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배꼽티와 미니스커트 / 손숙희

배꼽티와 미니스커트 / 손숙희

 

 

 

 

배꼽티가 금년 여름의 화두로 등장했다. 여성의 의상이 법정 소동으로까지 진전되어 세인의 관심사가 되었다. 매스컴의 주제토론이나 논필의 대상이 되었으니 재미있는 일이다.

견디기 힘들었던 더위와 심심찮았던 언쟁이 배꼽티를 유행의 물결로 몰고간 데 일조한 것 같다. 이를 두고 혹자는 미와 개성과 젊음의 표현으로서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의상이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성범죄를 가중시키고 개인주의적 사고의 확산이나 예의에 상반하는 행위라고 펄쩍 뛰는 사람도 있다.

60년대 초반, 미니스커트가 등장했을 때다. 가수 윤복희 씨가 라스베이거스의 뉴패션이었던 미니스커트를 입고 서울에 나타났을 때 이 땅의 남녀노소는 함께 경악했다. 무릎이 보여도 흉이었던 시절에 허벅지 다리가 절번은 나왔으니 용서가 되지 않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러나 패션 디자이너들의 미래안과 소신 있는 노력으로 세월이 지나자 대중의 눈이 바뀌게 되었다. 미니스커트는 여성 의상의 세계적인 흐름이 되고 말았다.

백화점이니 상가에 나가 보면 여성의 의상이 참으로 다양하다. 광복 이후 50년, 역사와 유행의 양상이 모두 전시된 것처럼 느껴질 만큼 복고풍에서 최신형까지 만날 수 있다. 그만큼 이 시대의 사람들은 개성과 신체적 조건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옷을 입을까’의 잣대는 남이 아니고 스스로의 정서에 달려 있기에 무슨 옷을 입지 말라는 제재는 오히려 호기심을 부추겨 역효과를 낸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자유가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해도 사회생활 공간 속에서 의상의 예의를 고려하면서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하는 것이 유행을 수용하는 자의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배꼽티’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수긍이 가다가도 아닌 것 같아서 재미있다. 올 같은 여름, 인내의 한계를 느낄 만큼 더운 날씨에 허리 없는 티셔츠는 시원한 게 틀림없다. 또 속옷을 챙겨 입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덜어준다. 브레지어 하나면 겉옷을 걸칠 수 있으니 편하다. 더위를 핑게로 자신 있는 몸매를 가볍게 노출시켜 볼 수 있다는 본능적 쾌감도 있다. 아름다운 꽃들은 그 빛깔과 향기로 벌 나비를 유인하지 않는가. 미스코리아 선발에도 비키니를 입고 방송을 타는데 이 정도는 문제가 되지않아.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의상 표현이야. 이건 예술 활동과 다를 바 없어. 생각이 여기까지 오게 되면 부정적인 면이 고개를 내민다. 보는 사람의 눈을 불편하게 하고, 남성 유혹이란 성범죄의 단초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배꼽티를 입는 것은 죄가 아니다.”

무죄 판결이 났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유행하는 의상을 제도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 질서를 흩트리지 않도록 노출을 절제하고 스스로 때와 장소를 가려서 옷을 입는 것을 권장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장발족도 법으로 다스렸고 스커트의 길이도 무릎에서 얼마까지 허용한다는 제재가 있었다. 사회 질서를 다스리는 법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

‘피레네 산맥의 이쪽에서는 진리인 것도 저쪽에서는 진리가 아니다.’

유럽에 가면 이런 말을 듣는다. 30년 후에는 또 어떻게 변할까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