도 했다. 특히 철길과 교차하는 곳은 땅속으로 물길을 파 공굴이라 불렀는데 아이들이 가장 즐겨 찾아 멱을 감는 장소였다. 또한 읍에서 가장 큰 빨래터가 이 공굴 옆에 있었다. 정자도 할머님의 이불 홑청이라든지 그 밖의 큰 빨래는 여기서 했다. 그러나 수로가 깊고 물살이 세어 해마다 한 두건씩 익사사고가 나 뭇 부모들의 가슴을 조이게 하는 곳이기도 했다.
여름이 무르익자 텃밭 모퉁이에 절로 난 꽈리가 열매봉지를 치자빛으로 물들였다. 진녹색 푸새 속에서 꽃등을 켠 꽈리봉지는 유독 눈에 띄었다. 정자가 이걸 따다가 물속에 담가놓고 조심스레 조몰락거려 육과 꼭지구멍으로 씨앗내장만 빼내고 빈 껍질을 남겼다. 그걸 입에 넣고 옴질거리며 흡사 뱀에게 옭힌 개구리 멱 누르는 소리를 꽈드득 꽈드득 냈다. 우리 게서는 꽈리를 때깔이라 불렀다. 그런데 정자가 틈만 나면 이 때깔을 불어대므로 곰보에 때깔을 얹어 때깔곰보라고 별명을 붙였다. 그 별명은 놀이터에도 금방 알려져 정자라는 이름을 놔두고 누구나 때깔곰보로 부르게 되었다. 정자는 그렇게 불리는 게 아주 비각이었다. 그 중에도 주철이가 때,때,때,때깔곰보라고 놀릴라치면 금방 잡아먹을 듯이 대들었다. 마,마,말더듬이 주제에 곰보를 놀려? 정자가 유난스레 펄펄뛰는 이유였다.
내가 방학숙제에 낼 곤충채집을 하느라 잠자리채와 함께 텃밭에서 고양이걸음을 하고 있을 때였다. 놀이터 쪽에서 정자의 새된 목소리가 나더니 울타리를 뚫고 건너왔다.
“그려, 이 새꺄. 나 식모다, 어쩔래.”
누군가 때깔곰보 소리보다 더 싫어하는 정자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개구멍으로 얼핏 내다보니 또 주철이와 얼려있었다. 아직도 정자에 대한 내 감정은 떨떠름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번번이 정자를 얕보는 주철이가 결코 고와 보이지 않았다. 주철이는 정자와 동갑이었다. 게다가 나보다 머리통 하나만큼 더 컸다. 내 텃세를 우습게 아는 녀석인데도 힘에 꿀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채 항상 벼르기만 하던 터였다. ‘저 새끼가...’ 나는 잠자리채를 들고 살금살금 개구멍으로 기어 나갔다. 조무래기 싸움의 관건은 누가 먼저 코피를 보이느냐고 나는 그걸 활용할 줄 아는 영악함을 갖추고 있었다. 녀석이 정자의 악다구니에 수세로 몰리는가 싶을 때 내 잠자리채가 휙 그 콧잔등이로 날았다. 퉁! 채끝에 제법 육중한 충돌감이 느껴지자 녀석의 코에서는 주저 없이 선혈이 쏟아졌다.
“어,어,엉? 피...”
피를 본 녀석이 비슬비슬 무너지더니 이내 어헝 하고 울음을 놓았다. 뜻밖의 내 역성에 영산이 오른 정자는
“이 더,더,더,더듬이 새끼. 또 까불텨?”
하며 맺힌 울분을 두 주먹에 모아 무너진 녀석의 가슴팍에 오달지게 퍼부었다.
그날 밤, 주철이를 두레로 보리타작한 뿌듯함에 정자와 나는 비로소 의초로웠다.
“아까 봉게 쬐깐헌 것이 지법이더라.”
정자가 찐 옥수수를 내게 내밀며 나긋나긋 비행기를 태웠다.
