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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각도/정성화

각도 / 정성화 

 

 

 

각도기의 중심에서 보면 1도라는 각은 아주 작다. 그러나 작은 각일지라도 각도기의 바깥쪽을 향해 계속 뻗어나가게 한다면, 각이 벌려놓는 거리는 점점 커지게 된다. 삶의 각도도 그렇다. 1도만 바뀌어도 십년 이십년이 흐른 후에는 그 사람이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지면서 삶의 패러다임도 바뀌게 된다. 돌아보니 내 삶은 그다지 편안한 각을 갖지 못했던 것 같다.

1981년에 일어난 그 일은 내 삶을 날카로운 예각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두뇌가 명석했으며 내 또래치곤 세상사에 대한 요령을 빨리 깨친 편이었다. 내가 시골에 있는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 집에 자주 내려가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가끔 우리 집에 과일 봉지를 안고 들러주곤 했다. 그녀의 한결같은 우정이 고마워서 나는 그녀와 영원히 친자매처럼 지내리라 다짐했었다.

사건은 언제나 느닷없이 터진다. 어느 날, 그녀가 내 어머니를 찾아와 어디서 오백만원을 구할 데가 없겠느냐고 통사정을 했다고 한다. 그녀 오빠가 교통사고를 당해 당장에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할 돈이 없다며, 보름 후에 적금을 타서 바로 갚겠다는 말과 함께. 그동안 워낙 살갑게 굴던 그녀였기에 어머니는 그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내게 한 마디 의논도 없이 사채놀이를 하는 친척으로부터 돈을 빌려와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주공아파트 열여덟 평 한 채 값이었다.

교직원 회의 중, 나를 찾는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였다. 시외버스를 타고 대구로 오는 동안,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부디 사실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그녀의 집에 들어서니 방이고 대청마루고 온통 빚쟁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미 온 가족이 야반도주를 한 상태라고 했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두들겨 맞았는지 안방 장롱과 화장대는 이미 중태였고, 방바닥에는 가족사진 액자가 박살난 채 짓이겨져 있었다. 주인을 따라가지 못한 강아지 ‘해피’는 제 집에서 나오지도 못한 채 눈만 꿈뻑거리고 있었다. 방바닥을 치면서 우는 사람. 잡아서 유치장에 처넣을 거라며 악을 쓰는 사람, 얼이 빠져있는 사람 등, 그들과 따로 떨어져 아랫방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입술에 심한 경련이 일어났다.

사는 게 무서웠다. 사람이 무서웠다. 돈이 무서웠다. 딸의 친구라는 것을 믿고 빚보증을 섰던 어머니는 그 일에 대한 충격으로 인해 한동안 청력을 잃었다. 그녀의 사촌오빠, 그녀의 고향 친구, 그녀가 좋아한다는 옆집 오빠까지 찾아가 봤지만 그들은 모두 내가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몹시 불쾌해 했다. 세상이 우리 가족을 버리려고 단단히 작정한 것 같았다.

아침에는 ‘그래도 살아야한다’고 마음을 먹었다가, 밤이 되면 ‘그만 살고 싶다’는 쪽으로 생각이 모아지곤 했다. 내가 가자는 대로 따라와 주는 ‘생각’,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아군 병사였다. 그녀를 붙잡아 그녀의 모가지를 단번에 비틀어버리는 상상을 하니 그나마 견딜힘이 생겼다. 분노는 내 몸의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 그로부터 석 달 만에 우리는 살던 집을 처분해서 그 돈을 변제했다.

돈이란 그저 돈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혈액이었다. 몸속에서 이미 빠져나간 그 피로 인하여 우리 가족들은 오랫동안 지독한 빈혈에 시달려야 했다. 내 친구 하나로 인해 온 가족이 겪는 고통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늘 돌에 짓눌린 두부 꼴이었다.

