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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전백불(全百不) / 권화송

전백불(全百不) / 권화송

 

 

 

전백불(全百不)은 예순이 넘었어도 먹성이 좋아서 음식을 게걸스레 먹어치운다. 먹는 속도도 젊은이들보다 배나 빠른 편이다. 막내딸이 시집가기 전만 해도 아버지 곁에서 조정을 해 주어서 한 동안은 천천히 먹을 수 있었다. 그의 입에 침이 고이는 것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배를 만져 보면 딴딴하게 여물어 음식이 들어갈 여지가 없는 것 같은데 깊은 밤이 되면, 먹지 않고서는 허전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가벼운 과실 정도로는 든든하지 않아 아이들처럼 빵이나 양갱 등을 준비해 두고 밤마다 간식을 한다. 새벽에 잠이 깰 때는 조반을 일찍 앞당겨 먹고서 달콤한 아침 늦잠을 즐긴다.

그는 자신의 식성이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을 체질 탓이려니 했다. 가족들에게 그렇게 너그러운 성질은 아니지만 먹새에서만은 성인군자다. 한평생 밥투정 반찬투정 한 일이 없고 밥이거나 죽이거나 관여치 않았다. 그에게는 간장 된장도 긴요치 않다. 소처럼 풋것을 그냥 먹을 때가 많다. 그가 보기에는 한국 사람의 식사법이 매우 괴팍하고 별나며 망측스럽다. 곰국에는 소금, 회에는 초장, 묵에는 묵장, 이렇게 바늘에 실 가듯 따라야 하다니……. 돼지 번육을 먹을 때면, ‘여보, 소금’ 했다가 ‘여보, 된장’ 하다가 ‘여보, 마늘’ 하며 셍기는데, 아무리 인종(忍從)에 길들여진 아낙이라도 수발 들기에 황망스럽다.

전백불은 먹새가 간결하므로 남에게 폐 끼칠 일도 적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도 경쾌한 느낌이다. 소식이 건강에 좋다고 하지만, 알맞고 적게 조절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에게는 차라리 단식하는 편이 쉬웠다. 그래서 일생에 세 번이나 단식한 경력이 있다.

20대에는 무엇이든 잘 먹기 때문에 그런지 물렁살이 찌고 땀을 뻘뻘 흐리며 남들처럼 강건하지 못하므로 체질을 교정한다면서 일주일 정도 단식한 일이 있다.

나이 들수록 몸이 비만해지고 복부가 불러 오는 것을 그냥 둘 수가 없었다. 비만의 주범이 식욕은 맹목적이고 앞뒤 없이 덤비는 맹수와 같았다. 몸과 마음을 분열시키며 갈등을 가져오는 존재로서 항상 자신 위에 군림하는 폭군과 같은 위력을 가졌다. 그는 이 짓굿은 식욕과 타협을 해 보았지만, 결국은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꼴이 되었으니, 극약처분으로 단식투쟁을 하는 것이다.

오십대 후반에 이르러 포도 단식을 두 번이나 했다. 마지막은 14일간이었다. 그 결과 내장을 깨끗이 청소했다는 것 외에 이로움이 없었다. 얼굴이 쪼글쪼글 골이 지고 저승꽃이 얼룩얼룩 흉한 몰골이 되었다. 단식 후에 한동안은 더욱 맹렬한 식욕에미친 듯 했고 돼지죽이라도 먹어 삼킬 것 같았다.

백불(百不)은 지나간 생애를 회상하여 그의 수수께끼 같은 식성의 연유를 밝히려 했다. 혹시 주변에 자신을 닮은 사람이 있는지 예리하게 살피고 자신과 비교해 보았다.

