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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한여름의 크리스마스 / 전희숙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 전희숙

 

 

 

일 년간 호주에 머물기로 했을 때 불쑥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만나는 일이었다. 여름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어떤 모습일까. 산타 할아버지의 두꺼운 털 코트와 모자 그리고 함박눈을 대신할 것은 무얼까. 늘 한겨울에만 보았던 크리스마스와는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잃어버린 꿈이나 설렘 같은 것을 그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지난 크리스마스들을 돌이켜보면 우리에게도 전성기가 있었다. 오래 전 미국 누저지에서 살았던 몇 년간이 그랬다. 그때 우리 부부는 젊었고 두 이이들은 어렸다.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명절이었다. 특히 크리스마스의 본고장인 서양에서 맞이하는 것이라 기분이 색달랐다.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과 트리를 장식하고 캐럴도 불렀다. 과연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일 년 중 가장 큰 축제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주택가에는 십일월부터 크리스마스 단장을 한 집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십이월에는 온 동네가 경쟁을 하듯 번쩍였다. 지붕부터 시작해 집 테두리를 오색 전등으로 밝히는 것은 물론이고 마당에도 갖은 장식을 해 놓았다. 어떤 집은 성모마리아와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의 상을 만들어 놓고 그 뒤에 베일을 쓴 동방박사 무리도 세워 놓았다. 사람 크기만한 그 인형들은 은은한 크리스마스 캐럴에 맞추어 몸을 흔들고 노래도 불렀다. 우리는 저녁마다 자동차를 타고 이 동네 저 동네를 구경 다녔다. 집집마다 얼마나 공을 들여놓았는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장식들은 여느 예술 작품 못지않았다. 우리가 심사위원이라도 된 양 우쭐거리며 어느 집이 가장 멋진지 순위를 매기는 것도 재미있었다. 재부분 가족으로 구성된 구경꾼들이 남의 마당에 들어가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어도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담장이 없기도 하지만 사랑으로 넘치는 크리스마스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주인들은 커튼 뒤에 숨어 자기 집 마당에서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을 뿌듯하게 지켜보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그 후 한국으로 돌아와 많은 크리스마스를 지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이전 같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 계기이기도 했다.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이라며 잠자는 딸의 머리맡에 고운 스타킹을 놓아 준 일이 있다. 며칠 후 이웃 아줌마가 딸이 신은 스타킹을 보고는 예쁘다며 어디에서 샀는지를 물었다. 아무 생각 없이 어느 백화점이라고 일러 주던 나는 순간 동그레진 딸아이의 눈과 마주쳤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거짓말이 가장 나쁜 것이라 배워 왔던 아이에게 얼마나큰 혼란을 주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 후 거리에서 캐럴이 울리고 트리가 번쩍여도 크리스마스는 우리와 무관한 날이 되어 갔다. 아이들이 성년의 나이가 되어 갈수록 분위기는 더욱 무덤덤해지고 그저 식구끼리 저녁이나 같이 먹는 일상생활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제 호주에서 맞이할 한여름의 크리스마스가 낡은 흑백 사진 같은 분위기에 조금이나마 색채를 깃들여 주지 않을까 기대되었다. 그것은 꼭 크리스마스뿐 아니라 잃어버린 낭만과 꿈에 대한 아련한 향수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연말이 가까워도 호주의 거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한적한 주택지라 그런가 하여 시내에 나가 보아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달랐다. 나의 호주 친구들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바빠졌다. 종교가 무엇인지를 떠나 이 날은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날이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친지들이 있는 시드니로 날아갔고 또 한 친구는 가족 모임을 위한 식사와 선물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골머리를 앓는다. 식구들은 물론이고 일가친척이나 친구 그리고 아는 사람들 모두에게 선물을 한다. 그 수가 한두 사람이 아니니 비용과 번거로움이 엄청나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리 선물을 사서 준비해 놓기도 하고 신용카드로 산 선물 값을 일 년 내내 갚기도 한다. 나의 호주 친구들은 그 고통을 덜기 위해 우리끼리는 성탄카드와 선물을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고 약속했다. 그것이 한 걱정을 더는 일임을 깊이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이브도 조용히 지나고 크리스마스 날이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집 안에만 있는지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귀한 풍경이 더욱 한적했다. 나와 남편은 여느 휴일 아침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나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차도 마셨다. 그러고 나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그저 여느 주말과 같으려니 생각하려 해도 쓸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대학에 다니는 아이들을 한국에 두고 온 터라 우리 부부의 허전함은 더했다. 어디에서건 가족 없는 명절이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덧 이국의 낯선 낭만을 꿈꾸며 부풀었던 기대감도 허무하게 쭈그러져 가고 있었다. 나는 허전한 마음을 몰아내기 위해 중요한 일이라도 생각난 듯 남편을 종용하여 해변으로 차를 몰았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역시 해변에서 보내야 제격이란 생각에 미쳤기 때문이었다.

