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 정호승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 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가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수필세상 >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시]혼자라는 건 / 최영미 (0) | 2010.03.15 |
---|---|
[명시]울릉도 / 유치환 (0) | 2010.03.14 |
[명시]자화상 / 신현림 (0) | 2010.03.12 |
[명시]그대가 곁에 있어도 / 류시화 (0) | 2010.03.11 |
[명시]마음 / 김광섭 (0) | 2010.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