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 꽃이 필 때 / 김해자
응급실은 숨이 막힐 듯 긴장감이 감돌았다. 짙은 절망과 탄식 소리 사이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긴박함을 느끼게 했다. 그들 틈에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자식들을 보자 어머니는 손을 휘저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고 아버지는 어머니 손을 잡았다. 그리고 얼른 남은 한쪽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걱정과 두려움 때문인지 아버지는 많이 늘고 작아 보였다. 그런 아버지와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 있는 어머니를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 운명의 사슬이 부모님을 칭칭 휘감아 옥죄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새벽에 교회 계단을 헛디뎌 넘어졌다. 수렁은 언제나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는 것이라서 발을 헛디딘 어머니가 그곳에 빠져들어 저렇게 고통스럽게 누워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렸다. 어쩌면 신은 언제나 바르게 걸으라고 경고를 하기 위해 덫을 도처에 놓아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둠 속은 더 많은 위험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어머니의 다리를 잠시 잡았는지도 모른다.
대퇴골이 손상되어 수술을 해야 하는데 나이가 있으니 대학병원으로 모셔가라고 했다. 수술을 하면 몇 개월 뒤에는 걸을 수 있다는 말에 놀랐던 가슴이 한결 안정이 되었다. 아버지도 불행 중 다행이라 여겼는지 깊게 잡혔던 주름 사이로 안도의 표정이 엿보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긴장이 푸린 탓에 어지럽다며 보호자용으로 있는 긴 의자에 누웠다. 거센 바람이 훑고 지나간 뒤 황폐해진 대지처럼 아버지도 몸을 지탱할 수 없을 만큼 기운이 소진된 것 같았다.
어머니는 팔순이 지났지만 시골의 자연 속에 살아서 그런지 그동안 주위 사람들도 놀랄 정도로 정정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큰 수술도 몇 번 했고 잔병을 자주 않았기 때문에 늘 걱정하고 있던 터였다. 초췌한 모습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아버지의 몸이 너무나 작아 보였다. 나는 아버지 팔을 주물렀다. 내 손에 잡히는 아버지의 팔은 뼈와 살가죽뿐이었다. 아프다며 신음 소리를 내는 어머니와 그 모습이 안타가워 눈물 글썽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가슴 밑바닥부터 아려 와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밖에는 하얀 꽃을 몸에 가득 매단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눈이 부신 햇살에 더 빛이 나는 꽃이 나는 꽃이 자기 몸을 흔들어 보이며, 삶은 가끔 흔들리는 것이라고 말해 주는 듯하다. 칠십여 년 함께 태풍을 이겨내고 험한 길을 서로 의지하며 걸어온 부모님이다. 팔 남매라는 가지를 주렁주렁 매달고 바람 잘 날 없던 날들을 서로의 어깨에 기재며 살아왔을 것이다. 자투리 행복을 반추하며 아득한 세월을 함께해 온 아버지와 어머니를 흔들고 있는 멍에가 내 가슴 깊은 곳으로 파고든다.
수술을 받기 위해 응급차로 울산에 오는 길옆 가로수에도 하얀 꽃들이 피어 있었다. 응급차에 어머니를 태운 뒤 돌아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하얀 꽃 속에서 떠오른다. 차 속으로 오월의 햇살이 강하게 비집고 들어와 아버지 등 뒤에서 역광으로 굴절되어 눈이 부셨다. 그 빛으로 인해 아버지 얼굴은 더 어둡게 보였다. 같이 오겠다는 아버지를 오빠가 겨우 집으로 모시고 갔다. 아버지는 어머니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러운 침묵 속으로 깊은 뜻의 말들을 나누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의 굴곡을 함께 넘어온 사람들은 말지 않아도 서로를 알 수 있는 촉수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응급차 속에서 나도 이런 저런 생각들로 미릿속이 어지러웠다. 어느새 부모님 걱정보다 몇 개월 동안 병간호를 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먼저 계산하고 있는 내가 한심했다. 삶의 현실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늘 현실 속에서 삶을 계산해야 하는 삶 그것이 삶의 두 얼굴인지 모른다.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착잡하다. 다쳐 누워 있는 어머니와 기운 없어 휘청거리며 돌아서던 아버지에 대한 걱정보다 내 생활의 불편을 먼저 계산해야 했던 삶의 현실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이래서 ‘열 자식보다 악처가 낫다.’ 는 말이 있는 게 아닌가.
어머니의 수술이 끝난 다음 날, 아버지도 결국 입원을 하였다. 갑자기 일어난 사고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 때문에 몸의 기력이 떨어져 자리에 누우셨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같은 병원에 입원하겠다고 했다. 보듬어 주며 살아온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여 한 살이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이 서로를 지탱해 주고 있는가. 비록 병실은 오층과 칠층으로 나눠 있었지만 같은 병원에 있다는 것으로 아버지는 위안을 얻으려 했다.
삶이란 고통의 시간 속에도 언제나 희망이 공존하고 있어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더 성숙된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게 아닐까. 어머니의 사고로 소원(疏遠)하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서로의 내면에는 물보다 진한 피를 나눠 갖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부모님을 간호하는 나를 챙겨주는 언니와 오빠들의 정이 마음속에 가득하던 먹구름을 서서히 걷어 나갔다. ‘이것이 살아가는 순리인가.’ 하는 생각도 해 봤다.
같은 병원에 입원한 부모님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부모님은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유영할 수 없는 비목어(比目魚)가 되었다. 외눈박이 물고기가 한 몸을 이룬 뒤 거센 바다 속을 조심조심 살아가듯이 부부는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모자람을 채워 주며 살아 온 것이다. 외로운 지상에서 비목어로 짝을 이뤄 은인처럼 보듬으며 평생을 살았다. 서로에게 빛이 되는 사랑은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병원 정원에 있는 꽃들이 잘게 부서지는 햇살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병마들이 여기저기 똬리를 틀고 있는 병실과는 너무나 다르다. 그곳에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와 나란히 서서 다정스럽게 얘기를 나누는 아버지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비목어 한 쌍이 넓고 넓은 삶의 바다를 유영하다가 잠시 잔잔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했다. 그늘을 만들며 길게 늘어선 이팝나무는 하얀 꽃등에 불을 밝혔다.
'수필세상 > 좋은수필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주식시장의 남자들 / 권남희 (0) | 2011.04.06 |
---|---|
[좋은수필]멋 / 이희승 (0) | 2011.04.05 |
[좋은수필]왈바리 / 주인석 (0) | 2011.04.03 |
[좋은수필]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 이태동 (0) | 2011.04.02 |
[좋은수필]할매 손은 약손 / 성병조 (0) | 2011.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