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가고 있는 곳 / 김시헌
지난 여름, 고향을 찾았다. 하늘과 산은 옛 모양을 지키고 있는데 강은 그대로가 아니다. 임하댐의 대역사(大役事)가 고향 마을에까지 와서 끝을 맺었다. 반변천(半邊川)의 물줄기는 간 데가 없고, 넓고 넉넉한 호수가 일대를 뒤덮고 있다.
같이 간 일행은 소나무밭에 자리를 잡고, 나는 물이 가득한 호수 가에 가슴을 펴고 선다.
70년 전의 소년이 호수 물속에서 그림자로 일렁거려 온다. 땅 짚고 헤엄을 치다가 땅을 놓고 헤엄을 치고, 개헤엄을 치다가 뒷헤엄을 배우던 소년이었다.
어느 날, 장년의 아저씨가 깊은 물속 바위틈에 들어가 작살질을 하여 물구렁이 한 마리를 잡았다. 뱀장어로 착각을 하고 작살을 꽃았던 것이다. 아저씨도 강물 밖에 나와서야 그놈이 구렁이인 줄 알았다. 한여름의 뜨거운 백사장에 내동댕이쳐진 구렁이는 꾸불꾸불 여기저기 헤맸다. 나는 겁이 나서 발바닥이 뜨거운 것도 모르고 마구 달아났다. 따라올 것만 같았다. 구렁이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 뒤에 돌아와 보니, 아저씨는 간 곳이 없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여 구렁이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비 오는 날, 강물 깊은 바위틈에서 우- 하는 우울한 큰소리가 들려왔다. 동네 사람들은 강물 속을 지키는 이시미(용 같은 짐승)가 우는 소리라 했다. 그 이시미를 작살로 찍어 올렸으니 그 아저씨는 뒷날 큰 화(禍)를 입을 것이라는 화제가 오갔다.
그때의 그 구렁이가 상상 속에 되살아난다. 아저씨는 뒤에 어떤 화를 입었을까. 구렁이는 지금도 비가 오면 울고 있을까. 모두 궁금한 일다.
강 건너의 산 중턱에 백운정(白雲亭)이 예대로 버티고 서서 세월을 지키고 있다. 또 70년 전이 회상된다. 너풀너풀한 차림의 한복 차림의 노인 선비들이 모여 앉아 공자 맹자를 논하고, 누가 옳으니 그르니 말싸움을 벌이던 광경이 상상 속에 재생되어 온다. 정자 아래에 큰 밭둑이 있었다. 그곳에서 가지가 멋대로 뻗은 큰 밤나무가 마당만큼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알밤을 줍는 소년들이 땅과 풀잎 속을 이리저리 뒤적이던 무리 속에 나도 섞여 있었다. 알밤 하나를 주웠을 때는 보석을 얻은 기쁨이었다.
고개를 숙여 호수 속을 들여다본다. 아무 것도 없다. 어둠침침한 물의 깊이 속에 무엇인가가 있을 듯한 예감을 줄 뿐이다. 한때 나는 사람의 영혼은 어디에 붙어 있는가를 생각한 일이 있다. 정신과 기억들이 영혼이 될 수 없다면 영혼은 분명히 육체와 떨어져 있는 어떤 존재이다. 어떤 사람은 신(神)과 사람의 사이에 영혼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호수 깊은 곳을 보면서 그 속에 영혼이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신과 가까우면서 인간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존재라면 물속 깊은 곳, 아니면 천사가 산다는 높은 곳, 혹은 지옥 같은 험악한 곳에 영혼이 기다리다가 사람에게 다가오는지 모를 일이다. 그 영혼이 물속 깊은 곳에 있다가 인연이 닿아 사람 속으로 들어올 수도 있지 않겠느냐?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허허한 하늘 바다에 흰 구름장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고 있는 구름인가. 천지창조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과학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지만 아무리 간다 해도 창조의 비밀까지는 해쳐내지 못하리라.
하늘에 허공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허공이 있다. 있는 줄도 모르고 어느 날, 허공에 부딪치면서 내가 누군인가를 깨닫게 되면 비로소 허공이 보인다. 세상 만물을 허공으로 묶고 있는 우주의 크기도 허공 속에 있는 작은 돌맹이 같은 것은 아닐까.
솔밭 속에 식단을 차려 놓은 일행이 ‘어서 오라’고 나에게 손짓을 한다. 나는 꿈에서 깨어나듯 소나무 둥치가 듬성듬성 서 있는 일행 쪽으로 걸음을 바쁘게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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