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할매 손은 약손 / 성병조

할매 손은 약손 / 성병조

 

 

요즘 들어 옛 어른들의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는 생각을 자꾸 갖게 됩니다. 그만큼 나이를 먹어 간다는 증거일까요. 나는 한 달이 넘도록 왼손에 작은 통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낮에는 별 불편을 모르고 재내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손이 굳어 쉽게 오므려 들지가 않습니다. 테니스 하다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가 아문 후의 후유증입니다. 예전에도 근육통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면 꾸준히 주물러 주면서 가벼운 운동만 지속해도 쉽게 낫곤 했습니다. 넘어지면서 테니스 라켓을 일찍 놓아야 했는데 끝까지 잡고 버티는 바람에 화를 키운 셈입니다. 어른들 말씀에 남을 해코지하다 생긴 상처가 아니면 이내 낫는다는 말에 위안을 가져 봅니다.

문득 옛일이 생각납니다. 병원도 약국도 찾아보기 힘든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배가 아프다고 하면 할머니께서는 따뜻한 아랫목에다 손자를 눕혀 놓고 양 손을 번갈아 가며 한참 동안 배를 주물러 주셨습니다. 그때 할머니께서 반복하신 주문이 ‘할매 손은 약손, ○○배는 똥배’였습니다. 배의 윗부분에서 아래로 찬찬히 훑어 내리면 얼마나 시원한지 모릅니다. 주문은 나의 폐부 깊숙이 스며들면서 아픈 곳을 조용히 녹여 줍니다. 조금 지나면 배가 꾸르륵 하면서 체증이 풀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마지막으로 벽을 보고 앉힌 후 등과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크게 두드리면서 마무리를 짓는데, 그때 트림이 나오면 거의 다 나은 증표가 됩니다.

배가 아프거나 미열이 있다고 해서 금방 병원으로 달려가는 경우는 드뭅니다. 음식을 조절해 먹는다거나 일찍 잠자리에 들어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 오래잖아 낫기도 합니다. 나는 몸에 이상 증세를 보이면 항상 곁에 있는 아내에게 먼저 이야기합니다. 이마라도 짚어 주고 매라도 쓰다듬어 주리라는 기대를 가지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아프다는 말만 하면 손길이 닿기는커녕 병원에 가 보라는 쌀쌀한 대답만 돌아옵니다. 병원 가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기라도 합니까.할머니의 손과 같은 아내의 보살핌을 바라는 속내를 어찌 그렇게도 몰라 줄까요. 잠시라도 이마를 짚고 배를 주물러 주기라도 하면 아픈 곳이 깨끗이 나을 것 같은데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아내가 얼마나 무심한지 모릅니다.

내가 이런 기대감에 젖을 때마다 우리 가족들로부터도 같은 요청이 내게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됩니다. 서투른 손놀림일지라도 이마의 열을 짚어 보고 배를 주무르면서 가족애로 토닥여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배운 요령을 더 늦게 전에 실천에 옮겨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이런 제안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할머니의 약손처럼 아내의 정성 어린 손길만 닿아도 지금이 금방 사라질 듯한데, 조금도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