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식의 『몰입상승』을 읽고 / 서경희
수필사랑문학회 신현식 수필가가 첫수필집 『오렌지색 등불』을 보내왔다. 은근하면서도 강력한 서문의 매력에 끌려 찬찬히 제목을 훑다가 눈이 딱 멎었다. 『몰입상승』이라고?
비교적 짧은 그 글을 나는 정말 몰입이 되어 꼴깍 읽어버렸다. ‘몰입상승’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몰입상승이 무슨 말일까요?’ 어느 날 작가는 라디오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무척 생소하고 궁금했다. ‘잘못된 투자인줄 알고도 계속 고집을 꺾지 않을 때 쓰는 말’이라는 답이 나왔을 때 피식 웃고 말았다. 순간 그에게 번개같이 뭔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최근 ’전화 때문에 아내와 다툰 일‘이 전광석화같이 그 ’몰입상승‘의 정의와 맞아떨어짐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단숨에 글 한편을 써버린 듯하다. 글이 주는 자연스러운 호흡이 그랬다. 그 자연스러운 호흡은 나를 무척 즐겁게 했다. 무심코 부딪쳐온 어떤 부싯돌이 불꽃을 일으키면, 그 현장을 놓치지 않고 한편의 글이 태어나야 한다. 나는 그렇게 태어난 글을 무척 좋아하는 데, 바로 이 글에서 그런 신선한 현장성을 느끼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가장 갈망하는 나의 순간이여, 물 흐르듯 흘러가는 생명의 글은 항상 그런 때 태어나곤 했다.
모임에 가 있는 작가에게 아내가 전화를 했다. 휴대폰이 든 옷은 옷걸이에 걸려있고 질펀한 대화 속에 통신은 두절되었다. 급한 일로 아내가 연락을 하지만 응당 답이 없다. 신호를 보내고 보내다 화가 났다. 드디어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저녁에 그가 열심히 상황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지만 아내의 귀는 한참 멀어져 있었다. 급할 때 쓰는 것이 휴대전화가 아니냐고 거칠게 따지기만 했다. 그러자 이쪽에서도 할 말은 있었다. 술 한 잔 하면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내는 또 당신은 언제나 똑같기만 하니 개선이 안 된다고 맞섰다. 그는 또 별것 아닌 일에 뭐 그러느냐고 화를 뿜었다. 소리는 점점 커가고, 냉전은 심하게 얼어붙었다. 드디어 일주일을 넘겼다.
부부싸움은 늘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어느 선에서 멈추지 않으면 파탄을 몰고 오는 거대담론이 되기도 한다. 라디오에서 ‘몰입상승’이 흘러나오자 작가는 재빨리 순발력을 발휘하여 평범한 소재로 실감나는 글 하나를 만들어내었다. 사실 아내의 전화도 급한 용무가 아니고 그저 친구의 전화소식을 알리려 한 것뿐이었는데, 계속 받지 않자 화가 화를 불러오는 ‘몰입’으로 냉전의 ‘상승’이 되었던 것이다. 잘못인 줄 알면서 고집을 꺾지 않는 일이 누구에게나 흔히 있다. 자기몰입이라는 고집에 걸려 제동력을 잃고 드디어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일을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이런 것이 ‘몰입상승’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하나 더 고백했다. 등산을 갔을 때 분명히 잘못 든 길임을 알고도 온 길이 아까워 계속 고집하다 일행과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고생한 일이다. 그래도 이런 것은 작은 일이다. 만약 공인들이 ‘잘못된 고집’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몰입상승’을 한다면, 이야말로 ‘공공의 적’인 큰일이 아닐까? 하고도 했다.
그러나 이 기회에 나는 위에서 말한 부정의 몰입이 아닌 나의 아름다운 긍정의 몰입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몰입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이와는 반대다. 내가 만약 라디오에서 그 말을 들었다면 나는 그 정의에 놀라고, 그러다 정 반대의 이야기로 치고나왔을지 모른다. 내게는 ‘몰입상승’이 더없는 환상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몰입이 불러온 아름다운 상승의 경험들이 그렇게 해주는 것 같다.
‘몰입’은 신비스러운 것이다.
어떤 일에 ‘빠지는’ 것을 몰입이라 하는데, 그것이 항용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어서 더욱 그러하다. 몰입의 용광로를 통과하고 나면 반드시 상승이란 것이 있었으니. 아마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이 거기에 있었으리라. 몰입은 이성이나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 정신력 이상의 무엇이었다.
베이징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박태환의 말이 생각난다. 그가 이번 로마세계선수권대회에서 충격의 예선탈락을 하고 난 후다. 지난 올림픽 때는 어떻게 헤엄쳤는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물속에서 줄을힘을 다 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냉정한 요인이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그에게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은’ 그 ‘몰입’이 없었던 탓이 아닐까? 몰입은 결국 정신력이 가져오는 것이지만 그 위에 무엇이 더 있는 것이다. 비단 위에 꽃이 놓여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몰입상승』이라는 글을 통하여 임도 보고 뽕도 땄다.
부정적인 뜻을 통하여 교훈을 얻고, 긍정적인 뜻을 통하여 상승의 기쁨을 새로 음미해보았다. 『몰입상승』이 ‘몰입상승’을 잘 낳아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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