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불꽃 / 안재진
누군가 오고 있다
들리지 않는 걸음으로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온다
골짜기마다 몸을 비틀며
힘겨운 물기가 번지고
초라하게 흔들리던 가지는
요염하게 붉은 입술을 내미는
뜨거운 발자국이다
이럴 때는 가슴이 무거워진다
푸른 날에만 불꽃이 있는 게 아니라
팔다리가 풀리고 눈이 멀어도
가슴 속, 가슴 속에는
타다만 불씨가 있다
발자국이 건드리면
불씨는 여지없이 눈을 뜰 것이다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불길
끝내 하늘을 태우고, 땅을 태우고
검은 재로 날릴 것이니
차라리 그늘 깊은 곳으로 돌아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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