“그 새끼 말여, 또 까불먼 나헌티 말혀. 쥑여 뻘랑게.”
내가 바로 싸움깨나 하는 것처럼 주먹을 흔들며 흰소리를 하자 정자가 피식 웃었다. 제미, 잘 봐주겠다는데 웃고 지랄이야. 생각하면 서로가 신산(辛酸)한 신세였다. 호구를 위해 제 피붙이들로부터 떨려난 정자나, 서모슬하의 눈치 보기에 심신이 오갈 든 나나, 벅차게 떠안은 아류의 비애를 어디에도 표출 못한 채 제각각 여린 가슴들을 앓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한번 물꼬가 터진 두 마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던 날. 학교에서 우산 없이 귀가하다 비를 흠뻑 맞았다. 밤이 되자 오슬오슬 오한이 나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작은방에 누워 개 떨듯 떨고 있는데 저녁설거지를 마친 정자가 들어와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가 왜 이려? 워매. 너 고뿔 걸린 거 아녀?”
내 이마도 짚어보고 눈꺼풀도 뒤집어보고 뭐나 아는 듯이 시건방을 떨다가 힝허케 밖으로 나갔다. 한참 만에 돌아온 정자의 손에는 수저와 물그릇, 그리고 어디서 났는지 금계랍(키니네) 한 알이 들려있었다.
“그게 머여?”
내가 알면서도 퉁명스레 묻자 정자도 깡똥하게 대답했다.
“긍게랍.”
“싫어, 그거 되게 쓴디... 다마(눈깔)사탕은?”
“야가 시방 배불른 소리 허고 자빠졌네.”
나는 문득 생모 생각이 났다. 어머님은 내가 감기를 앓을 때면 항상 가루 낸 금계랍을 물에 개어 수저로 먹이셨다. 그런데 그게 여간 쓴 게 아니어서 약 수저를 사이에 두고 모자간에 한바탕 실랑이를 벌여야했다. 그래서 어머님은 따로 눈깔사탕을 준비해두었다가 입가심을 시키셨다. 그 실랑이와 사탕이 그리웠다.
“아, 눈 찔끔 감고 후딱 생켜버리랑게.”
고열 때문이었을까. 금계랍 수저를 들이대며 달래는 정자에게서 불현듯 어머님 냄새가 풍겨왔다. 두 해 동안 가슴에 묻어두고 혼자일 때만 꺼내 맡던 그 냄새에 나는 이내 걷잡을 수 없이 눈시울이 더워졌다.
“어매 보고잡냐?”
하염없이 흐르는 물기를 보이기 싫어 돌아앉아 들썩이는 내 어깨 위로 정자의 축축한 목소리가 스며왔다. 이어 숙연해진 등 쪽의 기색이 이상해 뒤돌아보던 나는 정자의 얽은 얼굴에서 반짝이는 눈물을 처음 보았고 곰보가 항상 밉상만은 아니란 걸 그 때 비로소 알았다.
울다 잠이 들었던지 잠결에도 자꾸 흐느껴져 눈을 떴다. 정신이 몽롱하고 천장이 뿌옇게 흐려보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끄느름한 등잔불 아래 정자가 제 반짇고리를 앞에 놓고 뭔지 꿰매고 있었다.
“지금이 언지(몇 시)여?”
방문 창호지가 훤하기에 날이 샌 줄 알고 물었다.
“아직 오포(자정에 울리던 통금 사이렌)도 안 불었는디, 멀라고 벌써 깼냐.”
“근디 왜 저렇게 배깥이 훤혀?”
“이런 작것, 달 떴응게 글지.”
어느새 비가 멎고 달이 떠있었던 모양이다. 방안은 쥐죽은 듯 고요한 채 토방 쪽에서 쓰르라민지 귀뚜라민지만 쓸쓸, 쓰르르르... 목이 쉬어라 시절(時節) 경을 읽는데,
“이년아, 밥 줘.”
우리들의 두런거리는 소리로 할머님이 잠을 깨셨다. 정자가 또 경을 치게 생겼다.
