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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흔적 / 이숙희

 흔적 / 숙희

 

 

                                              
버스는 먼지를 일으키며 서서히 청도 정류장으로 들어섰다. 소매 끝에 스치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정류장 가장자리에 큰 은행나무가 서 있다. 짙은 황금빛의 은행잎이 팔랑이며 몇 개 떨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햇살 좋은 마루에 앉거나 엉거주춤하게 선 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대목장날이어선지 들고 있는 짐들이 많다. 대부분이 나이가 든 노인들이다. 버스를 향하여 서두르는 그들의 얼굴에는 삶의 여정(旅程)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검고 거친 피부에 온통 검버섯 투성이다. 등은 굽었고 허리는 뒤틀려 골반이 반듯하지 못하여 다리를 절고있었다.  지역 특산물 재배로 비닐 하우스 병을 톡톡히도 앓고 있는 듯하였다.
하나둘씩 객지로 떠나버려 젊은이들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적막한 마을을 지키고 있는 그들에겐 그저 쓸쓸함과 외로움만 배어져 나올 뿐이었다. 젊은 시절에 가졌을 그들의 찬란한 꿈과 희망은 소멸되고 처연한 허무만이 남아 있는 듯하였다. 분주한 삶에 정신 없이 떠밀려 만고풍상을 다 겪었을 그들이 밤마다 찾아오는 육신의 피로와 허전함을 몇 번이나 갈아엎었을 것이다. 그러고도 다가오는 명절에 찾아올 자식에게 더 줄 것이 남았는지 온전치 못한 몸으로 두 손 무겁도록 많은 짐을 들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금새 만원이 되었다. 쇠약해진 그들은 흔들리는 차안에서 중심잡기도 버거워 한다. 서로 밀고 밀리면서 젊음과 바꾼 주고받은 품앗이의 정겨운 눈빛만이 살아있을 뿐이다.
버스는 몇 번이나 가다 서다를 반복하였다. 나는 밖의 풍경에 넋을 팔면서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있다. 실개천이 흐르고 저 건너 논둑길을 따라 마을이 있고 떡갈나무 아래 정자(亭子)도 보인다. 내가 어렸을 때 학교 갔다 돌아 올 때면 정자에 노시던 할머니는 치마폭에 숨겨둔 찐

 감자 하나를 주시곤 하셨다.
저 멀리 산기슭에 할아버지께서 일구신 화전(火田)이 보인다. 어머니는 늘 하얀 수건을 쓰고 저 밭에서 일을 하셨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수확하신 것을 하얀 달빛이 내리는 시간까지 부지런히 등짐으로 져 나르셨다. 구불구불 산길에 새겨진 아버지의 발자취에 온몸이 저려온다. 생각만 하여도 가슴 풋풋하고 정겨운 곳이다.   
굴삭기의 사나운 소리가 진동하고 덤프트럭의 발걸음이 바쁘다. 너덜너덜 산껍질은 벗겨지고 속살이 벌겋게 보인다. 산은 관통한 상처에 신음하며 고통을 호소하는 듯하였다. 내가 태어났을 때 저렇게 있었고, 내가 죽은 후에도 저렇게 있으리라 굳게 믿었던 산과 들은 인간의 이기(利己)에 의하여 사정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친정은 동네 가운데쯤에 있다. 툇마루에 눕거나 앉아도 앞산과, 흐르는 강물과, 굽이진 논두렁이 보인다. 일터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는 땀을 식히시며 앉아 그 아름다운 정경들을 바라보시곤 하셨다.
친정으로 들어섰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였다. 오늘은 아버지의 일곱 번째의 기일(忌日)이다. 칠 년 전, 아버지는 스스로 발걸음을 재촉하여 종합병원으로 가셨다. 중환자실에 누운 아버지께서는 가슴에는 듬성듬성 기운 상처를 안고, 얼굴에는 산소마스크를 끼신 채 백년을 더 사실 거라고 생각하셨는지, 아니면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이셨는지 강 건너 보리타작 걱정을 하셨다. 그리고는 병원에 가신지 보름만에 싸늘한 몸으로 돌아오시어 툇마루가 딸린 방에서 산소마스크를 떼자 의식의 끈을 놓으셨다. 아버지가 태어나셨고, 흰 두루마기를 지붕 위에 던져 올림으로 아버지의 영원한 부재를 동네에 알려야 했던 친정집은 아버지와 함께 사라지고 새집이 들어섰다.
평소 아버지는 문맹인 이웃할머니들의 남편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 이웃할머니들에게도 더욱 답답하고 어두운 세상이 되게 하

였다.
차디찬 봉분을 쓸며 단 하루도 못살 것 같이 곡을 쏟으시던 어머니의 슬픔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몸부림을 치며 몸살처럼 앓았던 나의 통한도 시간이 갈수록 차츰 엷어져 갔다.
어머니의 몸놀림이 분주하였다. 간간이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를 섞어 온갖 제수(祭需)로 상을 차렸다. 아버지가 살아생전 먹어보지 못한 온갖 음식들이 차려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득한 절망과 지독한 그리움으로 나의 가슴에 문신처럼 새겨진 아버지의 흔적을 서서히 지워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