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 서정주
어느 해 봄날이던가, 머언 옛날입니다.
나는 어느 친척(親戚)의 부인을 모시고 성(城)안 동백나무 그늘에
와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부분이 어딘가를 아시기나
하는 듯이 앉아계시고, 나는 풀밭위에 흥근한 낙화가 안써러워 주워
모아서는 부인의 펼쳐든 치마폭에 갖다놓았습니다.
쉬임없이 그짓을 되풀이하였습니다.
그 뒤 나는 년년히 서정시를 썼습니다만 그것은 모두가 그때 그 꽃
들을 주서다가 디리던- 그 마음과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라나 인제 웬일인지 나는 이것을 받어줄 이가 땅위엔 아무도
없음을 봅니다.
내가 주워모은 꽃들은 제절로 내손에서 땅위에 떨어져 구을르고 또
그런 마음으로밖에는 나는 내 시를 쓸 수가 없습니다.
'수필세상 >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시]봄날 / 공영구 (0) | 2010.03.28 |
---|---|
[명시]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 이 정하 (0) | 2010.03.27 |
[명시]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 김남조 (0) | 2010.03.25 |
[명시]西風賦서풍부 / 김춘수 (0) | 2010.03.24 |
[명시]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 조병화 (0) | 2010.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