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지오 / 최계순
‘오십’이라는 나이의 강물이 내게로 왔을 때 나는 이 시간들이 아주 천천히 느리게 느리게 지나가서 자근자근 내 곁에 오래 머물러 있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쉰’이 아주 더디게 지나가는 그래서 내게 아주 느리고 느린 아다지오이기를 바라게 된 것이다.
젖망울이 쬐그만 했던 소녀 시절에는 얼른 어른이 되는 게 희망이었다. 얇은 스웨터 사이로 들어오는 추위가 싫어서, 가난이 싫어서 돈이 많은 사람이 되길 바랐었다. 전쟁의 상흔이 겨우 가신 그 시절에는 다들 힘든 삶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그런 부모님 세대들의 고생을 딛고서 우리는 마냥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만 배를 불리면서 잘 견디고 이겨 나온 세월인지도 모른다.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슬픔 같은 것, 그리고 미진하기만 것들, 아쉬운 것들…많은 것들이 맞물려서 다가오고 지나가고 또 오려고 한다. 가 닿을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그림자들을 거머쥔 채로 늘 기다리면서 산 삶이었다.
꿈을 꾸는 몽환환자처럼 사랑에의 갈구로 평생을 보내면서 늘 잡을 수 없는 것들에 매달려서 그렇게 살았다. 가슴에 담긴 화롯불 하나가 너무 뜨거워서 그것을 주체하느라 이리저리 뒤척이며 살았었다. 어릴 때는 현해탄에서 몸을 던졌던 가수 윤심덕의 비극적인 인생에 놀라워했고, 세계를 놀라게 했던 천재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정열적인 삶과, 김일엽 스님이 선택한 구도자로서의 길 등을 동경하면서 소녀 시절을 보냈었다. 어머니와 같이 읽던 이광수의 소설에서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라는 이름을 처음 대했을 때의 감동도 또한 훗날 생각해보면 가슴 뛰는 감동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이제 ‘지천명’이라는 글귀를 새겨서 보낸 어느 친구의 정성처럼 이만한 나이쯤 되면 인생의 쓴맛과 단맛 그리고 희로애락의 틈바구니를 지나 하늘의 뜻까지를 헤아릴 수 있다는 뜻으로서 바로 성숙해가는 인간사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나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쉰’이 가리키는 숫자는 내게 정말 아주 천천히 느리게 느리게 지나가서 내게 못다한 것들을 조금이나마 더해야만 한다고 자꾸 재촉하고 있었다.
언제 이만큼의 나이를 먹은 것일까. 또 무엇을 위하여 발을 동동거리고 살았는지도 모르는 세월들 속에서 거울에 비추이는 모습에는 주름살이 새겨져있다. 근육의 뭉침이 더해지고 피부의 노화가 나이를 재촉해가면서 삶의 시간들에 목을 매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탄력 있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오늘과 내일 사이 그리고 너와 나의 사이, 택하지도 않았던 여러 가지 지나온 길 들 중에서 참으로 많은 것들을 꿈꾸었었다. 발레리나도, 화가도, 여성 정치가도, 유명한 작가도, 대부호도 다 되어 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면서 나보다 먼저 그리고 많이 이룬 사람들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동경하고 살았는지 모른다. 그들을 엄청나게 부러워하면서 살았다.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것도 많은 호기심으로 가득 찬 내 성격 탓인지는 몰라도 지칠 줄 모르는 열정들로 가득 메워져서 살았다.
현실에 발을 디디고는 살지만 감정은 들쭉날쭉 지 멋대로 고집불통이었고 다듬어지지 않는 모양새로 그리움을 한평생 끌어안고 살면서 내 심장은 수시로 불꽃을 피우고 있었다고나 할까. 마음속에 자리 잡은 꿈인양, 기대인양, 미래인 양 잡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집착을 하는 사람으로…그것은 본질적인 그래서 근원적인 그런 마음의 외로움 한 자락을 늘 등에 짊어진 채로 철없는 시간들을 두서없이 건너온 탓이리라.
어릴 적에는 어머니를 편하게 해 드리는 것도 내 작은 꿈의 전부였었다. 남편 덕 없이 생활해 오면서 가녀린 생존의 길 위에서 보낸 어머니의 삶은 참으로 고달펐다. 굽이굽이 돌아 나온 길, 서로 의지하며 눈물겹게도 견뎌온 인내의 시간들은 잊을 수 없는 모든 것들이었다. 어머니 혼자 몸조차 지탱하기 어려웠겠지만 어머니이기에 견딜 수 있는 강한 모성애로 살아온 그녀의 삶은 마치 한 권의 소설책처럼 너덜너덜하게 기워져 있다.
