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連理枝) / 장명희
그 날의 주례는 법정(法頂) 스님이었다.
이십 여 년 전에 농담처럼 했던 약속 때문에 쑥스러운 자리에 서게 되었지만 처음인지라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앞으로는 절대로 주례 약속은 하지 않으리라고 멋쩍게 웃으며 하신 주례사는 그러나 아주 독특하고 신선했다. 효(孝), 사랑, 양보, 관용 따위의 주례사에서 듣게 되는 상투적인 단어는 한마디도 없이 스님은 신랑 신부에게 당부 하나와 부탁 하나를 하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이 부탁과 당부는 꼭 지켜 주기를 바란다는 말씀도 덧붙였다.
하나의 당부란 함께 책을 사러 가라는 것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니면 두 사람이 의논해서 날짜를 정해 놓고- 월급날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는 말씀도 하셨다- 서점에 함께 가서 산문집과 시집 두 권씩을 사되 산문집은 각자 원하는 책을, 시집은 같은 책을 두 권을 사라고 했다.
산문집은 먼저 자기가 고른 책을 읽고 나서는 서로 바꾸어서 읽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 읽은 후에는 토론을 하는데 진지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충분히 하라고 했다. 후에 자녀가 태어나면 그에게도 읽게 하고 함께 얘기를 나누라는 당부도 했다. 그리고 두 권의 시집은 서로 약간 떨어져 앉아서 같은 시를 함께 소리 내어 낭송하라고 했다.
부탁은 쓰레기를 적게 만들라는 것이었다. 꼭 필요한 것만 지니고 무엇이든 불필요한 것은 갖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맑은 가난을 예찬하며 무소유를 실천하고 사시는 스님으로서야 간절함이 담긴 말씀이었음은 두 말 할 나위도 없겠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집이나 재산을 물려 주려 하지 말고 더 큰 집 즉 온전한 지구를 물려 주는 데 힘쓰라는 것이었다..
부부란 서로 마주 보며 늘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같은 곳을 바라봄이 더 바람직하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맺게 되는 여러 인연들 중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라고 할 수 있는 부부란, 밀착해 있는 만큼 마찰의 가능성도 많은 관계이다. 뜻을 같이 하는 사이를 동지라고 표현한다면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말은 곧 동지가 되라는 뜻이 아닌가 한다. 산문집을 서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고른 다음 그것을 바꿔가며 읽고 읽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같은 간접경험을 하고 그에 대한 토론을 하는 것으로 상대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 가라는 뜻이기도 하려니와 그리함으로써 가치관의 폭도 조금씩 좁혀 가라는 말씀이 아니었을까.
짧은 시간에 사람을 이해 하는 데에는 같은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하는 것이 좋은 방법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아 오던 두 사람이 만나 공동 생활을 하게 되는 터에 간접 경험이나마 함께 하고 그에 대해 토론을 한다는 것은 서로를 이해 하는데 지름길이 될 것임은 자명하리라.
시를 함께 낭송하라는 말은 내게는 아주 선명하게 와 닿는 말씀이었다. 사람 사이에 비슷한 정서를 가진다는 것은 교감의 요건이 될 것이다.
음악을 같이 듣거나 함께 시를 낭송 하는 일은 교감을 이루기에 좋은 방법일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스님의 충고는 아주 적절한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저녁 식사 후의 휴식 시간에, 또는 궂은 날의 공휴일에, 아니면 잠자리에 들기 전 침실에서 잔잔한 음악을 깔고, 음성은 들리고 모습은 보이도록, 팔을 뻗어도 손이 닿지는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두 사람이 같은 시를 함께 노래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촛불이라도 밝혀둔다면 더욱 좋으리라. 하루는 남편이 좋아하는 시를 낭송하고 또 하루는 아내가 즐기는 시를 노래하고..
부부가 정서나 취향을 같이 한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상대방의 정서나 취향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 터이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이 좁아 두 나무가 함께 자라기에는 뻗어나갈 공간이 턱없이 좁을 때, 두 그루가 모두 죽어 버리거나 생명력이 강한 한 그루만 살아 남고 다른 한 그루는 도태가 되거나 하는데, 가끔은 두 그루의 나무가 척박한 환경에서 함께 살아 남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두 그루의 각기 성질이 다른 나무가 뿌리 부분은 따로 인 채 줄기 부분부터 서로 붙어 한 나무로 자란다는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자랄 수 있을 만큼의 공간과 한그루가 쬘 수 있을 만큼의 햇볕만이 확보된 곳에서 두 그루의 나무가 자라려면 서로 의기투합하지 않으면 공생이 불가능하고 그런 환경에서 나무들은 현명하게도 함께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각자의 뿌리는 그대로 땅 속 깊이 뻗어 내리고 줄기 부분부터는 서로 붙어서 자라나 한 그루의 나무처럼 되어 본래의 크기보다 훨씬 큰 나무로 자라나 많은 줄기와 잎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키도 크고 굵기도 우람한 나무로 자란다는 것이다. 이것을 식물의 연리지(連理枝) 현상이라고 한다. 나무의 지혜가 놀라운 것은, 연리지가 되어 자란 나무에서 꽃이 필 때나 열매를 맺을 때에는 각각의 나무들이 제 본연의 꽃이나 열매를 피우고 맺는다는 것이다. 원래 흰 꽃을 피우던 나무의 줄기에선 흰 꽃이 피고 붉은 꽃을 피우던 가지에서는 역시 붉은 꽃이 핀다는 사실이 경이롭지 않은가.
법정 스님이 신랑 신부에게 당부하시던 두 권의 책 이야말로 식물의 연리지를 사람에게서 이루어 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두 사람이 조금 떨어져 앉은 채 이중창을 하듯이 제 소리를 상대의 소리에 조화롭게 내기를 유념하며 호흡을 맞추어 아름다운 시를 고운 음성으로 노래 하던 부부라면 갈등이 생길지라도 화를 내어 언성을 높이거나 거친 말을 주고 받지는 않을 터이다.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이 간접 경험을 공유하는 일이라면 남편과 아내 혹은 가족이 같은 간접 경험을 하고 그에 대한 토론을 하다 보면 서로 다른 개성이나 가치관을 파악하게 될 터이고 그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치는 동안에 견해의 차이를 이해하기도 할 것이고, 상대방의 특성을 인정 할 줄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식물의 연리지처럼 한 줄기가 되어 있으면서도 각기 다른 특성을 그대로 가지면서 조화롭게 살아 가는 지혜로운 인간 관계를 이루어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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