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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동그란 방 하나 / 남홍숙

동그란 방 하나 / 남홍숙

 

 

 

이사한 지 6년째다.

들고난 살림살이 중 들어온 물건이 더 많은지 공간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그래서 아이 방 뒤 베란다를 트기로 했다. 한 평도 안 되는 베란다를 터 봤자……. 그리 큰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조그만 방 하나고 공사기간 4일이라는 짧은 기간을 만만하게 여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공사 첫날부터 부수고 갈고 먼지 자욱한 대란 속에서, 치우고 버리고 정리하는 데 두 개의 손도 부족하였다. 공사가 다 끝나고도 가구와 책장, 옷장 정리하는 데 사나흘을 더 보냈다. 그 후 일주일째인 오늘, 아이 방에 살짝 들어와 누워 보았다.

더 넓게 탁 트인 천장에는 야광별과 달, 하얀 구름이 떠 있고, 벽에는 축구공을 들고 씩씩하게 웃고 있는 남자아이가 서 있다. 연두와 초록이 교차하는 편안한 색상의 조화와 아이 방의 바뀌어진 모든 것이 내게 기쁨을 준다. 학교에서 집에 얼른 오고 싶어졌다는 아이의 표현이 실감난다.

아이 방을 개조하면서, 집 안의 어수선했던 다른 구석도 정리가 되었다. 정돈된 책장과 옷장, 4개의 책상을 볼 때마다 내 마음으로 동그랗게 미소가 번진다. 동그란 미소, 내 마음의 방을 그렇게 바꾸고 싶다.

물리적 공간을 터서 넓힌 것처럼 내 마음의 공간도 그렇게 하고 싶어진다. 어설프게 방치해 주었던 가제도구만큼, 아니 그보다 더 복잡한 내 마음의 파편들. 그 중 가장 치명적인 한 곳부터, 아이 방처럼 공사를 시작하는 거다. 마음의 막힌 한 곳을 깨고 트다 보면 부수적인 것도 연쇄적으로 정리되고 치유될 것이다.

집이라는 구조에 속하는 아이 방처럼, 분명 내 안에도 그런 방은 존재한다. 아이의 방만큼 확연하게 발견되기는 어렵겠지만 어딘가에 꼭 있을, 트고 싶거나 터야만 할 마음속의 어두운 방 하나, 문제의 그 방을 찾기 위해 눈을 감고 나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기로 한다.

의식의 컨트롤 박스, 인간의 행동과 사고를 조정하고 통재한다는 무의식의 세계인, 꿈과 추억 속으로 파고들면 그 방은 발견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어느 날 친구와 나누었던 꿈 이야기가 생각난다.

20여 년 전 직장 동료였던 남자가 검은 옷과 검은 모자를 쓰고 내 앞으로 묵묵히 그냥 스쳐 지나만 간 꿈에 이어, 오랜만에 찾아간 고향사람들이 나를 모두 외면했다고. 그리고 그들은 내가 난생처음 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과수원 안에다 큰 구덩이를 파 놓고 그 안에서 호박을 심고 있었다는, 뒤숭숭한 내 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구는, 내 안에 결핍되거나 충족되지 않은 알갱이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거기에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학설까지 덧붙였다. 꿈이 무의식의 노출이며 꿈꾸는 자의 제2의 언어며 현실에서 결핍되거나 억압, 왜곡된 정신이 꿈으로 뒤틀려 나온다고, 프로이트는 환자들에게 작용하는 자유연상법도 꿈을 이용하고 검열되거나 교정 윤색되지 않은 순도의 정신의 노출인 꿈으로써 환자를 치료했다는 설명도 해 주었다.

불현듯 내 꿈속에 나타났던 옛 동료, 검은 복장 고향에서의 소외, 아직까지도 나의 놔파를 때리고 있는 꿈속에서의 내 절규.

이처럼 또렷이 떠오르는 불쾌한 꿈속 소품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정신과 의사라도 된 양, 나만의 주문을 외워서 복잡한 정신을 환기시키고 빳빳이 다려진 정신의 힘을 뺀다. 꿈을 꾸지 않지만 꿈꾸는 것 같은 ‘무중량’ 의 상태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나의 현재 위치에서 스스로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곳, 나의 과거로 들어가 본다. 내 전라(全裸)의 내면을 여행하듯이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