그 후로 나는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고 경계심을 품는 성격으로 변했다. 내 삶에 던져진 그 화염병이 사람에 대한 신뢰를 다 불태워 버린 듯했다. 때로는 내 마음의 플러그를 아예 빼놓은 채 은둔형 외톨이처럼 지낸 적도 있다. 그 시절 내 혓바닥에 쌓인 그늘의 깊이를 누가 알까. 삶의 각도가 완전히 틀어져버린 것이다. 그것은 돈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상실이었다.

그로부터 이십칠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나는 그녀를 용서할 수 없다. 하느님이 내 이름 밑에다 “못된 것”이라고 써놓는다 해도.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서울 어딘가에서 그녀가 여전히 지인들과 연락을 끊은 채 숨어 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왠지 울적했다.

기억을 들춘다는 것은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는 것만이 아니다. 실은 현재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심리가 들어있다. 여고 동창회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를 떼어놓고는 내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할 수 없었음으로. 지난날의 풍경을 맞춰내는 그림 퍼즐에 있어서 그녀는 내가 잃어버린 마지막 한 조각 퍼즐이므로.

내가 그녀를 용서했든 안 했든 그녀는 여전히 숨어산다. 헛된 욕망을 좇아 이리저리 헤엄치다 부레가 터져버린 물고기는 바다 속 밑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살고 있다. 어쩌면 그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 그녀가 빌려간 돈 오백만원은 그녀가 급히 수혈 받아야 할 혈액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미움이라는 암흑천지에서는 아무 것도 자라지 않을 줄 알았는데 가냘프나마 연민의 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 일로 인해 그녀의 삶의 각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 각도는 고등학교 시절 그녀가 꿈꾸던 지점과 얼마나 큰 거리를 만들었을까.

요즘 내 눈은 가까운 것보다 먼 것이 더 잘 보이는 원시다. 먼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마음을 잘 가다듬어보라는 몸의 말씀인 줄 알았다. 그런데 눈이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미래를 멀리 내다보면서 틀어져있는 내 마음의 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는 것 같다.

각의 밑변을 이루는 것이 평상심이라면, 각의 다른 한 변을 이루는 것은 예기치 않은 일에 휘둘리는 마음이다. 결국 삶의 각도를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인 셈이다. 나는 그동안 분노의 각 속에 그녀를 가둬놓고, 내 고된 삶에 대한 온갖 화풀이를 해 왔던 것은 아닐까. 그녀도 가끔은, 내가 겪을 고통을 상상하며 우울해 했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어느 순간 생각의 이 쪽 끝과 저 쪽 끝에서 서로 우연히 만난 적도 많았을 것이다, 아주 지친 모습으로. 이젠 나도 그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걷어내고 싶다. 용서란 그리 거창한 게 아닐 것이다. 내 마음을 상대방의 마음자리에 놓아보고 그 마음의 각을 읽어내는 게 아닌가 싶다.

그 때 우리 가족은 다 같이 손을 잡고 힘든 고개를 넘었다. 서로의 손을 놓지 않으니 발은 저절로 따라왔다. 내가 그 일을 겪으며 확실하게 배운 게 있다면, 집의 힘이란 모여 있는 신발에서 나온다는 것, 그리고 삶에는 두 번째 세 번째 기회도 있더라는 사실이다.

동창회를 마칠 무렵, 한 친구가 그 옛날 지겹도록 봄 소풍을 갔던 냉천 계곡에 한번 가보자고 했다. 냇가 바위에 앉아 있으니 흘러가는 냇물이 뭐라고 자꾸 말을 걸어왔다. 냇물 속으로 가만히 두 발을 들이밀고 일어서려는데 내 발등위로 뭔가 휙 지나갔다. 노란빛을 띈 모래무지였다. 몹시 놀란 듯 모래무지는 얼른 모래 밑으로 몸을 숨겼다. 그 순간, 골목 모퉁이를 돌아 급히 몸을 숨기는 한 중년 여인의 뒷모습이 연상되었다. 한참동안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