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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윷놀이 / 김경애

윷놀이 / 김경애

 

 

 

  윷놀이는 정초에 하는 민속놀이이다. 민속놀이가운데 자치기, 팽이 돌리기, 연 날리기는 모두 사내아이들 놀이어서 여자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안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화투가 있긴 했지만 어머니는 내가 화툿장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면 아궁이 속에 처넣으며 야단을 치셨다.

“세상에서 제일 꼴불견이 계집년이 담배 꼬나문 것하고 화투장 든 거야.”

그래서 화투는 화류계 여자들이나 하는 놀이쯤으로 생각하며 자랐다. 그런 어머니지만 윷놀이만은 허락하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유달리 윷놀이를 좋아한다. 둘이서도 할 수 있지만 사람이 많을수록 흥겨움이 배가하는 것이 윷놀이이다.

 

  윷의 종류는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내 고향 함경도에선 작두콩 한 쪽을 동그랗게 파내서 썼다. 그런가 하면 남편의 고향 평안도에선 붉은팥을 반으로 쪼개서 토시나 아니면 종이를 말아서 그 속에 쪼개진 팥알 네 개를 밀어 넣은 다음 종이대롱을 살짝 들춰본다. 등치 커다란 장정이 쪼그리고 앉아 그러고 있는 모습이 활달한 평안도 기질에 영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에계계”하고 놀려댔다. 하지만 화투패를 숨죽여 가며 쪼여 보는 것 같은 오붓한 스릴이 있어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윷놀이 성격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아랫녘 장작윷이 아닌가 한다.

 

  반들 하게 다듬어진 박달나무 윷가락을 만지노라면 매끈한 촉감이 팔을 타고와 가슴까지 전해진다. 도톰한 등허리에 인두로 지진 듯한 가위표 세 개는 호손의 ‘주홍 글씨’인가, 드러낸 복부腹部는 사대부집 아낙네 속살처럼 하얗다. 공중에서 한 바탕 몸부림치다 딱 소리와 함께 내리꽂히면 뒤척이는 몸매에서 짜릿한 쾌감을 맛보곤 한다. 흔들대다가 제풀에 멈출 때까지 숨을 죽이고 들여다보게 된다.

화투놀이는 조용해서 좋기는 하다. 그러나 화투 패를 쥐면 잔머리를 굴려야 하고 꼼수도 써야 한다. 그러자니 눈은 자연히 흘금거리게 되어 모양새가 좋지 못하다.

 

  그러나 윷판은 다르다. 그 스릴이 만점이다. 네 개의 가락을 던질 때 손목을 살짝 비튼다거나 공중에서 윷끼리 다시 부딪히게 하는 손기술이 고작이다. 그런데 윷판이 왁자지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말판을 쓸 때 의견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저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우긴다. 싸움판으로 오해받기 십상이지만 고성은 이내 사그라지고 다시 웃음판으로 바뀐다.

 

  원래 놀이란 쌓였던 스트레스를 푸는 게임이다. 놀이에서조차 잔머리를 굴려야 한다면 그건 놀이가 아니다. 어찌 보면 화투놀이는 앙큼한 고양이 같고 윷놀이는 덜렁대는 강아지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순박한 농촌 사람들에게 잘 어울리는 윷놀이, 나는 그래서 윷놀이가 좋다.

 

  한가한 겨울, 농촌에선 남정네들이 골목에서 멍석 한 장으로, 부녀자들은 안방에서 담요 한 장이면 가능한 놀이다. 네 개의 윷가락으로 온 식구가 한 자리에 둘러앉아 이처럼 화목하게 즐길 수 있는 놀이란 윷 이외엔 없을 것 같다. 가족끼리 편을 갈라 서로 섞바꾸어 앉아 던지기만 하면 되는 놀이, 손아귀가 작은 어린것들은 두 손으로 윷가락을 모아 쥐고 던져도 상관없는 놀이다. 반짝이는 눈망울들이 엎어졌다 젖혀졌다 하는 윷가락을 들여다보노라면 너와 내가 따로 없다. 그러나 아무리 가족 화목이 목적이라지만 놀이엔 뭔가 걸지 않으면 싱겁다.

 

  우리 가족도 내기 윷을 친다. 이럴 때는 성별로 편을 가른다. 그런데 어떤 날엔 한 명이 남을 때가 있다. 하는 수 없이 그를 심판관으로 추대한다. 그가 하는 역할은 윷가락이 애매하게 떨어졌을 때 판단을 내리는 일이다. 심판관의 지엄하신 판결에 우리는 절대 복종한다. 예전엔 상품을 걸었는데 그 일이 번거로워 요새는 현찰박치기로 한다. 손자의 코 묻은 돈을 빼앗을 때면 가슴이 짠하지만 아들 돈을 따게 되면 기분이 여간 통쾌한 게 아니다.

 

  윷은 밖에서 던져야 제격이다. 그런데 윷은 화투에 비해 좀 시끄러운 게 흠이다. 윷놀이는 사람을 조신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어지간히 점잖은 사람이 아니고는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어느새 무릎을 세우거나 서서 던지게 마련이다. 용마루 위까지 한껏 높이 던지는 사람, 어망을 던지듯 냅다 옆으로 휘두르는 사람, 제각각이다. 무슨 한이 맺혔는가, 남의 집 담벼락에 창을 던지듯 꽂아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가끔 있다. 또 있다. 허벅지 밑으로 윷가락을 던지며 익살스럽게 꼽추 춤을 추는 사람도 있다. 윷가락이 떨어질 때마다 박수와 폭소가 터져 나온다.

 

  ‘첫 모 방정에 새 까먹는다’란 말이 있다. 윷놀이는 상대편에게 약을 올려도 괜찮은 놀이기 때문이다. ‘첫모쯤은 별 것 아니다.’ 처음에 잘하면 끝이 신통치 않다는 표현이다. 상대편이 잘 나오면 그냥 지켜만 볼 수 없어서 훼방 놓기 작전에 들어간 셈이다. 야유와 훼방은 윷놀이의 양념이요 추임새 격이라고나 할까, 그게 없으면 헛바람이 새는 타이어 같아서 윷판이 팍팍하다. 이를테면 저편에서 ‘개’가 나오면 지게 될 판에 이편에선 “개, 개, 개” 하며 주문을 외운다. 침방울이 튄다. 두 손 모아 합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다가 정작 ‘개’가 나오면 패자는 뒤로 나자빠지고, 승자는 잽싸게 판돈을 뒷주머니에 훔치듯 쑤셔 넣는다. 그리고 여봐란 듯이 지전紙錢한 장을 이마빡에 붙이고 더덩실 춤을 춘다. 그 때 춤사위는 ‘봉산탈춤’이어야 한다.

 

  ‘윷놀이’ 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이 ‘어깨춤’과 ‘함박웃음’이 아닐까. 가족 간에 화목은 물론이고, 온 동네가 한나절 윷을 던지고 나면 굿 한 판 치른 듯 후련하다. 지난해의 노고를 씻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정초의 윷놀이는 화목과 풍년을 기원하는 풍습이기도 하다. 거기에 막걸리 몇 사발을 돌리고 나면 어쩐지 그 해 농사는 품앗이로 풍년이 들 것만 같다.

 

  그런데 요새는 정초가 되어도 윷놀이 하는 집이 없다. 아파트 생활이 시작되면서 이웃 간의 단절이 가져온 결과라고 할까. 가족끼리 또는 소원했던 이웃끼리 한 판 윷놀이를 하고 나면 작은 불화나 갈등도 눈 녹듯 사라지던 그 옛날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