거리는 조용했다. 지나는 차도 보이지 않고 상점들도 문을 닫았다. 그래도 해변의 카페 하나쯤은 나들이 가족을 맞으려 문을 열어 놓았겠지 하는 기대를 걸고 싶었다. 해변에 다다르니 그날따라 바람이 세게 불고 있었다. 여름이라 해도 가을 날씨만큼이나 서늘한 바람이었다. 해변에서 바다 쪽으로 길게 지어 놓은 방파제가 보였다. 우리는 옷자락을 부여잡고 모자를 움켜쥔 채 방파제를 걸어 나갔다. 발걸음을 옮기기도 힘들 만큼 세찬 바람이 굉음을 내며 몰아쳐 난간을 꼭 잡고 걸어야 했다. 방파제 끔에서는 십대 소년 두 명이 그물로 된 바구니로 게를 잡고 있었다. 가냘픈 아이들은 바람에 날려 가지 않기 위해 바닥에 주저앉아 벤치 다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육지에서는 약간 부는 정도의 바람도 바다에 오면 거센 폭풍이 된다. 소년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으나 바람이 소리를 삼켜 버렸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소년들이니 자연환경에는 우리보다 더 잘 적응하리라 생각하며 걱정을 접기로 했다.우리는 점점 거세지는 바람에 잔뜩 겁을 먹은 채 왔던 길로 돌아섰다. 바람의 거친 기세에 방파제가 더욱 길게 느껴졌다. 이제 큰 유리창이 있는 카페에 들어가 바람을 피하고 여유도 갖고 싶었다. 그저 바다를 바라보며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면 충분히 이국적인 크리스마스로 기억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문을 연 카페는 없었다. 사나운 바람만이 굳게 닫힌 문을 사정없이 두드리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차를 몰고 유령같이 텅 빈 길을 지나 집으로 향했다. 호주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덧없이 저물어 가는구나 생각했다.

그 순간이었다. 달리는 차창 앞에 넓게 펼쳐진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뉘엿뉘엿 지는 햇살 사이로 저녁놀이 빛나고 있었다. 총천연색으로 물들어진 구름은 하늘을 행해 승천하는 용을 묘사한 추상화 같았다. 시선을 하늘에 둔 우리의 차도 하늘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까 절로 두 발에 힘이 주어졌다. 차가 달리는 동안 노을빛도 시시각각 변해 갔다. 잠시 후 해가 지평선에 반쯤 걸리자 구름은 빨간 물을 흐드러지게 부어내고 있었다. 손을 내밀면 검붉은 노을 물감을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 사람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일출보다 일물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더 간다고 하였던가. 일출이 주는 느낌이 희망이라면 어둠으로 스러지기 직전의 일물은 겸허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인지 비슷한 동색으로 조화된 일출 모습과 달리 일몰에는 동색과 보색이 가리지 않고 함께 어우러지는 관용과 포용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아무리 다른 색이라도 겹치는 부분에 화해의 중간색이 만들어졌다.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깊고 웅장한 아름다움이 빛났다.

실로 한여름 크리스마스의 진풍경은 나의 예상 밖이었다. 그것은 트리와 캐럴이 만들어내는 들뜬 거리도 아니었고, 낭만이 넘쳐흐르는 해변도 아니었다. 그 순간 머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보지 않았다면 자칫 놓치고 말았을지도 모를 것이었다. 그것은 소리 없이 들려주는 일물의 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