백불(百不)에게 먼 누이뻘 되는 여인이 있다. 학창 때 학업성적은 우수했지만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을 포기하게 되자 깊은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달리 헤어날 길이 없는 그녀는 정신적인 욕구불만을 몸으로 때게 되었다. 그녀는 먹거리를 보기만 하면 입에서 군침이 돌았다. 뱃속이 부른데도 허전하기는 마찬가지인지라, 소화제를 목요해 가면서 먹고 또 먹었다. 반년도 채 안 되어 그렇게도 유연하게 잘 생긴 몸매는 드럼통처럼 비대해서 끔찍한 몰골로 변해 버렸다. 생각할수록 가엾은 일이 아닌가. 하늘은 공평하여 균형을 이뤄 주는데, 누이의 경우는 달랐다. 정신적인 셜핍을 목매통 같은 육체적 풍만으로 안겨 주었으나 엎어진 사람 뒤꼭지 누르는 거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물론 누이 자신이 이를 악물 듯 참고 견디는 의지가 굳지 못한 탓도 있지만…….

백불이 최근에 알게 된 일이다. 아들딸을 한꺼번에 낳은 쌍생아의 어머니가 있었는데, 딸아이는 미워하고 아들만 편애했다. 두 아이가 놀다가 약간의 실랑이라도 있으면 폭언과 함께 딸아이에게만 폭력을 가하는 등, 주변에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딸아이가 가엾어 못 견딜 지경인지라, 그러지 말라고 충고를 하면 이 여인은 노발대발했다. 세상에 잔인한 일 중에 여자가 제 새끼인 딸아이를 학대하는 것보다 더 한 일이 있겠는가. 하물며 그 어미란 여자는 독어를 전공한 학사 출신이다. 그리고 기이한 일은 아들아이는 때대갈비로 자랐고, 폭력과 공포 속에 떨면서 자란 딸아이는 동작이 굼뜰 정도로 뚱뚱보가 되어 있었다.

강박관념은 크나큰 스트레스에 속한다. 이 아니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해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먹어서 해결한 것이 아닐까? 전백불 자신의 유년기를 생각해 보면, 엄하고 무서웠던 아버지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며 유별나게 소심하고 내성적인 자신이 아이들과 잘 어루리지 못했던 허전함을 저도 모르게 식욕으로 달랬었을 그런 점에서 그 딸아이와 약간 상통한 데가 있는 듯했다. 절망과 욕구불만으로 인한 정신적인 결핍증상이 갖고 오는 보상심리가 극성그러운 입맛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지난날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을 ‘박복한 중생’ 이라고 종종 되뇌일 때가 있었다. 한편생 무엇이든지 시원스럽게 뚫린 적이 없었고 꼬이기만 하는 ‘머치의 법칙’ 의 주인공이었다.

그의 일생은 없을무(無)자로 대변할 수 있다. 무부(無富), 무귀(無貴), 무공(無功)이며 한마디로 무명(武名)인으로서 철저한 백의(白衣)로 살았다.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어 낫도 도끼도 닿지 않는 가죽나무였던 것이다. 늦도록 왕성한 식욕은 하찮은 삶을 살아온 정신적인 허탈감이 불러온 대체욕구가 병적인 증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 전백불은 서산 노을을 바라보는 귀로에 서서 반성을 하게 된다. 그의 과잉 식욕의 원인이 되었던 결핍증상은 그의 심층심리에 도사리고 있는 ‘성취의 욕망’, 다른 말로는 ‘유(有)의 욕구’ 에 그 뿌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 욕구를 뿌리째 정화하려면 절대적인 무(無)의 세계에 올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자각하기에 이른다. 우주와 인간의 본질은 무(無)에서 생겨난 묘유(妙有)에 지나지 않으므로 본래의 고향인 장자(莊子)의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거기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텅 빌수록 가득한 곳이다. 무욕(無慾)의 자리를 깔고 무위(無爲)로 나들이하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세계이다. 아무런 조바심이나 허전함도, 거리낌도 없이 소요할 넓은 들판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무하유지향 : 자기부정적인 수양에 의하여 도달할 수 있는,아무 것도 없다는 절대무(絶對無) 의 이상향. 장자 소요유(逍遙遊)편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