“할매, 아까 저녁진지 잡솼잖여.”
“원제 이년아. 저런 사람 잡을 년, 동네사람덜. 우리 메눌년 허는 소리 좀 들어보쇼.”
며느린지 식몬지 분별없으신 할머님과의 애통터지는 입씨름에 정자는 종종 잠을 밑져야 했다.
그런 정자가 할머님의 이불을 들춰보다 토해내는 고단한 푸념을 들으며 나는 다시 혼곤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이고매, 지린내야. 잠도 못자고 낼 아침에 또 이불빨래 가야겄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작은방에 할머님만 혼자 누워 계시고 집안이 텅 비어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하여 정자에게 물어보려고 찾았지만 어디로 싸질러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염병할 것, 또 놀이터에 갔나? 그러나 놀이터도 잠잠했다. 방에서 한참을 빈둥거리던 나는 부레가 끓어 윗목 구석에 놓아둔 정자의 반짇고리를 냅다 걷어찼다. 반짇고리가 엎어지며 뒤꿈치를 봉합수술한 내 양말이 쏟아지고, 말라 오그라진 꽈리 둬 개가 또르르 굴러 나왔다. 나는 그것들을 발로 쓱쓱 구석에 밀어놓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텃밭 쪽으로 가려는데 놀이터에서 조무래기들이 주고받는 소리가 울타리를 넘어왔다.
“때깔곰보가 진짜로 물구신헌티 잽혀간 거여?”
“그려 인마아. 아까막새 아침때 때깔곰보가 공굴에서 빨래허고 있는디 물구신이 멀끄뎅이를 요로옿게 끌고 가버렸대여.”
“아녀, 주철이가 그러는디 서울로 도망갔다는디. 그리서 송장도 못 찾었다는디.”
“저 새끼는 잘 알지도 못험서...”
나는 멍-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공굴을 향하여 미친 듯이 벌담박질 하기 시작했다. 정자가 없어지다니. 제까짓 게 나를 버리고? 도대체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빨래함지박을 인 정자가 저만큼 앞서가다 힐끗 뒤돌아보는 것만 같았다. 마음은 바쁜데 공굴이 가까워질수록 발이 자꾸 헛놓였다. 헐떡이며 다다른 공굴 쪽 수로 둑 위에는 사람들이 허옇게 모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물살에 휩쓸려간 정자의 넋을 건진다고 무당이 북, 징을 꿍꽝거리며 겅중겅중 뛰고 있었고, 그 옆에 참담한 얼굴로 공수 받는 서모가 보였다. 나는 그만 맥이 탁 풀려버렸다.
밤이 이슥했는지 방문에 어리는 달빛이 대낮처럼 밝았다. 등잔불도 켜지 않았는데 어제까지 정자가 누워 자던 자리 쪽이 훤하여 휑뎅그렁했다. 아까부터 넋이 나가있던 나는 반짇고리를 끌어당겨 낮에 걷어차 흩어진 정자의 물건들을 천천히 주워 담아 보았다. 쪽가위 하나, 바늘집 하나, 실꾸리 서넛, 헝겊 몇 쪽, 그리고 말라버린 꽈리 두엇, 하나같이 제 팔자만큼이나 가여운 것들이었다. 오죽잖은 그것들을 멀거니 바라보던 나는 정자의 마지막 손길이 머문 내 양말에 이르러,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것을 참지 못하여 기어이 목 놓아 소리 지르고 말았다.
“때깔곰보 나쁜 년,
정자누나 나쁜 녀언.“
'수필세상 > 좋은수필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아다지오 / 최계순 (0) | 2009.07.24 |
---|---|
[좋은수필]청수장(淸水壯) 여관 / 강여울 (0) | 2009.07.17 |
[좋은수필]연꽃 필 때 들리는 소리 / 구활 (0) | 2009.07.08 |
[좋은수필]어머니의 칼국수 / 강해경 (0) | 2009.06.27 |
[좋은수필]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 고임순 (0) | 2009.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