‘빨치산 이야기’‘피란 이야기, ’귀신 이야기, 육십령 고개를 넘는 이야기 밖에 안 듣고 자랐지만 계집아이로 자라서 한 여자가 되고, 어머니가 되는 길, 그리고 어른이 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지나면서 우리는 비로소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지구라는 땅위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많은 이해와 사랑을 배우게 된다.
끊임없이 알고 싶었던 모든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우면서 탄생과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자연의 이치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면서 그러면서 사람 사는 이치를 터득할 때쯤 되면 우리는 다시금 우리가 탄생했던 별로 돌아가야 한다.
목숨이 있는 한 누구나 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내일의 태양에 거는 우리들의 기도와 염원 탓이다. 돌아가는 우주의 사이클 어느 한 시점에 머물면서 우리들 영혼들은 생존이라는 명제 앞에서 늘 고뇌하며 싸우면서 나름대로의 목숨들을 이어왔다. 서로 간에 맺어진 인연이라는 끈에 묶여서 애착과 소유와 욕심들을 있는 대로 다 부리면서 그렇게들 살아왔다. 욕망은 살아있음의 가장 근본적인 원초적 본능이다. 인연이라는 끈에 묶여 있을 때 어쩌면 다들 그것들이 주는 구속과 침해와 관심들을 바탕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들에 충실하려 애썼는지도 모른다.
인연의 이치들….관계되어진 모든 이들과의 만남과 이별들 속에서 이미 버려진 것과 앞으로도 버려야 할 것들에게 대하여 그리고 체념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서 좀 더 담대해지고 관용을 베풀어야 함도 내가 짊어져야 할 몫이리라.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는 어머니를 의지하며 뼛속 깊이 파고드는 한기와 희망 없었던 캄캄한 터널을 지나오면서 상상으로 배를 채우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 집 한 칸에 걸었던 목마름, 따뜻한 가정, 정 깊은 친척간의 교류등이 그 시절에는 제일 부러운 관심사였다.
가족을 떠나보내고 거창에서 혼자 살면서 막연한 미래를 견뎌야 하는, 누구 하나 손잡아 주는 이 없이 나는 내 의지대로 사는데 익숙한 사람으로 자랐다. 사춘기 시절은 회색빛이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힘에 눌려 제대로 숨을 쉬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현실을 견디고 견디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토록 선망했던 서울에서의 공부는 아예 생각도 못한 채로 자존심 구겨가며 살 수 밖에 없었던 대학시절.
유쾌한 로맨스 하나 건지지 못한 학창시절을 건너 세상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직장도 잡고 결혼도 하고 그냥 그냥 철없는 선택으로 오늘까지 떠밀려왔다. 연약한 엄마의 손을 놓지 않고 견디고 이겨내는 데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외로웠던 성장기를 지나서 사그라지고 녹아지는 듯한 시간들의 재촉에도 주눅 들지 않는 의연함과 변함없는 의지 같은 것들을 늘 유지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누구나 인생이라는 고개를 넘으면서 힘들고 고통스럽고 벅찬 시련들을 겪어야 했다. 한 갈피 한 갈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통과된 시간들은 이제는 낡은 사진첩처럼 박혀있고,‘오십’이라는 숫자는 바늘 같은 통증을 일으키는 습관성 질환이다.
어영부영하며 살아온 세월들에 대하여, 사는 것에 대하여, 살아갈 것에 대하여, 시들어가는 인생에 대하여 참으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들은 참으로 신기한 요술쟁이처럼 언제 저렇게 자라서 나를 생각해주고 있는 것일까.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때가 많다. 아름다움에 대하여, 젊음에 대하여 왠지 자신을 잃을까 봐 두려움도 든다. 외면적인 것도 내면을 가꾸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세가 곧게 나이를 먹어가고 깔끔한 외양을 유지하는 것도 자기 관리 측면에서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예쁘게 늙어감도 앞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건강을 유지하며 스마트한 모습으로서 현 시대에 맞는 사고와 지식을 갖춘다는 것이야 말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노력의 일부분일 것이다.
‘오십’이라는 나이의 강물이 내게로 왔을 때 나는 아다지오의 노래를 부르면서 살려 한다. 느리게 흐늘흐늘하게 그리고 쉬어 가면서 승무같은 춤사위 동작과도 같은 느림의 여유들을 잔뜩 끌어안고서 내 노래가 침몰하는 황혼의 저녁처럼 쓸쓸하지 않기를 그저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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