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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 시

[명시]나의 시 / 서정주

 

나의 시 / 서정주

 

 

어느 해 봄날이던가, 머언 옛날입니다.

나는 어느 친척(親戚)의 부인을 모시고 성(城)안 동백나무 그늘에

와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부분이 어딘가를 아시기나

하는 듯이 앉아계시고, 나는 풀밭위에 흥근한 낙화가 안써러워 주워

모아서는 부인의 펼쳐든 치마폭에 갖다놓았습니다.

쉬임없이 그짓을 되풀이하였습니다.

 

그 뒤 나는 년년히 서정시를 썼습니다만 그것은 모두가 그때 그 꽃

들을 주서다가 디리던- 그 마음과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라나 인제 웬일인지 나는 이것을 받어줄 이가 땅위엔 아무도

없음을 봅니다.

내가 주워모은 꽃들은 제절로 내손에서 땅위에 떨어져 구을르고 또

그런 마음으로밖에는 나는 내 시를 쓸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